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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Dec 07. 2020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과정의 첫 단계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문득 보컬학원에 레슨을 받으러 가고 싶어 졌다. 계기는 그저 노래를 좀 더 잘 부르고 싶어서, 그리고 어릴 적 합창단에서 레슨 받던 추억에 젖어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노래를 좀 더 잘 부르고 싶단 욕망은 몇 년째 나와 함께하고 있었고, 내친김에 학원도 알아보고 학원비 문의까지 해봤다. 내가 욕심나던 수업은 10회에 120만 원이었다.




먼저 내 소비습관부터 설명하자면, 나는 꽤 즉흥적인 사람이다. 작년만 해도 나는 한 주에 5만 원가량의 생활비를 받아서 생활하고 있고, 각종 월 구독료를 제외하고 남는 돈 안에서 쓰고 싶은 대로 쓰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교통비는 따로 쓰는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위기감이 들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가 300만 원을 훌쩍 모으더니, 누구는 돈을 모아 해외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주식투자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만 빼고 다들 어른이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내 지갑에는 고작 10만 원이 남아있었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그들의 뒤를 쫓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나도 월급의 70%를 저축하는 통장이 따로 있었다. 하지만 나는 체력이 약해 친구들보다 늘 월급을 적게 받곤 했고,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들의 반밖에 되지 않는 돈을 가진 채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고도 한동안 나는 내가 저축한 돈이 얼마인지 알지 못했고, 투자와 돈 불리기에 대해 잘 모른단 이유로 모두 엄마에게 맡기기만 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또 그러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어른이 되면서 언젠가 자연스레 경제적 독립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지금부터 돈 관리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곤 있었다. 액수가 적을수록 배우기 쉽단 것도. 결과적으로 나는 내가 돈을 관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목표한 수익률이 난 뒤로 펀드는 해지했다. 그리고 어머니께 돈 관리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마침 잘 됐다며 내게 적금을 권유하며 그날부터 돈 관리하는 법을 조금씩 가르쳐주셨다.


권유받은 적금은 이율이 3%나 되는 적금이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내 경우에 안정적인 데다 이율이 높은 이 상품이 좋겠다고 하셔 그저 하란대로 가입을 했다. 그리고 그 적금은 내 첫 저축통장이 되었다.




나는 현재 통장 3개를 이용해서 돈 관리를 하고 있다. 첫 번째는 주로 쓰는 통장. 이 통장으로 용돈을 받고, 거의 모든 돈을 쓰고 있다. 한마디로 지갑에서 1등으로 쓰는 카드에 해당하는 통장이다. 두 번째는 비상금 통장. 주로 큰 금액의 거래를 할 때 사용한다. 보통은 가끔 하는 아르바이트 월급을 받거나, 5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을 지출해야 할 때 사용한다. 혹은 당장 돈을 써야 하는 데 주로 쓰는 통장에 돈이 없을 때 비상금 통장에서 꺼내 쓰기도 한다. 비상금 통장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가 이것.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적금통장이다. 앞서 말한 적금에 쓸 돈을 넣어뒀다가, 적금이 만기 될 때쯤 다시 돈을 받을 통장이다.


나는 돈이 들어오면 그 주에 약속이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그 뒤에 약속이 있으면 그전까지 지출을 최대한 아껴 약속에 사용할 돈을 확보하고, 최대한 가진 금액 안에서 시간을 보내려 노력한다. 그리고 약속이 없다면 필요한 소비가 있는지 확인한다. 가령 내 정신건강을 위한 취미생활이라거나, 생활에 필요한 물건 같은 것들.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한 번에 사지 않고 꼭 필요하고 급한 것부터 한 주동안 나눠서 소비해서 그 주에 필요한 생활비를 확보한다. 만약 생활비가 모자라다면 덜 급한 것은 다음 주에 사거나 꼭 필요하지 않은 소비를 하지 않는 방향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단점이 있다. 나는 생활비가 남았을 때 저축하겠단 생각을 하고 있고, 생활비가 막상 남으면 미뤄뒀던 사고 싶은 물건을 사는 데 돈을 사용한다. 또한 비상금 통장에 이름 붙인 이유답게 통장에서 돈을 꺼내어 쓰기도 하는데, 문제는 꺼내어 쓴 만큼 곧바로 채워넣질 않는다.

다만 이미 소비에는 어느 정도 계획을 하고 소비한다는 점, 예산을 짜고 단기적으로 돈을 모으는 연습을 몇 차례 해본 적 있다는 장점이 있었기에 이를 바탕으로 보컬학원에 등록하기 위한 돈을 모아보기로 했다.





나는 보컬학원에 등록하기까지 내게 6개월이란 시간을 주었다. 내 인내심의 한계가 6개월이었고, 그 이상 길어지면 부모님께 손을 벌릴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용돈은 한 주에 5만 원이고, 120만 원이라는 돈을 모으기엔 너무 막막했기 때문에 친언니에게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언니에게 먼저 상황설명을 했다. 보컬학원에 등록하고 싶다는 것, 내가 스스로 돈을 모으고 싶다는 것, 지금의 용돈과 내 소비습관, 그리고 돈을 모으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질문까지. 우선 언니는 이 과정의 근본적 원인을 지적했다. 내가 120만 원을 모으기 위해선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반년 안에 120만 원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용이 더 싼 다른 학원을 찾거나/1대 다수로 수업료를 낮추거나/수업료가 낮은 대신 수업시간이 짧은 다른 강의를 듣는 것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은 어떤 지 권유했다. 나는 1대 3인 수업을 택하기로 했고, 모아야 할 금액은 40만 원으로 낮아졌다.


그다음은 현재의 저축습관을 지적했다. 나는 돈을 있는 대로 쓰는 사람이다. 그리고 남은 돈을 저축하지도 않는.

게다가 저축이란 게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해서 돈을 모으기란 꽤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보컬학원 레슨비와 별개로 "진짜 비상금"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간 내게 비상금이란 당장 돈이 없을 때 급하게 끌어 쓸 수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 비상금이란 원래 비상상황에 사용하는 돈이지 않은가. 나는 큰 소비와 비상금의 개념을 함께 사용하고 있었고, 우선 그것의 분리부터 하기로 했다. 집에 물이 새거나 당장 어디가 아파서 큰 비용이 빠져나가야 하는데 돈이 없을 때 사용하는 것이 비상금, 친구와 여행을 가거나 사고 싶지만 많은 금액이 필요한 물건을 큰 소비로 분류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막상 비상금을 왜 모아야 하는지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고, 병원비도 부모님이 내주신 뒤 보험처리를 하고 있다. 비상금의 목표액, 그리고 모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필요가 있었다.


언니의 제안대로 3개월치 생활비를 모아보기로 했다. 혼자 산다고 가정할 때의 3개월치 생활비. 당장 내게 위기가 들이닥쳤을 때 나는 독립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럴 때 집을 구한 뒤 3개월 동안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비상금을 모으기로 했다. 하지만 그 금액은 처음 모으기엔 너무 어려우니 보증금으로 쓸 수 있을 돈으로 넉넉히 500만 원을 1차 목표로 잡았다.




두 가지 저축을 해보기로 했다. 모아서 큰돈을 만들 저축과 모아서 평소에는 못 사던 비싼 물건을 사는 저축을 함께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판단했다. 비상금을 진짜 비상금과 큰 소비로 나누었듯. 비상금 저축의 목표는 500만 원이 되었고, 큰 소비를 위한 저축은 40만 원이 되었다. 보컬학원 등록비용은 6개월 뒤이고, 그 사이에 다른 큰 소비를 하고 싶을 때를 대비해 평상시의 큰 소비를 위한 금액 15만 원을 추가로 모아두기로 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세웠다.


첫째, 보컬학원 레슨비를 모으기 위한 자유적금통장을 개설한다.

둘째, 저축통장에 넣을 다른 티끌모아 태산 통장을 개설한다.

셋째, 매주 생활비를 받을 때마다 1만 원씩 티끌모아 태산 통장에 이체한 뒤 생활비를 사용한다.

넷째, 매일 1000원~3000원씩 적금통장에 넣되, 여유가 남는다면 더 넣도록 한다.

다섯째, 큰 소비 통장에서 돈을 꺼내어 사용했다면 저축과 적금을 넣고 남은 돈을 이용하여 최대한 빨리 채운다.

여섯째, 한 주가 지나서 생활비가 남았다면 이 돈을 티끌모아 태산 통장에 넣을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아침이 밝으면 나는 첫 번째 조항인 적금통장을 개설할 생각이다. 6개월 뒤 보컬학원에 등록해서 레슨 받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리고 나는 생활비를 아껴 저축하는 데 성공적인 경험을 하나 쌓게 되었을 것이고, 경제적인 독립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날까지 파이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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