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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휘 Oct 16. 2019

그해 여름, 호주가 가르쳐준 것.

[HIM] 11월호 수록 예정 + 보너스 사진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내 기억보다도 먼저 비행기를 탔던 그날을 시작으로 수도 없이 해외여행을 다녔던 나지만, 아시아가 아닌 곳으로 여행을 가본 건 2017년이 처음이었다. 푹푹 찌던 여름날, "방학에 엄마가 여행이나 가라는데." 친구가 별 의미 없이 던진 말에 내 그 자리에서 호주행 비행기 표를 사버린 것이 여행의 시작이었다.

  이전부터 호주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시아권 나라는 이미 많이 가보았으니 패스. 거리가 먼 인도, 남미, 아프리카를 갈 준비는 되지 않았다(아직도). 유럽은 너무 도도하고 미국은 어쩐지 부담스러웠다. 호주가 가진 미세먼지 한 톨 없는 청정 자연, 오페라 하우스와 캥거루, 그레이트 오션 로드와 코알라, 계절, 도로의 방향, 삶의 방식까지 많은 것이 한국과 다르지만 그럼에도 한 시간밖에 나지 않는 시차는 어쩐지 편안하게 느껴졌다.

  출발하기까진 한 달여의 시간이 있었다. 숙박 예약부터 여행 일정, 코스 짜기, 각종 사전조사와 준비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해나가다 보니 어느새 디데이. 친구와 나는 시드니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도 비행기로 12시간이나 가야 하는 먼 나라로 훌쩍 떠났다는 걸 감하지 못하고 었다.

  벌써 2년이 흘렀지만 시드니 공항에 내려서 건물 밖으로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서늘하게 끼치는 남반구의 8월 공기와 한국의 하늘과는 채도부터 다른 하늘빛의 상쾌함에 마음을 빼앗겼다. 산이 보이지 않는 곳을 찾기 힘든 한국과는 달리, 시드니에선 동서남북 어딜 보아도 시야가 허락하는 끝까지 도시를 내다볼 수 있었다. 속이 뻥 뚫렸다.

처음 공항을 나섰을 때.

   자유여행이니만큼, 명소만 골라 훑어보는 깃발 여행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미리 짜 놓은 일정엔 최소한의 목적지만 정해놓았고, 나머지는 우리의 발길로 채웠다. 마치 그곳에 사는 사람들처럼 다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녔던 것만 빼면.

  어딜 가도 풍경이 운치가 있었다. 보통 도시라고 하면 편의성과 자연을 등가교환한 결과물인 경우가 많은데, 시드니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듯했다. 오페라하우스는 바다와 닿아있었고, 도심 한가운데에서 큰 규모의 잔디밭이 있는 공원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돗자리도 없이 잔디밭에 아무렇게나 누워서 낮잠을 자거나 이야기를 하며 한 때를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국에선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미세먼지와 진드기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우리에겐 공원에 누워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지 않은가.

  바다가 가까운 덕에 갈매기들이 우리가 아는 비둘기의 자리를 차지했다. 번화한 도시의 갈매기들은 마치 도시와 바다 사이에 뚫린 웜홀을 타고 여행하는 여행자들 같았다. 낯설면서도 이질감은 없었다. 도도한 눈빛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최고의 신스틸러들이었다.

뭘 그리 맛있게 먹나 휴먼

  시드니에 5일 정도 머문 후엔 비행기를 타고 멜버른으로 향했다. 시드니보다는 더 도시의 느낌이 강했지만 여유로운 풍경은 다르지 않았다. 중심가에 가면 한 블록마다 버스커들이 노래를 했다. 역시나 도심 곳곳에 공원이 있었고, 차를 타고 벗어나면 금세 광활한 자연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항구 마을은 지상 낙원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햇살이 너무 좋아서 아무렇게나 찍어도 사진이 잘 나왔다. 그저 미쳤다는 말 밖엔.


  호주에는 지금까지 가보았던 다른 나라들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길거리를 걷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이유는 단순히 미세먼지를 날려 보내는 인접 국가의 유무 또는 동서양의 문화적, 역사적 차이로 뭉뚱그려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말 많은 것이 뿌리부터 달랐는데, 나는 그 뿌리가 '다양성의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은 유행과 다른 사람의 시선에 유독 민감하다. 유행하는 아이템은 너도 나도 사고, 도로를 달리는 차는 대부분이 흰색, 회색 아니면 검은색이다. 남들이 하는 건 나도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만은 은근히 다르길 바라는 독특한 심리를 가지고 있다. 많이들 입는 롱패딩을 사지만 쉽게 구할 수 없는 평창올림픽 패딩에 열광하고, 무난한 색의 자동차를 타지만 차의 급과 디자인은 남달라야 한다.

  그런데 호주 사람들에게선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그들에겐 처음부터 공통점이 없었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유행이 없는 옷차림, 머리 스타일을 하고 다녔다. 서로가 같은 것이 없으니 모두와 다를 것도 없었다. 그냥 각자가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각기 다른 빛깔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니 조화를 이루었다. 잔디밭에 장미가 한 송이 있다면 엄청 눈에 띄겠지만 다양한 색이 섞이는 단풍철에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처럼.

  그때 알았다. 세상은 넓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안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우리의 모범 답안이 한없이 사소하게 느껴졌다. 호주에선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더라도 뭐라 할 사람이 없을 거 같았다. 이미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무관심에 가까운 존중이었다. 내가 어떻게 살던 네가 뭐라고 할 자격이 없고, 나 역시도 너의 삶에 대해 그렇다. 이 말을 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솔직히 말하면,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사는데 정답이 없다는 상투적인 말의 그렇지 않은 이유를 직접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늘이 유난히 맑게 갠 저녁에 병영도서관에 가면 찬란하게 넘어가는 노을을 볼 수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영롱한 분홍빛의 노을을 보면 그때가 생각난다. 내가 가진 고민이 문득 사소하게 느껴졌다가도, 이 아름다운 빛깔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어져서 다시금 울적해진다.


좋은 줄은 알았지만 소중한 줄은 몰랐던 나의 여름방학은 그렇게 지나갔었다.




+ 자랑하고 싶은 사진들

 

글, 사진: 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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