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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멘탈 심리학자 Feb 14. 2023

노부모님을 향한 이민자들의 절절한 마음

멀리 있어 더 애달픈 심정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혀 부모님을 3년 만에 뵈었어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날, 부모님이 공항에 저희 가족을 데려다주시고 돌아서시는 뒷모습을 보고 눈물이 났어요.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던 무뚝뚝한 사내의 말이었다. 대학시절 한국을 떠나 오랜 기간 외국 생활을 해서인지 공항에서 부모님과의 이별에 익숙했다. 그런데 코로나를 겪고 강제 이별한 지 약 삼 년 만에 뵌 부모님의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더 늙어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노인이 되신 것 같다. 안쓰러웠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부모님 뒷모습을 보고 눈물이 나는 것을 보니 저도 갱년기인가 봐요.” 멋쩍게 얘기하는 남자의 말에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히 묻어나는 것 같았다.




수많은 연구들로 밝혀진 이민자들의 현지 적응 단계는 대략 이렇다. 먼저 마냥 모든 것이 새롭고 신나는 기간이 약  100일간 이어진다고 한다. 마치 결혼 생활과 닮아있어 이때를 허니문 기간이라고 부른다. 이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동안 다양한 사회 심리적 스트레스가 점차적으로 증가하며 피크를 찍는다. 하지만 현지 사회에 적응할수록 그 스트레스는 점차적으로 줄어든다. 이와 달리 처음에는 스트레스가 적다가 갈수록 증가하는 것 중에 하나는 고국에 두고 온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다. 처음 떠나올 땐 이것이 내 발목을 잡는 큰 요인이 아니었다. 왜냐면 내가 어린 나이였던 만큼 부모님도 젊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시고 건강 문제도 비교적 적었기 때문에 나만 자리 잡고 잘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한국과 달리 여기서 직업적으로 대우받아 직업만족도, 생활만족도 다 높아요. 그런데 아이가 태어났는데 손주를 자주 못 봐 애달파하시는 부모님을 보니 너무 슬퍼요.”


기술직에 종사하고 있는 한 남자는 한국 사회에서 그 능력을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으나 여기서는 인정받을 수 있어 크게 고민 안 하고 이민을 결정했고 현재 너무 만족스럽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방황도 하고 부모님 속도 많이 썩였는데 여기서 번듯하게 가정도 꾸리고 잘 살아가니 부모님도 좋아하신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 아이를 데리고 갈 때마다 부모님이 손주 보시고 너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고 짠한 감정이 든다고 한다. 부모님 친구들은 손주들을 자주 보고 그럴 텐데 자신이 크게 불효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학생 때 공부하러 와서 현지에서 같은 처지인 한국 남자를 만나 결혼해 현지 생활을 이어가고 있어요.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보면 시댁문제로 골머리를 썩던데 저는 그런 게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남자들이 들으면 이기적이라고 하겠지만 시댁 스트레스가 없는 만큼 제 친정 부모님도 못 본다는 게 가슴이 아파요.”


한 여성 이민자가 한 말이다. 여자들이 토로하는 고민은 아무래도 한국문화의 성역할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심정이 복잡했다. 신혼 때는 이민지에서의 결혼 생활이 좋은 줄만 알았다고 한다. 시댁에서 전세비나 집값을 받은 것도 아니고 렌트로 평등하게 시작하니 시댁에 대한 마음의 빚도 없었다. 한국에서 여느 며느리들처럼 명절 스트레스, 제사 등 시댁의 간섭과 며느리 도리에서 해방되었고 무엇보다 자주 안 봐도 되니까 너무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이가 들수록 친정 엄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엄마가 사고를 당해 다리를 크게 다쳐 수술을 받으셨어요. 지금 입원 중이신데 아무리 간병인을 쓴다지만 자식이 옆에서 살뜰하게 돌보는 거랑 어떻게 같겠어요? 오빠가 있기는 하지만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남자는 useless 한 거요.”


이민 생활이 오래된 그녀는 시민권도 수월하게 잘 받은 편이고 일과 삶의 균형도 잘 이뤄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이런 그녀에게 이민으로 인한 단 한 가지 단점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했다. 자신과 언니는 외국에서 일을 하고 있고 오빠는 고국에 남아있는데 오빠가 언니나 자신만큼 부모를 살뜰히 돌보는 것이 아니라 불만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남자형제에게 불만을 대놓고 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답답해서 화나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한국에 두고 온 부모님은 이민자들이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이민 생활의 단점이었다. 다른 적응 문제 같은 경우는 노력해서 극복이 가능한데 이 부분은 다르다. 뭐. 사실 방법이 없다. 위로는 크게 안 되겠지만 한국에 같이 살아도 자주 뵙고 돌봐드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가정이 많다. 설사 같은 지역 안에서 가까이 산다 해도 내 삶과 새로 꾸린 가정에 더 에너지를 쏟게 되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회사일로, 아이를 돌보는 일로 정신없이 지나가고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과 휴식을 조금 취하다 보면 금방 또 월요일이다. 마음과 달리 노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고 돌봐드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양가 부모님 문제로 부부 사이에 분란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또한 한국에 있다고 노쇠해지는 부모님 모습에 짠한 감정이 덜 드는 것도 아니다. 멀리 있으나 가까이 있으나 겪어내야 하는 과정일지 모른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영상통화 자주 하고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뵐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드는 것 말이다.


아. 사족일 수 있겠지만 한국에 있는 형제자매에게는 정말 잘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을 케어하는데 내 성에 안 찬다고 조금이라도 서운한 말, 부정적인 말은 삼가고 그저 수그리고 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별수 없다. 그들 입장에서 외국 사는 형제자매는 몇 년에 한 번 잠깐 얼굴 비치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핸드폰 조작법 한 번이라도 더 알려드리고 병원에 한 번이라도 더 모시고 다니는 사람은 그들일 것이다. 얼굴 보고 얘기해도 오해가 생기는 판에 멀리 떨어져 제한적인 수단으로 소통하면 작은 오해도 쉽게 커지기 마련이다. 불만이 있더라도 삼키는 게 현명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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