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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멘탈 심리학자 May 30. 2024

그깟 피부 문제로 이렇게 멘탈이 부서지나

접촉성피부염 극복기

접촉성 피부염으로 시달린 지 약 10개월이 흐른 것 같다. 그깟 피부트러블이 뭐라고 참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나에게 피부는 건강과 관련된 신체 기관이라기보다 그저 밖으로 보이는 가꿔줘야 하는 미용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참 고통스럽더라.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아직 완벽한 상태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재발도 쉽다고는 하나 가벼운 메이크업 정도는 가능할 정도로 회복한 지금 그 간의 고군분투를 풀어보고자 한다.



작년 8월쯤이었다. 눈두덩이가 조금씩 부었다. 그저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얼음찜질하고 약국에서 구입 가능한 알레르기 약을 먹고 버텼다. 그런데 눈이 붓는 빈도가 점점 늘어나더니 눈탱이가 밤탱이가 될 정도로 붓는 것이다. 심각한 알레르기 증상 같았다. 안과진료를 봤더니 눈 안쪽까지 부었다고 요즘 새롭게 먹은 것이 있는지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마침 약이랑 영양제를 바꿨을 때였다. 그 외에는 심리적으로 큰 충격 사건이 었었던 정도? 아무튼 먹는 약과 눈가에 바르는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받았고 문제의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약과 영양제를 당장 끊었다.


처방받은 약을 먹는 동안에는 증상이 가라앉았다. 그런데 다 먹으니 귀신같이 다시 올라오는 것이다. 그래도 바르는 연고가 있으니 증상이 올라올 때마다 발라주며 지켜보았다. 그런데 두 달 후 온 얼굴로 증상이 퍼지는 것이 아닌가. 붉고 열나고 가려웠다. 피부과를 방문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알레르기 증상이라고만 생각했다. 안과 때와 똑같이 먹는 약과 얼굴에 바르는 연고를 처방받았다. 그리고 역시나 안과 때랑 똑같이 약을 다 먹으니 증상이 다시 올라왔다. 최대한 연고를 증상이 심할 때만 소량 쓰면서 버텼다. 가뜩이나 불면증이 있는데 얼굴에 열 오르고 잠들만하면 가려워 잠들 수가 없었다. 얼굴에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느낌이랄까. 머리카락만 스쳐도 너무 가렵고 아프고 찬바람이라도 확 쏘이면 얼굴이 뜯어질 것만 같았다. 마치 외부환경으로부터 피부가 나를 전혀 보호해주지 못하는 느낌?  낮에도 얼굴에 열이 올라 하는 일에 집중이 어려웠고 가려울 때마다 긁지 않으려고 모든 인내심을 거기다 써 살 수가 없는 지경에 처했다.


다른 피부과를 방문했다. 처음 증상이 발견된 지 4개월 후였다. 그런데  거기서 새로운 의견을 들었다. 먹는 것 때문에 일어난 알레르기 반응이라기보다는 접촉성 피부염에 가깝다는 것이다. 일단 몇 주간 먹는 약 용량을 서서히 줄여가면서 처방 로션만 발라보자고 했다.  몇 달간 원인을 몰라 먹는 것만 죽자고 헤맸는데 속이 후련해졌다. 진단이 나왔으니 이제 고치는 건 쉽겠구나. 아아. 그럴 리가. 조금 나아졌다 다시 악화됐다를 반복. 왜 아토피 심한 사람들이 유명하다는 병원과 한의원을 전전하는지 그 심정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뭐라도 해보자 싶어 접촉성 피부염과 관련된 정보와 사람들의 후기를 마구 찾았다. 무수한 실패가 있었지만 아래 이어지는 내용은 그나마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먼저 일지를 썼다. 먹은 것으로 인한 알레르기 반응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 하루동안 무엇을 먹었는지 몽땅 기록했다. 또한 얼굴에 바른 것, 수면 및 스트레스 정도 등등 피부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을 모두 기록하고 관찰했다. 변수가 너무 많아 요놈이다 싶은 악화 요인 하나를 딱 찾아내기는 어려웠지만 어렴풋이 패턴을 찾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얼굴에 올라가는 것을 싹 다 바꿨다. 피부 장벽이 무너졌다는 것은 피부가 병에 걸린 것과 마찬가지니 기존에 피부가 건강했을 때 쓰던 것들을 싹 버렸다. 클렌저는 모두 약산성으로. 페이스, 바디, 샴푸 다 바꿨다. 특히 액체 타입 화장품이 안좋다해서 스킨, 앰플, 에센스 다 버렸다. 실제로 쓰면 너무 따가웠다. 고가의 화장품인데 너무 아까워서 눈물 줄줄. 그래도 오로지 처방로션만 발랐다. 시중에서 파는 고보습 피부장벽 강화 크림들도 여럿 시도해 봤는데 병원 처방 로션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보험청구도 되니 얼마나 좋아. 또한 씻는 습관도 바꿨다. 서장훈급은 아니지만 씻는 것에 강박이 있었는데 그거 갖다 버렸다. 최대한 손 압을 빼고 약하게 빨리. 얼굴에 열 오를 수 있으니 뜨거운 물 샤워습관도 바꾸고 꼼꼼이고 나발이고 최대한 빨리 후다닥. 아침에는 무조건 물세수만. 손에 느껴지는 기름막이 상당히 찝찝했지만 피부장벽 재건을 위해 참아야지.


가장 어려웠던 것은 노메이크업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수치스러웠다. 내가 대학생까지만 되었더라도 어리다는 자신감으로 막 까고 다녀도 부끄러운 줄 몰랐을 텐데. 민낯이 민폐가 될 수 있는 중년인지라 상당히 괴로웠다. 게다가 얼굴도 빨개지고 퉁퉁 부어있으니 거울 보기도 싫고 티비에 화장품 광고만 봐도 한숨이 절로. 사람들 만나는 것도 무서웠다. 평생 이렇게 메이크업 못하고 민낯으로 다녀야 하나 싶은 두려움에 잠식당해 우울했다. 다행히 입술에는 트러블이 없어 립밤을 쨍한 색깔로 올리고 얼굴을 최대한 가리기 위해 모자를 쓰고 다녔다. 선크림과 레이저 시술 후 사용한다는 비비크림은 괜찮을까 싶었는데 안 되더라. 조금 나아졌다 싶었을 때 사용했는데 다시 확 악화되었다. 오로지 완벽한 민낯에 처방로션만 자주.


그래도 이러나저러나 증상 없어지게 하는데 연고가 최고다. 그런데 병원 처방 연고는 스테로이드 용량이 상당히 높다. 약국에서는 그것보다 낮은 함량의 연고를 구할 수 있다. 높은 함량 연고는 증상이 너무 심할 때 진짜 짧게 그 후로 스테로이드 용량 낮은 것으로 또 짧게 사용한 그 다음 단계에선 아기들 기저귀 습진치료 연고로 유명한 스테로이드 프리 연고를 얼굴 전체에 넉넉히 도포해 유지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이 자주 발라주는 게 포인트였다. 피부에 막을 씌워 완벽히 보호한다는 느낌이랄까. 대신 머리카락 장난 아니게 붙고 텁텁한 느낌에 낮에 생활하기에는 불편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앞의 연고와 같은 b5성분지만 발림성이 좀 더 가벼운 연고를 사용했다. 머리카락 붙는 것도 덜하고 얼굴에 올라간 느낌도 가벼워 편리했다. 여기까지 온 거면 뭐 거의 다 나은 거지 뭐. 사실 이렇게 간단하게 기술했지만 약국에서 파는 접촉성피부염과 관련된 여러 연고들을 사용하고 테스트하고 버리고를 반복해 얻은 결과물이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인지 이제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로 회복되었다.아직도 접촉성피부염의 원인은 정확히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눈부터 시작해 피부장벽이 와르르 무너졌고 다시 회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참 이상하다. 피부 문제는 냉정하게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피부트러블 그깟 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상당히 괴롭고 삶의 질을 처참하게 파괴할 수 있는 질병이었다. 낮에는 얼굴에 손 안대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밤에는 발진과 가려움 공격을 이겨내고 잠들기 위한 투쟁을 벌였다. 그래도 그간 고생에서 얻은 것이 있기도 하다. 그전에는 새로운 기미나 작은 트러블만 올라와도 난리난리가 났고 온갖 화장품에 집착하고 선크림 없이 자외선에 노출되면 곧 죽는 것처럼 유난을 떨어댔었다. 그런데 비로소 그동안의 예쁜 피부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그렇게도 신경 쓰였던 기미, 여드름, 주름, 칙칙, 탄력 잃고 쳐진 피부 등등이 더 이상 나에게 큰 문제로 다가오지 않는다. 피부가 예쁘지 않아도 건강하기만 해도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을 얻게 된 것이다. 덤으로 그간 썼던 일지를 계속 쓰게 되어 나름 강제적인 건강관리도 계속하게 되었다. 전화위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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