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에 대처하는 방법

한의사이자 의대생이 20년 공부하며 느낀 것

by May Gwon


중고등학교 6년간 중간 기말고사,

고등학생 때와 재수 시절 매달 친 모의고사,

수능,

한의대 6년간 중간 기말고사,

한의사 국가고시,

한의사 전문의 시험,

토익,

텝스,

의대 편입 면접,

의대 내신


지난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내가 치른 시험은 셀 수가 없다.

앞으로도 갈길이 멀다

P/F가 아닌 이상 시험의 취지는 여러 응시생의 실력을 비교하겠다는 것,

즉 줄을 세우겠단 것이다.

남보다 내가 더 잘 해야하므로 시험에는 경쟁이 따라온다.

'선의의 경쟁'이라고들 하지만

비교적 최근까지도 그런 건 가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경쟁과 우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힘들었다.

경쟁을 하니 편안한 우정을 유지하기가 어려웠고

우정을 중요시하니 그 시간에 공부를 못해서 내가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이 공부하는 걸 보면 압박감이 심해져서 다급해지다보니 차분하게 공부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되도록 학교에 있지 않고 집에서 혼자 공부했다.

경쟁자들을 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공부한 걸 숨기고 티내지 않으려고 애쓰고 다른 사람을 견제하느라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했다.

불안감은 커지고 상대방은 별뜻없이 한 말도 비뚤게 받아들여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이렇게 예전에는 경쟁을 건강하게 소화하지 못하고 경쟁에 압도되거나 경쟁을 회피했다.


경쟁을 어떻게 소화해야할까


공부하는 내내 나의 화두였다.

심리적인 압박과 고민으로 힘들어한 끝에 참기름을 짜내듯 결론이 한방울 나왔다.

30대가 되어 의대공부를 하려니 10년전처럼 악다구를 쓰고 싶어도

몸이 받쳐주질 않아서 불가항력에 의해 마음이 편해진 것도 없잖아 있다만.

어쨌거나 나름의 결론을 내린 지금은 확실히 덜 힘들다.


의대 시험과 같이 내용이 방대한 시험,

수업자료 PPT 몇천장이 주어지고 '어디 다 볼 수 있으면 봐라'하는 시험에서는

남과의 경쟁이 아니라 나와의 싸움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집단 지성을 발휘해야 한다.

내가 힘들게 정리한 자료, 알아낸 중요한 사실 등등을

나 혼자 알고 있는다고 내 점수가 올라가는 게 아니더라.


나혼자 자료를 정리하고 찾아보는 시간동안 나는 다른 중요한 자료를 보지 못했으므로 점수는 똔똔이다.

그리고 내가 정리한 것을 공유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 점수가 꼭 오르는 것도 아니다.

그 자료는 내겐 익숙하지만 다른 사람에겐 이미 많은 자료에 또 볼 것이 추가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오픈한 만큼 상대방도 오픈한다.

내가 공부하다가 A부분 공부에 필요한 추가정보를 공유하고

다른 사람은 B부분 공부에 필요한 추가정보를 공유하면

다른 사람과 나는 함께 A,B를 모두 맞춘다.

내가 A에 집중하느라 상대적으로 부족해진 B부분을 상대방이 채워주는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는 A만 알아낼 시간과 노력으로 함께하면 A, B를 모두 제대로 알고 넘어간다.

그런데 혼자서만 하면 A만 알게되고 A에서 지식이 더 확장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B까지 내 힘으로 알기 위해서 또다른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그러니, 무조건 같이 가야한다.




상대방과 내가 모두 A,B를 알면 내가 어떻게 이기느냐고?



A,B를 모두 '제대로' 외우는 사람은 드물다. 근본 원리를 꿰뚫어 다 이해하란 뜻이 아니다.

외워도 '완벽하게' 외워야 하고, 이해해도 '핵심'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내 몫이다. 경쟁자와 상관없이 내 머릿속에 제대로 넣고 출력해내는 건 내 몫이니까.




나는 공유했는데 상대방은 공유하지 않으면 어떡하냐고?


단기적으로는 내가 손해보는 것 같을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이란 섬세한 사회적 존재는 상대방의 벽을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특히 의대, 의료계는 좁은 사회이다.

4년, 6년간 한 교실에서 동기들과 고등학교처럼 수업을 듣고 수련을 받게 되면 같이 10년 지내는 건 기본이다.

꼼수를 부리는 이기적인 사람이 누구인지는

수십명, 100명 가까운 다른 동기들도 말을 하지 않을 뿐 간파하고 있다.

내가 의사로서 임상을 하든 기초분야에 있든 사업을 하든 뭘 하든

좁은 의사 사회에서 어떻게든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준다.

그럴 때 평판은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

오래 가려면 같이 가야 한다.


시간이 지나서 보니 내가, 내 가족이 아플 때 치료해 줄 사람도 우리 동기들이더라.

우리 가족을 치료해 줄 사람들인데 뭘 모르고 있으면 안되지 않나.

더 공부하라고 오히려 끌어줘야 한다.

공부 안 하는 동기가 있으면 이건 알아야 된다고 하나라도 더 입력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집단지성의 힘으로 같이 으쌰으쌰해서 상향평준화가 되어야 한다.

나 하나 잘 되자는 생각은 근시안적이고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거듭 반복하지만, 무조건 같이 가야한다.

20년 고생하긴 했지만 그 덕분에 '선의의 경쟁'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다시 학생이 된 보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