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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유진 Jan 29. 2023

서른넷, 전업 수험생이 되었습니다

2022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에 시작한 도전


하던 일을 멈추고 전업(full-time) 수험생이 되었다. 온국민이 두 후보의 엎치락뒤치락 다투는 투표 결과를 기다리던 그 날, 나도 합격이냐 불합격이냐 불확실한 확률 싸움에 내 운명을 걸어보았다.


2022년 9월 3일까지 공인노무사 2차 시험이 6개월 남은 시점이었다. 6개월... 운 좋으면 합격할 거고, 떨어져도 타격이 크지 않을 거라는 베팅하는 심정이었다.


2022년 3월 11일 신림동 고시촌 입성


세종에서 직장과 병행하며 공부할 땐 온라인 강의를 들었는데, 서울로 이사도 왔고 수험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 신림동에 있는 학원 실강을 등록했다. 서울대입구역 지하철역에서 버스로 20분 정도 더 들어가야 할 정도로 교통이 매우 불편한 곳이었다. 세상과 단절되기에 딱 좋은 위치란 생각도 들었다.


강의를 듣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첫 학원 모의고사가 열렸다. 강사님이 아무리 암기가 부족해도 절대 오픈북 하지 말고, 무조건 제출해서 객관적인 실력을 파악하라고 여러 번 말씀 하셨기 때문에. 일단 아는 것 위주로 문제를 풀고 답안지를 제출했다.


그 다음 주에 학원에 가니 강의실 앞에 첫 모의고사 등수표가 붙어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중간 순위부터 쭉 아래로 읽어 내렸다. 슬프게도 마지막 장까지 제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끝줄에 발견한 내 이름... 9점이었다. (충격 그 잡채)


집에 돌아가는 길에 서럽게 울었다. 그 이후로도 공부하다가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똑똑 떨어지는 그런 날들이 이어졌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답답함 그리고 점점 희박해지는 확률 속에서 자신감을 잃게 되었다.


멀리 보지 말고 오늘 해야 할 일에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버티는 것이 유일한 답이었다. 그렇게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밤12시까지 하루 13시간 공부하고, 공부 외에는 관심을 끄는 삶의 궤도로 진입했다.



2022년 9월 3~4일 대망의 시험 그리고 그 후


2차 시험을 치르고 왔다. 모르는 문제 없이 답안을 다 쓰고 나온 것 자체는 보람 있었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 시험이 정말 끝난 건가 싶은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맞이한 평범한 일상은 낯설었다.


2022년 3월 9일부터 9월 4일까지 6개월의 시간이 마치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았던 비현실적인 시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봄과 여름이 잘려나가고, 겨울에서 곧바로 가을이 된 기분이었다.


시험 결과는 11월 말에 나온다. 그 때까지는 수험생활을 했었던가? 싶은 느낌을 가지고 갈 것 같다.


어쩌면 과거의 어떤 고통은 비현실적인 기억으로 남는 것 아닐까? 훗날에 이 힘들었던 시기가 어떤 의미로 해석이 될 때. 내 선택과 노력이 정당한 것으로 보답될 때, 비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꼭 합격이란 결과가 나와주지 않아도.


6개월 동안 쓴 펜
그리고 답안지


과거의 나와 싸워서 뭐 하겠습니까!

하루종일 전업으로 공부를 하는 경험은 24살 대학생 이후 처음이니 10년 만이었다. 그리고 6천명 중 상위 5~7%만 3차 시험을 볼 격이 주어지는 경쟁적인 시험은 고등학교 3학년 이후 처음이니 14년만에 수험생의 긴장과 불안을 느낀 거였다.


서른넷에 전업 수험생이 되면서 나는 과거의 내 자신과 싸우기를 반복했다. 막 시험에 진입했을 당시엔 "열심히 공부하면 합격할 것이다" 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30대의 나는 생각보다 공부를 잘 하지 못했다.


무너지는 나날들이었다. 10년 만에 전업으로 공부하려니 집중력이 떨어지고, 14년만에 남보다 한 줄이라도 더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은 극복이 쉽지 않았다.


유독 30대가 되어 더 이상 성장이 멈춘 것이 아닌가 싶은 불안에 휩싸였다. 나름 그런 정체된 상황을 극복하려고 전문직에 도전한 건데.. 거기다가 주변에서 “그러니까 공부는 어렸을 때 하는 거야~” 이래 버리면 안 그래도 열불나는 마음에 기름 붓는 말이 되곤 했다.


그런데 그 불안은 과거 빛나던 시절의 나와 비교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거였다. 20대 시절만큼의 속도감은 아니더라도, 10대 시절만큼의 어떤 큰 변화가 오지 않더라도. 지금 최선을 다하는 것,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이 미래의 나를 돕는 거라 생각하면서 버텨야 했다.


20대 시절만큼의 속도감은 아니더라도, 10대 시절 만큼의 어떤 큰 변화가 오지 않더라도. 과거의 내가, 과거의 내 선택이 나를 만듦을 믿으며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이 40대, 50대의 내가 더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걸 늦게나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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