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시험관 시술 도전
인공수정, 체외수정(시험관) 시술을 받는 사람들의 후기들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사진들이 있다. 그 사진들을 보면서 현실적인 도움만큼이나 적잖은 충격도 받았다.
첫 번째 충격 사진은 노트에 정성스레 배란 테스트기 한 줄 한 줄을 붙여놓은 사진이었다. 배란 테스트기는 임신 테스트기처럼 진한 두 줄이 보일 때 가장 임신 확률이 높은 배란일임을 알려준다. 소변으로 검사하는 건데… 테스트기를 씻고 말린 다음 테이프로 붙이는 건가? 합격이 간절한 수험생의 스터디 플래너만큼이나 극진한 정성임에는 틀림 없다.
두 번째 충격 사진은 어마어마한 양의 주사기들을 하트 모양으로 만들고 하트 중앙에 2줄 나온 임신 테스트기를 배치한 사진이었다. 시험관 시술을 받을 경우, 과배란과 호르몬 촉진을 위해 거의 8주 동안 매일 집에서 주사를 놓아야 한다. 배에는 주사자국, 멍자국이 든다. 우승 트로피를 든 운동선수의 영광의 상처처럼 플라스틱 주사기들 빛나게 촬영한 그 사진은… 멋지면서도 괴상했다.
극적인 이야기와 이미지 사이에서 나는 주눅이 들었다.
그렇게나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인가. 나에게 난임병원에 가는 건 ‘열심과 열정’이라는 의미였다.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터벅터벅 병원에 가는 내 모습이 조금 부끄럽게도 느껴졌다. 단순하게 내가 견딜 수 있는 만큼 하려고 했던 마음도 외로웠다.
무던히도 많은 시도와 애씀이 있었지만, 결국 ‘기다림’과 ‘실패’ 그 사이에 어디쯤 있던 나에게 열심을 낼 의지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난임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어느 날 간호사가 나를 불렀다. 그리고 시험관 시술 동의서 서류를 여러 장 보여주면서 세부적인 주의사항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난자를 채취하기 위한 얇은 바늘이 난소 뿐만 아니라 방광을 찌를 수도 있어요. 피가 날 수 있어요.”
그렇다, 의술이 마법은 아닌 것이다. (진공 청소기처럼 난자만 쏙쏙 빼내는 기술이 있는 줄 알았다.) 아무리 현대 의술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시험관 시술을 위해서는 난소를 바늘로 찔러서 난자를 하나씩 하나씩 채취해야 하는 것이다. 외과 수술도 째고 직접 보고 묶고 하는 것이지 않나. 내 장기들이 스스로 상처를 아물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이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내 몸의 회복력에 기대어 위태로운 순간을 이겨내는 것이었다.
난자 채취를 하고 난 며칠 뒤, 배아 이식을 했다. 의사 선생님은 이식 전에 배아 사진을 보여주셨다. 8세포기에 해당하는 3일차 배아는 화려한 꽃잎사귀 모습이었다.
만약 이 배아가 잘 안착하여 태아가 되고, 출산을 통해 진짜 아기로 만나게 된다면 어떨까? 세포였던 순간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극적인 순간은 아주 잠깐일 뿐이다. 대부분은 이 배아가 잘 자랄지, 착상이 될 지 궁금해하며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이다. 착상이 되었는지 확인하려면 최소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침대에 자주 누워 있었다. 날씨가 따뜻하면 팟캐스트를 들으며 산책을 하고 배아가 어디 둥둥 떠다니지 않고 벽에 챡- 달라 붙기를 바라며 상상했다.
착상을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기에 기다리는 시간은 매우 매우 느리게 갔다.
막상 직접 시험관 시술을 경험해보니 경이롭지만 지루한 시간이다.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내는 스펙터클한 이야기만 있지는 않았다. 일상은 고요했다. 부디 바늘로 찔린 난소가 잘 회복되기를 바라고, 배아가 착상하기를 그저 기다리는 시간들이었다.
시험관에 대한 드라마 같은 이야기과 사진들에 쫄았던 게 무색할만큼. 한 번 해보니 마음이 조금 더 가벼워지고 견딜만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