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서의 4월

두 번의 우승은 그렇게 시작됐다

by 또리

복서의 4월


복싱을 하면서 가장 운동하기 편한 달은 언제일까. 사실 없다. 매일이 힘들고 매달이 버겁다. 그래도 꼭 하나를 굳이 뽑자면 난 4월에 한 표를 던지겠다.


4월은 매일 하던 달리기도 새롭다. 어제는 피지 않았던 꽃이 오늘은 피어있고, 어제 폈던 꽃이 오늘 보니 져있기도 한다. 매일 같은 하루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그저 세월이 흘러가 있곤 한다. 그러나 4월은 흘러가는 흐름이 몸소 흘러 마음에 와닿는다.


4월은 땀도 적당히 난다. 12월은 너무 춥다. 운동량에 비해 땀도 잘 안 흐를뿐더러 흐르는 땀이 금방 식어 내 몸을 금세 차갑게 만든다. 분명히 열정 있게 운동했는데 추운 기운 탓에 운동했을 때의 열정이 금방 잊힌다. 7월은 지나치게 땀이 많이 흐른다. 조금만 뛰어도 땀이 주룩 흘려버려 빠르게 기진맥진해진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때문인지 아무리 뛰어도, 아무리 주먹을 많이 뻗어도 여름은 왜인지 개운하지 않고 몸과 마음의 갈증이 더 증폭되곤 한다. 그래서 4월이 딱 좋다. 적당히 땀이 나고, 적당히 따뜻해서, 운동이 즐거운 시기이다.


시합을 나가기 시작한 후부터 4월은 조금 더 의미가 특별해졌다. 서울시복싱협회에서 체육관 단위로 출전하는 서울시민리그 복싱 대회를 매년 개최한다. 우리 체육관은 매년 그 대회에 나갔고, 나는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우리 체육관 여자선수로서 경기를 계속 뛰었다. 그중 2022년 3위, 2024년, 2025년 우승을 하였으니 내 비중이 없진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시민리그는 5월부터 9월까지 매달 경기가 있다. 이 긴 여정을 시작하는데 마지막으로 준비할 수 있는 시기가 4월인 것이다. 창문 밖으로 피는 꽃처럼 나도 복서로서 꽃을 피울 시기가 온 것이다.


2022년, 2023년, 2024년, 2025년 이렇게 4년 동안 나의 4월은 우리 체육관을 우승으로 이끌고자 했던 나의 책임감과 설렘이 동시에 담긴 시작점에 있던 봄이었다.


최근 읽은 에세이(시간의 말들, 조현구)에서 11월의 ‘줄어드는 낮의 시간처럼 희망도 함께 줄어드는 시기‘라고 표현한 문장이 있었다. 그 글을 읽고 나는 매달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멈춰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제 막 4월이 시작한 시점. 나는 4월마다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4월은 1월보다 더 새로운 시작이었고, 두려움과 떨림이 공존하는 달이다.


4월은 시작부터 유쾌하다. 모두가 거짓말을 해도 허용이 되는 그런 영화 같은 날이 바로 4월 1일이다. 만우절. 학창 시절 생각해 보면 가장 즐거웠던 날이 4월 1일이었다. 3월 학기 초에는 설레면서도 사실 두려운 마음이 더 컸었다. 친한 친구가 없는 반에 배정을 받았을 때, 짝꿍은 누가 될지, 담임선생님은 누구일지 등 아무것도 예상되지 않은 학기의 시작이 항상 무서웠다. 하지만 점차 새로운 반에 적응하게 되고, 이번에는 누가랑 놀지 점차 정해지고 난 후에 처음 맞는 이벤트가 바로 4월 1일 만우절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우절을 기념으로 가장 특이한 장난을 치기 위해 친구들이랑 머리를 맞대었다. 우리가 생각했을 때 교탁에서 가장 잘 보이는 앞자리에 엎드린 학생의 모양을 만들었다. 들어오시는 선생님들마다 학생 보고 일어나라고 하고, 안 일어나니 오셔서 후드를 벗겨내었을 때 아무것도 없는 모습을 보고 놀랄 때마다 온 교실에 꺄르륵 소리가 울러 퍼졌었다. 옆반 친구들이 와서 무슨 일이냐고 할 때마다 왜 이렇게 뿌듯했는지. 가장 재밌는 반으로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10대를 통틀어서 4월은 고1 때 가장 즐거웠던 4월 1일로 기억하고 있다.


20대의 4월 1일은 고1 때처럼 크게 기억나는 날이 없다. 복싱을 시작한 후부터는 아무래도 만우절이라는 의식 없이 체육관을 가지 않았나 싶다. 거짓말처럼 체력 운동을 했고, 눈물, 콧물, 가끔은 핏물까지 쏙 빼내며 운동을 했던, 만우절도 통하지 않는, 비록 생활체육대회일지라도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였다.


얼마 전에 꿈을 꿨다. 전에 다니던 체육관 관장님이 곧 대회 시작인데 제대로 운동을 안 한다면서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셨다. 오래간만에 기르고 있는 머리였는데 꿈에서 얼마나 속상했는지. 실제로 그렇게 하신 적은 없지만 나 스스로 운동을 안 간 2026년 4월 1일에 대한 죄책감이 꿈으로 표출된 게 아닌가 싶다. 그 꿈을 꾸고 난 후 지금의 나를 돌아보며 복서의 4월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30대 나의 4월은 어떻게 기억될까. 그 첫 시작인 30세의 4월은 어떻게 보내는 게 좋을까. 많이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더 살아갈 일이 더 많이 남은 시점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더 단단해지기 위해서 일상을 되찾겠다. 그래서 이번 4월은, 무너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루틴을 만들어보려 한다. 매일 짧게라도 몸을 움직이고, 나를 붙잡기 위해 글을 쓰고, 사람에 휩쓸리기보다 나를 지키는 선택을 하면서.


시간이 흐르고, 목표가 바뀌어도, 매년 4월은 유난히 기억에 남는 달로 한 해 한 해를 남기지 않을까. 나는 아마도 매년 4월마다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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