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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써니 Mar 19. 2023

일주일 중 단 하루

미라클 홀리데이

월화수목금 일하고, 토요일 쉬고 주일은 예배드리고 이런 패턴이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년 가까이 월화수목금 일하고 살림하고 육아하고, 토요일은 강의하고 주일은 예배드리고 가족과 함께 하는 일주일이었다. 이런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쉼표 없는 삶을 사는 것 같았다. 월요일이 꼭 일요일의 다음날같이 느껴졌었다.


일주일 중 하루는 쉬고 싶었다. 언제가 좋을까 생각만 하다가 3월부터 월요일을 그날로 정했다. 월요일을 나만의 휴일로 정하고 나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평소라면 토요일이 분주하고 체력적으로 지치는 날인데 월요일에 쉰다고 하니 굉장히 여유롭게 느껴졌다.  첫 주에 그런 마음이 들어 신기하다 생각했는데 두 번째 주에도 같은 마음이었다. 오히려 그 마음이 증폭된 것 같기도 하다.


월요일을 쉬는 날로 정하면서 아티스트 데이트를 하는 날로 정했다. 아티스트 데이트는 쥴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웨이] 책에서 창조성의 발견을 위한 도구로 소개되었다.


매주 두 시간 정도 시간을 정해두고, 이 시간에는 당신의 창조적인 의식과 당신 내면의 아티스트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다. 아티스트 데이트는 소풍 같은 것, 즉 미리 계획을 세워 모든 침입자들을 막는 놀이 데이트의 형태를 띤다. 아티스트 데이트에는 당신 자신과 내면의 아티스트, 즉 당신의 창조성이라는 어린아이 외에는 아무도 데려가서는 안된다. 연인이나 친구, 배우자, 아이들, 그 누구도 말이다.

-중략-중요한 것은 우리의 예술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언제라도 꺼내 쓸 수 있게끔 창조성의 샘물을 채워놓는 일이다.  (아티스트 웨이 58~61페이지)


첫 번째 아티스트 데이트에서는 어색했다. 뭘 해야 할지 싶었다. 나를 위한 사치 같은 생각이 들었다. (고작 몇 시간인데 사치 같은 시간이 들었다니, 도대체 나는 시간을 누구를 위해서 써 왔단 말인가?) 보다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내면의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나는 화원에 도착해 있었다. 식물멍을 하며 이름도 모르는 여러 식물들을 보고 있자니 처음에는 지루했다. 그러다가 생각이 멈추었다. 그냥 지금 여기 내 앞에 있는 꽃과 나무들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 가져오고 싶었지만 그중에서 오래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아이들을 데려왔다. 집에 오자마자 분갈이를 해주고 물을 주었다. 어디에 두면 좋을지 집안 곳곳에 배치하다 보니 저녁이 되었다. 분명 내 기준에 생산적이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하루가 꽉 찬 기분이었다.


두 번째 아티스트 데이트는 전날부터 설레었다. 지난번 화원보다 조금 더 멀고 조금 더 규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수영을 배울 때 물속에 고요하게 있는 그 기분이 좋았었는데 그와 비슷했다. 거대한 규모의 화원을 거닐면서 그 안에 내가 느껴졌다. 내가 걷는 게 느껴졌고 내가 생각하는 게 느껴졌다. 느끼는 나를 느끼는 기분이랄까? 이번에는 많이 사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3개의 식물을 데려왔다. 첫 번째 회사를 퇴사하며 과장님께 이름 모를 화분을 선물했었고 몇 달이 지나서 회사에 놀러 갔을 때 과장님께서 영양제까지 꽂아가며 키웠던 식물이었다. 그 식물 이름은 푸미라였다. 화원을 거니는데 푸미라가 보였다. 그 넓디넓은 화원에 푸미라가 딱 하나 있었다. 고민도 없이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미세먼지를 먹는다는 아이와 벽에 걸어 놓으면 좋을 고사리까지 담았다. (고사리는 먹는 건 줄 만 알았었다....)


집에 와서 새롭게 배치 하는데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창조성의 샘물이 찼는지 안 찼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중요하지 않다. 그 하루가 분명 일주일의 쉼표를 찍고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 하루가 즐거웠으니 나는 그걸로 충분했다.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일주일에 하루, 그리고 고작 몇 시간인데 그 시간들로 인해 내 3월이 훨씬 풍성했다. 그렇게 봄이 오고 있었다.


내일은 또 뭘 해볼까? 기대가 된다. 그리고 한 편에서는 뭘 꼭 그리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도 올라왔다. 그냥 나의 어린아이를 만나는 시간이니 꼭 어딜 가지 않아도 된다고 꼭 뭘 하지 않아도 된다고. 단지 시간을 내어 달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 내일은 딱 두 시간 나의 창조성의 샘물이 차는 시간!! 설레고 벅차다. 미라클 홀리데이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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