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스물여덟 살쯤 하는 게 좋겠어. 그리고 아이는 서른두 살쯤 낳으면 되겠는걸.’ 인생의 계획을 수 없이 세우며 나 혼자 했던 말이다.
20대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면 시간을 내고 열심을 내면 되는 일이었다. 열심히만 한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살았다. 특별한 것을 욕심내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음먹은 대로 살 수 있다고 믿었던 20대는 빨리도 지나갔고 30대가 되었다. 내 계획대로 30대의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불안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믿었다.
내 믿음 덕분인지 성실하고 따뜻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결혼 전 가열차게 살아왔던 내 열정은 결혼이 주는 안정감 아래서 잠시 쉴 수 있었다. 시간이 자유로웠던 남편과의 신혼생활은 지금 생각해도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 1~2년은 신혼을 보내다가 아이를 낳고 싶었고 남편은 나이가 있으니 서두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우리 둘은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기기를 바라며 평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친정 엄마는 서른여덟의 나이에 나를 다섯째로 낳으셨다. 그 당시만 해도 노산이었을 것이다. 아들을 하나 더 얻으려다가 나를 낳으셨다. 엄마는 막둥이인 내게 늘 따뜻하고 유머 있고 밝은 엄마였다. 나는 결혼은 늦었지만 친정엄마가 서른여덟에 나를 낳으셨으니 나도 그 나이까지만 낳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데드라인이었다. 그리고 나는 서른여덟이 되었다. 나는 엄마가 다섯째를 낳았을 나이에도 아직 엄마가 되지 못했다.
엄마가 되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패턴대로 엄마가 되기 위해서도 열심을 냈다. 음식재료를 유기농으로 바꾸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매일 뜸을 떴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지는 않았다. 불임 전문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둘 다 별 문제가 없지만 엄마 아빠 나이가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열 번이 넘는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을 하는 동안 스스로 배에 주사를 놓아야 했다. 시술을 하고 피검사를 하기까지의 그 기나긴 과정 속에서 나의 몸이 시들어 가는 것 같았다. 계류유산과 자궁외 임신으로 수술을 하고 몸은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지나가는 어린아이와 엄마들만 봐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노력하면, 그 비슷한 것이라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는 아니었다. 나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인간의 나약함을 처음으로 마주했던 시간들이었다.
아이를 포기하고 나서 남편과 나는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한강을 달리며 서로의 마음을 보듬었다. 나만 엄마가 안된 것이 아니었다. 남편도 아빠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몇 달을 미친 듯이 달리고 나서 우리도 모르게 우리에게 생명이 찾아왔다. 내 나이 마흔 가을에 아이가 임신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마흔에 처음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