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떤 유튜브에서 연말을 맞이하여 9, 19, 29, 39, 49, 59세 사람들을 인터뷰한 것을 본 적이 있다. 해가 바뀌면 나이의 앞자리가 달라질 사람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연말연초가 되면 나이를 새삼 헤아려보며 마음이 설레기도, 뒤숭숭해지기도 하는 것. 그런데 그 중 정말 인상적인 내용은 29, 39, 49세 모두 자기는 아직도 철이 들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법적으로 말하는 어른이고, 심지어 39, 49세는 아이도 있었는데 아직도 철이 들지 않았다고 표현하다니. 59세이신 분이 이제야 조금 철이 든 것 같다고 한다.
나 자신은 언제 철이 들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면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으면 철이 든 나 자신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직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친구들을 보면 또 그건 아닌 것 같단 생각도 든다. 그런데 또 막상 우리 엄마, 아빠를 생각하면 느낌이 다르다. 우리 부모님은 내 나이 때 이미 딸 둘을 키우고 계셨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셨는데, 지금의 나 자신을 생각하면 가정을 꾸리기엔 너무 철딱서니 없는 느낌...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아니, 우선 어른이란 뭘까?
스스로를 돌이켜 보았을 때 아주 가끔,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순간들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안좋은 일을 겪어도 출근을 할 때, 학생 때처럼 자체 공강하지 못하고 마음 잡으며 출근하는 나 자신을 보면 그래도 아, 이게 어른인가 싶다. 내가 살 공간을 구하고 서류 문제와 법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 그리고 그 공간을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물건들로 채울 때 또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겠다고 결정하고 결혼식과 결혼 생활을 준비하는 지금 조금은 어른 같기도 하다. 이런 순간순간들이 모여 나 자신을 단단하게 하고,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아, 그러고 보면 어른이란,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나의 생각과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것. 나의 생계를 책임지고, 나의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것. 만약 가정을 꾸린다면 내가 선택한 나의 배우자와 아이에게, 가정을 꾸리지 않는다면 혼자 살아가는 스스로에게 책임을 다하는 것. 수많은 선택지 중 내가 선택한 것을 최고로 만드는 것이 내가 책임을 지는 방법이라면, 지금 나는 조금씩 더 어른이 되어 가는 중인 것 같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다듬어지고 빚어져 갈 것이다.
소위 '나잇값'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굳어져서 아집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나잇값'하는 어른이 되려면 계속 치열한 고민을 하고 내 선택 앞에 최선을 다해 서 있어야 할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더 많이 소통하고, 나를 편안하고 안락한 자리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성장시킬 수 있는 환경에 두고, 스스로 사색할 수 있는 능력을 계속 키워야겠다. 내가 죽는 날 내 옆에 어떤 사람들이 내 옆을 지켜줄까 생각한다면, 기왕이면 좀 더 지혜로워져서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