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차 간호사, 2년차 연구원, 그리고 2년차 백수

"오늘은 뭐했어?" 남편의 질문에 답하는 편지

by 오월씨

사랑하는 남편에게


10년 넘게 일을 해오던 내가 일을 하지 않은 지 벌써 10개월차에 접어들었어. 어느 날 여보가 그랬지. 매일 나에게 "오늘은 뭐했어?"라고 물었을 때 나는 항상 얼버무림으로 답을 한다고. 난 직장인 10년의 삶 이후 찾아온 '백수의 삶'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것 같아. 일을 하지 않는 나를 받아들이는 건 어쩐지 어색했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지 않는다는 건 내 생활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는, 어른다운 어른이 되지 못하는 것만 같고 말이야. 그럼에도 여보는 항상 괜찮다고 말했어. "여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여도 좋으니 나는 여보의 하루가 궁금해." 누군가 나의 하루를 궁금해 해준다는 건 참 마음이 따뜻해지는, 고마운 일이야, 그치?


백수, 어찌 보면 세상의 수많은 직장인들의 로망 아닐까? 대부분의 나의 시간을 회사에 저당 잡히는 삶이 아닌, 내가 마음대로 나의 24시간을 쓸 수 있는 삶. 물론 사명감이라던가 꿈을 위해,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혹은 돈을 벌기 위해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회사를 즐겁게 다니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돈 많은 백수가 꿈이야!"를 외치는 직장인들이 참 많잖아. 물론 여보도 그 중의 한 명이기도 하고. 비록 돈 많은 백수는 아니지만, 그리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얼떨결에 백수가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로망을 나는 실현해 버렸는데도 나는 떳떳하지 못했던 것 같아. 왜 그랬을까.


그래서 지난 시간들을 한 번 돌이켜보려고 해.




여보와 처음 만났을 땐 한창 열심히 일하는 간호사였지. 나름 그래도 돈 좀 번다는(?) 대학병원 간호사. 그렇지만 나는 고민이 참 많았어. 병원에서 오래 일할거냐, 라고 한다는 질문에 'Yes'라고 답하지 못하면서도 그렇다고 다른 길을 모색하지도 않는 어영부영한 상태. 그냥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눈 뜨면 출근하고, 퇴근해서는 소소히 시간을 보내면서 지냈어. 그래도 일하면서 대학원도 다녀보고, 소소한 취미 생활도 활발히 하는 내 딴에는 노력을 했던 것도 같고. 그러다 여보를 만나면서 가정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그럴려면 근무 환경이 좀 더 지금보다는 나아지길 원했어. 첫째로는 교대를 하지 않는 직장, 둘째로는 육아 휴직이 자유로운 직장, 셋째로는 여보와 내가 같이 살 수 있는 위치,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내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는 곳. 여보를 만나고 난 후 드디어 직장을 옮겨야겠다는 용기가 생겨 공공기관 연구원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지. 그게 내가 간호사 만 10년을 딱 9달 앞둔 시점이었어.


일도 열심히 하고, 또 일을 살려 의료 봉사도 나갔던 시절


공공기관에서의 직장 생활은 병원과 정말 다른 곳이었어. 병원에서의 직장 생활도 꽤 재미있게 하긴 했지만, 점심 시간도 넉넉히 주어지고, 휴가도 내가 원하는 날에 쓸 수 있다니. 다행히 사람 복은 항상 좋았어서, 병원에서 좋은 선생님들과 함께 일했던 것처럼 이 곳에서도 좋은 분들과 일할 수 있었어. 그렇지만 여보도 알다시피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딱 하나 생겼지. 경기도와 강원도를 오가는 출퇴근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견디기 어려웠어. 통근 버스도 있고, 출퇴근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당연히 나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차멀미가 심한 나에겐 매일매일이 너무 괴로웠어. 옆에서 보다못한 여보가 결국 회사를 그만두는 걸 제안할 정도로. 몇 달을 혼자 고민도 하고 여보와 상의도 정말 많이 했었지. 주말부부도 고민했지만 여보는 주말부부 할거면 왜 결혼하냐고 했고, 나도 가족은 부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빨리 이직 준비를 해서 이직을 하는 게 제일 좋은 방안이었지만 출퇴근에 에너지를 다 써서 집에서는 잠만 자는 생활을 했었지.

병원에선 가져보지 못한 나의 책상을 드디어!


결국 나는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어. 한 번 그만두는 게 어렵지, 두 번 그만두는 건 쉽더라고. 나의 퇴사는 사실 여보의 용기였어. 외벌이가 되어도 감당할테니 일단 내 몸을 먼저 챙기자고 해주었으니까. 나도 여보의 용기에 힘입어 퇴사하자마자 여행이나 휴식의 시간 없이 바로 이직 준비에 돌입했어. 영어 점수를 만들고, 통계 프로그램 자격증을 취득하고, 이력서를 업데이트 하고, 뭐 취업 준비생들이 하는 그런 것들. 나의 교만함이었겠지만, 나는 꽤 빨리 이직할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래도 나름 좋은 학교에 석사도 있고, 영어 점수도 이만하면 나쁘지 않고, 직장 생활 경험도 많고, 부가적으로 통계 등 다른 능력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취업 시장에서 보는 나는 지난 날의 나의 삶과 같았던 거지. 열심히는 하는데 무언가 특출난 분야가 없는 두루뭉술한 사람. 그 동안 해 왔던 분야는 살짝 다르지만 나의 가능성을 믿어줘서 함께하자는 곳을 감사하게도 만나긴 했지만, 그 곳에 입사하면 새로운 분야에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할 것 같고, 무엇보다도 일하면서 박사도 하길 원해서 내가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어. 우리는 아기 계획도 있었으니 말이야.


그 때부터 나의 진짜 고민이 시작되었던 것 같아. 내가 지금, 그리고 삶에서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단 한 순간도 쉰 적이 없었어. 대학교도 휴학 한 번 없이 스트레이트로 졸업했고, 졸업하자마자 일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달려온 거지. 그래서 일하지 않는 나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그래서 퇴사하고도 고민 없이 바로 취업 준비를 했고. 그런데 몇 달 취업 준비를 해보기도 하고, 여보와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그저 지금 눈 앞에 닥친 일을 해왔지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 나는 반박했지,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없지 않겠냐고. 그런 나에게 여보는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걸 제안했어. 일을 하고 싶으면 해도 되고,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되니까 우선은 나 자신부터 돌보라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빚이며 앞으로의 생활과 가족 계획도 있어서 마음이 조급했지만, 일단 멈추기로 했어.


그리고 나는 고장이 나버렸지. 그 동안은 그래도 주변에서 뭐하고 지내냐고 물으면 "이직 준비하고 있어."라고 했는데 이제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백수가 되어버렸으니. 매일 울고 안 좋은 생각을 하면서 여보를 괴롭히는 것도 미안하고, 정말로 큰일나겠다 싶어 내 인생 처음으로 정신과라는 곳을 가보게 되었어. 거기서 아직도 선생님이 했던 말씀을 잊을 수가 없어. 나라는 사람을 직장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고. 일을 하지 않는 나도 나라고. 그제서야 아차 싶더라고. 나는 일로써 나를 정의하고 증명하려고 했고, 일 외의 것은 부가적인 것으로 취급해 왔다는 걸 알게 되었어. 길지 않은 시간동안 꾸준히 상담하고 약을 먹으면서 다행히 마음 상태는 빠르게 회복되었어. 그 과정에서 여보의 든든한 지지도 있었고.




여보도 아는 이야기지만 다시 돌이켜 생각하다 보니 이야기가 참 길었네. 어쩌면 나의 진짜 백수다운 백수 생활은 퇴사 후 5개월이 지난 올해부터 시작된 것 같아. 작년 5개월동안 시간은 누구보다 여유로웠지만, 마음만큼은 그러지 못했던 나의 옆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기댈 곳이 되어주어서 너무 고마워. 오늘 뭐했느냐고 여보가 묻는다면 난 오늘은 말할 거리가 생겼어 - 여보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고. 별 거 없어 보이는 나의 오늘을 궁금해 해줘서 너무 고마워. 여보의 질문 하나도 그냥 넘기지 않고 열심히 귀담아 듣고 대답할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 사랑해, 여보.


여보를 사랑하는 백수 아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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