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치앙마이 여행에서의 단상
지난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작년 8월에 퇴사한 이후 이직 준비와 여러 어려움에 대해 쓰면서 작년 한 해가 참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그 어려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던 건 남편 덕분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2024년에는 이직 준비를 하는 백수였다면, 남편과 상의한 이후 2025년에는 일을 하지 않는 나를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2025년 새해가 되어 새로운 마음으로 백수의 삶을 살기로 한 때에, 회사를 다닌다면 하지 못했을 것을 해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역시 여행. 회사를 다니면 하기 어려운 장기 여행을 가보기로 했다. 돈을 벌지 않으니 여행 경비가 부담스러워서 여행 경비가 저렴한 곳, 그리고 1월의 날씨가 여행하기 좋을 곳을 고르다 보니 치앙마이로 2주 동안 여행하기로 정했다. 마지막 4일은 남편도 휴가 내고 합류하기로 했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 때도 내가 가고싶은 곳을 간 게 아니라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서 정했다는 점이 참 나답다 싶다.
치앙마이로 떠나던 날, 남편이 나를 공항까지 바래다주었다. 출국장에서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분명 나는 결혼 전까지만 해도 혼자 여행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결혼한 지 반 년만에 혼자 비행기를 타는 걸 덜컥 겁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러다 남편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될까봐, 결혼을 하고 백수가 되어도 나라는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사실 남편 앞에서 실컷 찡얼거렸지만) 씩씩하게 비행기를 탔다.
늦은 밤에 도미토리에 도착해서 일단 눈만 감았다가 일어나니 아 맞다, 나 치앙마이에 도착했구나. 혼자서 씩씩하게, 열심히 돌아다니는 여행자가 되어보자 하고 길을 나섰다. 혹시나 유튜브에 도전해볼까 싶어서 빌려본 오즈모포켓3는 손에 들긴 했지만 촬영하는 게 너무 어색했다.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 눈치가 괜시리 보였다. 본인이 나올까봐 신경쓰거나 싫어하면 어쩌지? (물론 나도 너무 싫어해서 만약 내가 유튜브를 한다면 모자이크를 할 생각이었지만, 상대방은 그걸 알 수 없으니까.) 그래서 손과 눈이 따로 놀더라. 유튜버들은 다들 어떻게 하나 모르겠다. 혼자서 카메라 보고 말도 잘하던데.
그러고보면 옛날부터 회사원들의 입버릇 중 하나가 유튜브 시작한다가 아니었을까. 나도 그 중 하나였고. 특히 요즘 같이 내가 나다워도 괜찮은 세상에서 어떤 플랫폼에서든, 어떤 콘텐츠로든 나를 계속해서 노출시키고 소통하는 게 너무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게 아마도 흔히 말하는 ‘퍼스널 브랜딩’일까? 내가 자주 보는 콘텐츠도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담긴 콘텐츠들이었던 것 같다. 노홍철, 무빙워터, 썸원, 뭐 이런 분들의 콘텐츠를 좋아하고 자주 보니까.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단순히 여기서 카메라를 든다고 해서 내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내 이야기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 작게라도 시도하란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 시도조차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더란다. 치앙마이에 와서 보니 태국 하면 코끼리가 떠오를 정도로 코끼리 지갑, 코끼리 바지 이런 것도 많이 팔던데 ‘나’ 하면 떠오르는 건? 글쎄.... 그러면 내가 관심있어 하는 건? 그것도 잘 모르겠다. 남편이 백날천날 여보가 좋아하는 거 해, 여보가 관심있는 거 해, 라고 말해줬는데도. 이 정도면 3n년 인생 헛산 거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스물스물 올라온다. 사춘기부터 다시 겪어야 할 것 같은데, 성장 발달의 과업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결국 자기 찾기부터 다시 하게 되나보다. 그래도 한 명의 사람을 키우기 전에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애써 위로해본다.
재미있었던 건, 서양인들의 웰니스에 대한 관심을 치앙마이에서 볼 수 있었다는 거였다. 서양인들은 정말로 웰니스에 관심을 가지고 요가 클래스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식당이나 쿠킹 클래스에 가서도 오가닉인지를 챙기거나 베지터리언 푸드를 찾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고. 우리 나라도 그런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잘 보지 못한 걸까도 문득 궁금해졌다.
그나저나 갑자기 요가 클래스라니, 쿠킹 클래스라니! 나도 이 참에 안해본 것들에 대한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요가 클래스를 들으면서 내가 평상시 내 몸에 얼마나 많은 힘을 주고 살았는지, 그리고 삶에서 힘을 빼고 자연스레 흘려 보내야 하는 순간에서조차 나는 힘을 주고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3n년 인생 중 몇 년 보지도 않은 남편조차(대신 관계의 밀도가 촘촘하지!) 힘빼라고, 그렇게까지 안해도 된다고 말해주었는데 나는 요가 클래스에서 절절히 느끼고 있다. 쿠킹클래스를 통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태국 음식의 재료도 직접 보고 손질하면서 더욱 깊이 알게 된 느낌이다. 취향을 깊이 탐색한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었다. 새로운 경험에의 도전은 새로운 감각을 깨우고 영감이 되어주었다.
그 이후 남편이 합류해서 더욱 즐거운 여행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왔다. 여행의 시간이 나의 인생을 뭔가 터닝포인트처럼 바꾼 것은 아니지만, 이런 작은 시도들을 더 많이 해보고, 더 많은 것을 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매일 딱 1%씩만 더 성장하겠단 생각으로, 나의 시간들을 잘 채워가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그리고 나 다운 이야기를 하는 것 - 24시간의 시간을 일상으로 채워갈 때 무엇으로 채울까, 라고 했을 때 나답게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는 게 마냥 좋기보다는 여행보다 더욱 낯선 일상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그 낯선 일상에서 도망치지 않고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