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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Aug 16. 2019

‘힙스터’가 되기 위한 관문, 신해경을 들어라

08, 신해경


* [B레이더] 시리즈는 필자가 기자 생활 당시 헤럴드경제를 통해 연재했던 글들을 옮겨놓은 것임을 밝힙니다.



‘힙스터’마저 사로잡은 신해경
가수 신해경은 2014년 ‘더 미러(The mirror)’라는 이름으로 ‘너의 살롱’ ‘플루토’ 등을 발표했다. 하지만 별 다른 반응은 얻지 못했다. 그의 잠재력은 올해 신해경이라는 이름으로 첫 번째 미니앨범 ‘나의 가역반응’을 발매하면서 폭발했다. 이 앨범은 일렉트로닉 음악 레이블로 유명한 영기획과 만나면서 세상에 나왔다. 이에 대해 영기획 하박국 대표는 “음악이 너무 좋아 그것으로 충분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업계 관계자들과 대중의 생각도 같다. 관계자들은 올해의 가수를 논할 때 신해경을 빼놓을 수 없다고 입 모아 말한다. 새로 생겨난 문화 집단인 ‘힙스터’를 다룬 책 ‘후 이즈 힙스터’에서 제시한 ‘힙스터 테스트’에는 이런 항목이 있다. ‘최근 가장 즐겨 듣는 건 신해경과 실리카겔이다’. 참고로 이 테스트에는 ‘맥주는 수입맥주만 마신다’ ‘페이크 버진이나 김밥레코드가 주최하는 내한공연에 가본 적이 있다’ 등의 항목이 있다. 그만큼 신해경은 ‘느낌적인 느낌’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무서운 가수다.



대표곡 ‘모두 주세요’ ‘다나에’
두 곡은 첫 번째 미니앨범 ‘나의 가역반응’의 더블 타이틀곡이다. 앨범 수록곡 모두 그렇지만, 특히 두 곡은 ‘더 미러’로서 냈던 트랙들보다 좀 더 록적이고 힘의 강약이 실렸다는 점에서 신해경의 또 다른 시작점이다.


‘모두 주세요’의 시작은 외롭고 쓸쓸한 기타 연주다. 어딘가 갇혀 있는 듯한 도입부가 끝나고 후렴구로 들어서는 찰나의 순간, 보컬은 잠시 숨통을 트며 반짝이는 빛을 본다. 하지만 이 빛은 아름답기보다 별의 슬픈 폭발과도 같다. “하지만 난 널 지울 수도/널 가질 수도 없단 걸 알고 있니”라는 가사처럼 말이다. 기타와 드럼, 건반 등 악기 연주는 점점 드라마틱해지고 볼륨은 커진다. 감정이 고조될수록 미끄러지듯 이리저리 부유하는 느낌이 가장 큰 특징이다.


‘다나에’는 들릴 듯 말 듯 아주 작은 연주로 시작되기 때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소리에 집중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신해경의 목소리는 듣기만 해도 시리도록 아름답고 아파서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후렴구에서는 모든 소리가 갑자기 끊긴다. 잠시 후 신해경은 ‘아아-’라며 울분을 토해내듯 격 한 감정으로 다시 노래를 시작한다. 바로 여기서 잠깐의 침묵이 터진다. 그러고는 갑자기 깜빡이는 멜로디가 흘러나오며 진짜 노래가 끝이 난다. 때로는 감정의 절제가 더욱 큰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진=영기획 제공


눈 감고 신해경을 들으면 또 다른 우주가 눈앞에
신해경의 뿌리는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이상에 있다. 이전 활동명 더 미러는 이상의 시 ‘거울’에서 가져왔으며 신해경 역시 이상의 본명인 김해경에서 왔다. 앨범명 ‘나의 가역반응’도 이상의 초기작 ‘이상한 가역반응’을 모티브로 했다. 그렇다 보니 신해경의 노래 역시 황량한 내면 풍경을 향한 이상의 작품과 닮아있다.


신해경은 불안과 공포, 소외 그리고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의식의 흐름 등을 표현한다. 사운드는 어디에 정착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뉘앙스다. 미디 작업으로부터 나온 사운드의 질감은 서늘하다. 신해경의 노래를 들으면 파편화된 내면을 뒤로한 채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나’의 껍데기를 들추게 된다. 조심스레 들어 올린 내부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각각의 시공간이 존재했던 것처럼. 신해경은 바로 이 껍데기와 알맹이의 괴리, 그리고 미처 알지 못한 알맹이 속 우주를 파고든다.


신기한 건 힘을 한껏 뺀 신해경의 목소리는 아른거리는 우주를 상상케 하는데, 사운드는 손 뻗으면 닿을 것 같다. 앨범명인 ‘가역반응’은 정반응과 역반응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을 뜻한다. 이처럼 신해경은 양가적인 요소를 한데 모아 선명한, 하지만 결코 정의할 수 없는 그림을 만들어낸다.



잊고 있던 감정이 와락 안기다
신해경이 시인 이상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만큼 가사 역시 마찬가지다. 이성관계에서 느끼는 외로움보다 더 깊은 곳을 훑는다. 누군가가 떠났기에 다가오는 이별의 감정이 아니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적인 고독에 가깝다.


그렇다고 표현이 거창하지는 않다. “오늘은 따라갈래요/안 된단 말 하지 마요”(권태) “지나가던 날들이 변해갈 때/숨은 기억들을 주워 담을 때/잊었던 계절이 돌아 와요”(잊었던 계절) “모든 게 무너져 내리고/서로를 바라볼 수도 없어/이 무력함 그댄 아나요/아니 모를 거야”(몰락) “나 혼자 여기 남아서 이렇게/너의 기억이 낡 길 기다렸어”(화학평형) 등처럼 담백하면서도 시적이다.


앨범 리뷰 중 인상적이었던 글을 하나 소개한다. 글쓴이는 우울증이 심해졌을 때, 텅 비고 어두운 방에서 홀로 울고 있을 때, 울다 지쳐 모든 걸 포기했을 때 신 해경의 처음 노래를 들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고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지만 그가 받은 건 오히려 위로였다. 외로움과 섞인 모든 감정들이 품에 와락 안겨 설명할 수 없는 벅참을 느꼈으리라. 그렇게 신해경은 숨겨진 우주를 항해하며 모두를 보듬는다.



추천곡 ‘잊었던 계절’
‘나의 가역반응’에서 가장 화사하고 밝은 톤의 노래다. 잊었던 계절이 다시 돌아오는, 그리 달갑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편안한 멜로디가 흐른다. 이 편안함이 주는 안정감은 마치 故김광석을 비롯한 80년대 노래가 주는 것과 비슷하다. 또 1분 53초의 짧은 곡이지만 강렬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노래하다 말미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내뱉는 숨이 주는 충격은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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