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_포대로 시작해서 포대로 끝나는, OA(의견제출통지) 대응하기
“포대”라고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감자 포대 또는 밀가루 포대가 떠오르지는 않으시나요? 흔히들 질긴 종이로 만들어져 감자나 밀가루가 가득 담겨 있는 '포대자루'라는 말에 익숙하죠.
변리사들에게 “포대”는 사뭇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건을 배정받으면 해당 건의 히스토리가 모두 철사로 정리된 포대를 함께 전달받거든요. 건의 히스토리라 함은, 해당 건의 명세서가 출원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출원인과 주고받은 서신들과 특허청에 제출하거나 특허청으로부터 발부받은 일체의 서류를 말합니다. 그래서 포대는 그 건의 히스토리가 길수록 일반적으로 더 두껍지만, 간혹 히스토리가 짧더라도 명세서가 긴 경우에는 그 두께만 한 뼘 정도 되는 어마어마하게 두꺼운 포대를 볼 수 있어요.
담당하고 있는 건이 늘어나면서 제 달력은 마감일로 빼곡해졌고, 포대도 쌓여갔습니다. 사무소에 따라서 전자 포대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제 사무소는 실물 포대를 사용했기 때문에 제 책상의 한켠에 포대가 말 그대로 쌓여갔습니다. 벽처럼요. 또 제 책꽂이에도 포대가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죠.
변리사 사무실은 주로 타자 소리만이 맴돌 뿐 고요한데요, 고요 속에서 간혹 "쿵"하는 소리가 난다면 누군가가 두꺼운 포대를 책꽂이로 또는 책상으로 옮기는 소리입니다. 가끔씩은 "우당탕탕, 쿵"하는 소리 뒤에 "헉, 나 포대 찢어졌어ㅠㅠ"라고 이어지는 슬픈 아우성도 들리곤 합니다... 포대와 함께 동거동락하는 세상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죠.
아무튼, 변리사의 OA건 배정은 이렇게 포대를 전달받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면 포대를 살펴보면서 통신상의 특이사항이나 특별한 요청은 없었는지 검토를 하고, 청구범위를 보고 어떤 발명인지 파악을 합니다. 그리고 특허청에서 발부된 OA를 읽어보면서, 거절이유의 개수와 종류를 보고 그 건의 난이도를 가늠해봅니다.
[변리사로 일해보기 Q&A]
Q: 거절이유의 개수와 종류에 따라서 그 건의 난이도가 달라진다는 말인가요?
A:
네, 맞아요.
어떤 거절이유들은 쉽게 극복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서, 특허법 제42조제4항제2호에 따르면 청구항에 발명이 명확하고 간결하게 기재가 되어야 하는데, 청구항에 "약"이라는 표현과 함께 수치 등이 기재되어 있는 경우에 위 제42조제4항제2호 위반의 거절이유가 발부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약"이라는 표현이 수치 범위 등과 함께 기재되는 경우, 범위의 정도가 명확하지 않아서 발명의 권리범위가 불명확해지기 때문에 위 조문에 위반되는 것이죠. 이러한 경우, 출원인에게 위 조문의 취지와 한국의 심사기준을 설명하고, "약"이라는 표현을 삭제하거나 명세서에 기재된 내용을 기반으로 "약"이 포함된 청구항의 표현이 명확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요청합니다. 많은 경우에, "약"을 단순히 삭제함으로써 위 거절이유가 쉽게 극복이 되죠.
한편, 다른 거절이유들은 조금 더 까다롭습니다. 똑같이 위 제42조제4항제2호의 거절이유가 발부된 경우라고 하더라도 명세서와 발명의 내용을 선해해서 발명이 더 명확하게 표현되도록 표현을 특정한 방식으로 수정하자고 제안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심사관이 본 출원의 출원일 전에 공개된 선행문헌을 제시하면서 그 문헌(들)을 조합함으로써 본 출원에 쉽게 이를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진보성을 부정하면서 제29조제2항의 거절이유를 발부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선행문헌과 해당 출원의 차이점이 부각되도록 청구항을 보정해야 하고, 그런 차이점을 도출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그런 차이점 때문에 우수한 발명의 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의견서에 개진해야 합니다. 따라서 극복하는 방안이 위 "약"의 사례처럼 일률적이지가 않아서 조금 더 까다로운데, 그만큼 극복이 되고 특허결정서가 발부되면 뿌듯하기도 하죠 - "그 주장이 먹혔군!"
OA를 배정받고 포대를 살펴보았다면, 출원인에게 해당 건에 대해 한국에서 OA가 발부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출원인에게는 어떠한 조문 위반의 거절이유가 발부되었는지, 그리고 그 거절이유를 극복하기 위한 변리사의 제안을 영어로 정리한 자료를 보냅니다. 흔히 코멘트라고 해요.
이렇게 코멘트를 보내면, OA 보고가 끝납니다. 그러면 의견서와 보정서를 쓰기 전까지는 당분간 그 건의 포대를 볼 일은 없어져요. 그때 이제, 책상에서 보던 포대를 끙차 들고 책꽂이로 옮기는 것이죠 - "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