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변리사가 해외에서 변리사가 될 수 있을까?
필자는 한국에서 n년간 변리사로 일을 했었다.
오늘은 필자의 본업, 변리사에 관한 글을 써보고자 한다.
변리사라는 직업은 일년에 단 200 명 가량의 소수 시험 합격자를 통해 배출되는 직역이기 때문에 아직 많은 분들에게 생소한 직업이지만, 예전보다 인지도가 많이 올라간듯 하다. 변리사는 지식재산권 관련 업무를 대리하는 전문 직종이며, 크게 특허 또는 상표 변리사로 나뉜다.
한국에서 변리사가 되는 방법은 변리사 시험을 통해서이다. 한국에서는 소위 "전문직 고시"라고 불리는 시험이 몇개 있는데, 변리사 시험도 그 중 하나로 주로 이공계 출신들이 짧게는 1 년에서 길게는 3, 4 년이 넘게 준비와 도전을 해서 합격에 이른다. 이후, 공식적인 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약 1 개월의 집합 연수를 받고 약 1 년 동안 사무소에서 현장 실습 기간을 거쳐야 한다.
말하자면, 한국의 경우 시험을 통해 변리사가 먼저 되고 그 다음에 업무를 시작하는 셈이다. 사무소에서는 시험 공부를 통해 기본적인 업무 이론을 모두 숙지했다고 가정하고 업무를 준다.
필자의 경우, 합격 하자마자 취업 박람회나 수험가에서 필자를 "변리사님"이라고 불러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또 회사에 처음 취업했을 때, 사실 변리사 업무는 처음인데도 모두가 나를 "변리사님"이라고 칭하는 것의 위화감과 첫 업무에서 변리사답게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컸던 기억이 있다. 대신 이런 위화감은 작은 일이라도 프로페셔널하게끔 대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심어줬던것 같다.
호주에서 변리사가 되는 방법은 이와 다르다. 공식 인가된 지식재산 석사 과정을 밟아야 하고 현장 실습 즉, on the job training 기간을 최소 2년 거쳐야 한다. 그 전까지는 patent attorney라고 불리지 않고 공식적으로 trainee patent attorney로 취급된다. 또 호주는 특허 변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공계열 학사 학위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리하자면, 호주에서 변리사를 희망하는 학사 또는 석박사 졸업생들은 patent firm (한국의 특허 사무소 동급이다)에 trainee로 취업을 한다.
대부분의 호주 회사에는 3개월 또는 6개월(주로 6개월이다)동안의 probation period가 있다. 이 기간은 정직원이 되기 전 일종의 수습 기간으로, 회사와 직원이 핏이 잘 맞는지, 맞지 않는다면 어떻게 맞춰갈 수 있는지 논의를 할 수 있는 기간이며, 맞추기 어렵다면 쌍방 어느쪽에서든 짧은 노티스를 주고 고용계약을 끝낼 수 있는(즉, 쉽게 짤릴 수 있는;;) 기간이다.
이 probation period가 끝나면 지식재산 석사 과정(Masters in Intellectual Property)을 시작한다. 이 석사 비용은 회사에서 부담을 한다. Trans-Tasman IP Attorney's Board에서 공식 인가를 받은 Masters in IP 과정을 밟아야 하며, 필자가 알기로는 호주 내 시드니의 University Technology Sydney (UTS)와 멜번의 University of Melbourne 두 군데에서만 제공하는걸로 알고 있다. UTS의 경우 전체 과정이 온라인이기 때문에 반드시 시드니에서 듣지 않아도 된다.
이 석사 과정은 trainee로서 풀타임 일을 하면서 파트타임으로 수강하는것이기 때문에, 일반 석사보다 오래걸린다. 약 2년 반에서 과목 수강 속도에 따라 길게는 3년도 걸리는 것 같다. 이 석사 과정은 패스만 하면 되지만, 주변 동료들을 보면 패스하는게 그렇게 썩 쉬운건 아닌것 같다. 특히 마지막 학기에 듣는 명세서 작성법에 관한 Drafting 과목과 특허 침해 및 효력에 관한 Infringement and Validity (I & V) 과목은 악명이 높다고 한다.
어쨌든 이 과정을 모두 거친 다음에야 정식 호주 변리사로 인정이 된다. 어찌보면 시험만 보면 변리사가 되는 한국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렵지만, trainee 기간에는 공식적으로 변리사가 아니기 때문에 업무에 관한 질문도 거리낌 없이 하고 선배 변리사들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가정하고 업무를 처음부터 가르쳐주는 것 같다. 정식 변리사가 되면 연봉도 다소 오른다.
참고로, 2017년부터 호주와 뉴질랜드의 변리사 자격은 단일제도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Trans-Tasman은 호주와 뉴질랜드를 모두 아우른다는 뜻이다. 실질적으로 호주 변리사 자격은 Trans-Tasman 자격으로 뉴질랜드 변리사의 자격도 갖는다. 그래서 trainee 기간동안 호주 업무 뿐만 아니라 뉴질랜드 업무도 꽤 심도 있게 다룬다. 이렇게 단일 자격을 주면 두 나라의 법이 비슷하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아니다. 두 나라의 특허 실무 법은 꽤 다르며, 뉴질랜드가 호주보다 훨씬 더 행정적인 절차에 있어서 까다롭고 엄격하다.
아무튼 필자의 경우 호주 특허 사무소에 한국 변리사 자격으로 취업을 했다. 필자의 경우 회사 내에서는 Overseas Qualified Attorney, 즉 해외 변리사 자격으로 일을 하고 있으며, UTS의 Masters in IP를 통해 호주 변리사 자격을 취득하려고 하고 있다.
필자가 알기로는 한국, 미국, 일본을 제외한 많은 국가에서 변리사 자격 취득 방식이 호주랑 비슷하다. 영국과 싱가포르, 호주 등 영국계는 물론이고, 독일도 호주처럼 trainee로 취업을 한 다음 트레이닝 기간을 거친 다음에 정식 변리사로 인정이 된다.
운과 노력이 따른다면 빠르게 합격할 수 있는 한국 변리사 시험과 달리, 2 년 이상이 걸리는 이런 제도는 꽤 길게 느껴진다. 한국의 경우 사무소에 따라, 빠르게 독립적인 변리사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호주의 변리사 제도 하에서 실무와 이론을 동시에 배울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인 것 같다. 또 회사 입장에서도 2 년 이상 이 trainee를 잘 키워내야겠다는 마음과 태도가 있다는 점도 일을 배우는 입장에서는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