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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Nov 22. 2024

필라테스 시간에 들려오는,
호주 이야기

호주에서 단체 생활을 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만나는 모임도 없는 나에게, 호주 사회로 자연스럽게 들어가며 나만의 지인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면서도 분명했다. 바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낯선 환경에서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속한 새로운 환경, 호주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로 이어졌다. 취미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교류는 그렇게 새로운 문화와 삶의 방식을 배우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나는 이런 기회를 만들기 위해 먼저 아트 클래스를 선택했다. 그림을 배우며 예술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가득 찼다. 그리고 두 번째로 시도한 것은 필라테스였다. 이 두 가지 활동은 표면적으로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아트 클래스는 창작의 즐거움과 새로운 배움을 위한 것이었고, 필라테스는 내 몸의 균형을 맞추고 건강을 챙기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내가 이곳에서 조금 더 가까이 호주의 문화를 경험하고, 그들의 삶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깔려 있었다.


사실, 필라테스와의 첫 만남은 지난해 개인 트레이닝으로 이루어졌다. 나 혼자 조용히 배우는 시간이 편안했고, 트레이너와 단둘이 대화하며 필요한 도움만을 정확하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만의 공간에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꽤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기로 했다. 나는 일부러 그룹 수업을 선택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과 섞여보는 경험이 필요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강사인 아만다의 유쾌한 이야기들이 나를 끌어당겼다. 그녀의 말 속에는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이 숨어 있었다.


아만다는 매 수업마다 새로운 주제를 꺼내며 대화를 시도했다. 운동 중에도 종종 질문을 던져 우리의 참여를 유도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었다. 처음에는 그녀의 수다가 썩 달갑지 않았다. 필라테스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호흡을 맞추는 것조차 벅찬 상황에서, 그녀의 끊임없는 이야기가 내 주의를 흐트러뜨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녀의 이야기 속에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의 말은 겉으로는 일상의 단편처럼 보였지만, 그 속에는 그녀가 살아온 삶과 호주의 문화가 생생하게 담겨 있었고, 자연스럽게 생명력을 띠며 내게 전해졌다.


그녀는 중간중간 그날 먹은 음식, 주말에 갔던 해변, 크리스마스 연휴를 계획하며 겪은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단지 지나가는 말처럼 들렸던 것들이 점차 호주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 방식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그녀의 작은 이야기를 통해 나는 호주인들이 일상을 대하는 태도와 그들의 독특한 관습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가 들려주는 대화 속에는 호주 사회의 작은 풍경들이 담겨 있었고, 그 풍경들은 내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결국, 나는 이 수업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로 했다. 필라테스를 통해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매 순간 스스로의 한계를 넓히는 성취감을 느꼈다.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영어를 원어민의 자연스러운 속도로 듣고, 그 속에 담긴 뉘앙스와 문화를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로 선물해준 호주의 작은 풍경들과 그 속에서 얻은 배움들을 통해, 호주에 대한 내 시각이 점점 넓어지고 깊어졌다.


ㅡㅡ


그녀가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의 말은 내가 흔히 지나쳐버리는 일상 속 순간들을 특별한 경험으로 만들어내는 힘이 있었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삶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를 그대로 드러냈고, 나는 그 태도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나는 호주에서의 삶에서 무엇을 흘려보내고 있는가? 내가 겪는 이 작은 순간들을 얼마나 충실히 기억하고 기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를 얼마나 다른 이들과 나누고 있는가? 필라테스 동작과 함께 들었던 그녀의 이야기는 내게 이런 질문을 안겨주었다. 나는 이방인으로서 이곳에서 겪고 느끼는 것들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어졌다. 이곳에서의 삶은 나만의 이야기를 쌓아가는 중요한 과정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필라테스 수업은 이제 단순히 운동을 위한 시간이 아니다. 내 몸과 마음, 언어와 문화를 함께 배우고 돌아보는 소중한 과정이 되었다. 매 수업 뒤에도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그녀가 들려준 호주의 풍경들을 내 삶에 어떻게 녹여낼지 고민한다. 그녀의 말은 나에게 호주의 작은 조각들을 건네주는 소중한 선물이었다.


그녀가 말로 선물해준 호주의 작은 풍경들과 그 속에서 내가 발견한 배움은 나만의 퍼즐을 완성하는 재료가 되고 있다. 나는 이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추며 호주에서의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곳에서의 삶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녀가 던진 이야기 속에서 나는 내 삶을 새롭게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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