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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Nov 21. 2024

호주의 자연을 빌려쓸게

호주의 거대한 자연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 광활한 대지와 끝없이 펼쳐진 하늘 아래에 서 있으면, 내가 가진 고민이나 바람 같은 것들은 사소하게 느껴지고, 오히려 내가 그 자연의 일부로 스며드는 듯한 강렬한 느낌이 찾아올 때가 있다. 하늘을 유유히 날아다니는 새들, 주방 싱크대를 재빠르게 점령하는 개미들, 창문 틀에서 집을 짓는 거미들처럼, 나 또한 호주의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라는 이유로 특별하다고 믿었던 존재감이, 자연 앞에서는 하나의 평범한 생명으로 가라앉는 느낌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처음엔 낯설고도 조금은 두려웠다. 내가 특별하지 않다면 무엇을 위해 이토록 애쓰며 살아가는가 하는 물음이 스쳐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생각은 내게 더 큰 평화를 주었다. 모든 생명이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하며,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사실. 새들의 날갯짓이나 거미줄의 고요한 움직임조차 이 거대한 자연의 조화 속에 자신의 자리를 찾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나 또한 그저 이곳에 존재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거대한 자연은 내게 그 어떤 철학서보다 더 깊은 깨달음을 준다.




호주에 온 지 6년이 흘렀다. 처음 이곳으로 이주를 결정했을 때, 나는 호주의 자연이 좋아서 이곳에 머물기로 했었다. 광활한 대지와 하늘이 주는 평온함,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은 내가 이곳을 선택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였다. (두번째 이유는 아이들의 교육.) 그리고 지금, 내가 이곳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 또한 변함없이 자연이다. 1년 전, 하우스로 이사하면서 자연과의 거리는 한층 더 가까워졌다. 


문을 열면 바람이 밀고 들어오고, 그 바람 속에는 이 땅의 기운이 담긴 듯하다. 창밖을 바라보면, 시기를 달리하며 피어나는 정원의 꽃들이 마치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하는 듯 나를 시선을 오랫동안 붙잡는다. 꽃은 사계절을 따라 쉬지 않고 피어나지만, 그 사이사이에 섬세한 변화를 담아내며 나로 하여금 자연의 세밀한 리듬을 느끼게 한다. 새벽이면 수십 가지 새소리가 혼합된 채 나의 새벽시간을 같이 한다. 그 소리는 이곳의 자연이 밤에서 낮으로 전환됨을 알리는 자연의 알람처럼 들린다. 요즘에는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새소리에 더해져, 이른 아침부터 자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소리가 나를 감싼다. 


자연은 늘 조용할 것 같지만, 실은 끊임없이 나에게 대화를 건네는 듯하다. 자연은 나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바람을 통해, 새소리를 통해, 그리고 꽃잎의 떨림을 통해 나에게 다가온다. 나는 그 속에서 단지 듣고 느끼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 속에서 나는 말을 건네지 않아도 깊은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자연 속에서 내가 더 겸손해지고, 인간이라는 경계에서 한 걸음 벗어나 자연의 일부가 되어 가는 과정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내가 사는 지역은 다른 곳과 비교해도 거대한 나무들이 특히 많은 곳이다. 국립공원을 곁에 둔 언덕 지대라서, 이 지역의 풍경은 그 자체로 거대한 자연의 작품 같다는 생각을 여러번 하게 만든다. 그러한 나무와 언덕, 바위와 숲길들은 인간의 손길이 닿기 이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시간을 초월한 존재들 같다. 처음 이곳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는 그저 '나는 자연 속에 산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마음이 더 깊어져 '나는 잠시 이 자연을 빌려 쓰고 있다'는 감각으로 변해갔다. 


이 지역의 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마음속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상상이 펼쳐진다. 이들이 공룡 시대부터 이곳에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온 자연은 단지 그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생명력과 경이로움을 담은 존재같다. 그래서일까. 어느새 나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이 자연을 함부로 해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무 하나, 풀 한 포기, 심지어 내 집으로 들어오는 거미조차도 이제는 다르게 보인다. 거미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날이면, 그 존재를 불편하게 여기기보다 같은 공간을 잠시 나눠 쓰는 동료로 느껴진다. 이 작은 변화는 나를 더 평온하게 만들고,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을 더욱 깊이 심어 준다.




호주에 살다 보면 북반구의 빠르고 쉼 없는 변화와 자연스럽게 대비된다. 특히 한국을 방문했다가 다시 호주로 돌아올 때, 그 차이는 더욱 극명하다. 몇 년 만에 방문한 서울은 변화를 넘어서 낯설기까지 했다. 새로 들어선 고층 건물들, 화려하게 변신한 거리들, 그리고 그 속도를 따라가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나를 순식간에 길 잃은 여행자로 만들어 버렸다. 고향이라고 믿었던 곳이 더 이상 익숙하지 않다는 기분은 처음엔 혼란스럽다가 이내 서글프게 다가왔다.


반면, 호주는 늘 한결같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히 서 있는 나무와 풀, 그리고 오랜 세월을 견뎌온 듯한 주택들이 여전히 변함없는 풍경을 이룬다. 2014년, 이곳을 처음 여행으로 방문했을 때의 모습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런 발달이 느린 환경이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느림과 일관성이 주는 위안이 크다.


호주의 자연 속에서는 변화하지 않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게 된다. 여기서는 세상이 쉼 없이 변해도, 모든 것이 자연과 함께 시간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는 감각이 있다. 마치 인간의 시간을 초월한 자연의 속도가 이곳 사람들의 삶에도 스며들어 있는 듯하다. 호주의 한결같음은 단순히 발전이 더디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쌓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무는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람들은 그 나무를 배경으로 자신의 삶을 천천히 그려나간다. 그리고 나는 그 느린 흐름 속에서 마음의 쉼을 얻는다. 


이곳에서의 자연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자연풍경과는 다른, 더 깊은 의미를 지닌 존재다. 자연은 시간을 간직한 유산이고, 지금도 흘러가는 현재이며, 인간 또한 그 속에 함께 숨 쉬는 일부다. 내가 매일 마주하는 나무와 풀들은 수천 년 동안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 집조차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 공간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잠시 빌려 쓰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빌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내가 이곳에서 배우는 것은 자연의 거대함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지, 그러나 그 작음이 오히려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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