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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Nov 15. 2024

호주에서의 졸업비자, 1년 남았다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다


2023년 3월. 호주에서 디자인 대학원을 졸업하며 졸업비자를 받았다. 원래는 2년짜리 비자였지만, 코로나로 인해 3년으로 연장되는 혜택을 받아 2026년 3월까지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앞으로 1년 4개월이 남았다. 그 후에는 딸이 대학생이 되면서 그녀는 그녀만의 학생비자를 받고, 나는 초등 4학년 아들의 새로운 학생비자를 받으며 가디언 비자로 남게 된다. 부모로서 호주에 함께 오랫동안 거주할 수는 있지만, 일도 할 수 없고 정규적인 학업도 제한되는 위치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지금의 졸업 비자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면서 두 가지 방안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선명히 떠올랐다.


첫 번째는 일하기,

두 번째는 공부하기.


이 두 가지 생각이 나자, 내가 호주에 오면서 꿈꿨던 순간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의 버킷 리스트 중에는 호주 현지인들과 직접 소통하며 일하는 것, 그리고 대학교 캠퍼스에서의 생활을 경험해 보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 호주로 오던 그때부터 나의 계획은 대학원 졸업 후 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졸업식 날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셨고, 세 달 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부터 찾아온 번아웃, 그리고 그 터널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 거의 1년이 걸린 듯하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은 시간은 이제 1년에 불과하다. 다행히도 이제는 딸아이의 고3 생활도 마무리가 되어, 내년에는 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일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프리랜서로 집에서 몇가지의 디자인과 일러스트 작업을 해왔지만, 몇 달 전 '사람들을 만나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딸아이에게 꺼냈을 때,  딸이 조심스럽게 제안한 직종이 하나 있다. 도서관에서의 파트타임이다. 며칠 후 취업 사이트를 찾아보니, 우리 집 근처 도서관에서도 파트타임 직원을 찾고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의 도서관에서는 어린이 책 코너를 담당할 사서를 구하고 있었다. 동화책을 좋아하는 내게는 꿈의 직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일하는 데 나름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어쩌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이렇게 그 일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며 흥미롭게 정보를 모으다 보니, TAFE(Technical and Further Education)에서 도서관 사서(Library Technician)로 일할 수 있는 자격증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년 과정으로, 나처럼 책과 사람과의 조용한 소통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상적인 길처럼 보였다. 마침 그 과정의 내년 일정이 공개되었다, 시작은 내년 2월 초, 내가 한국에서 돌아오고 한 주가 지나 바로 시작할 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2025년 12월 초에 끝나게 되는데, 영국에 가기로 했던 바로 그 시점과 일치했다. 이렇게 완벽하게 일정이 맞아떨어진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이건 운명인가?’라는 생각까지 문득 스쳐갔다. 어쩌면 나에게 스스로의 변명을 모두 내려놓으라고, 필요한 것들을 이미 준비해 주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혹시나 아이들의 생활과 나의 그림 작업에 방해가 될까 현재는 작게나마 걱정이 되지만, 일단 설명회 예약을 마친 상태이다. 물론 내 마음은 이미 80%가 넘어갔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이 끝까지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나의 현재를 지키는 일. 만약 내 꿈이 우리의 삶에 무리가 된다면, 나는 내 꿈의 한 부분을 내려놓을 준비도 되어 있다.


이 새로운 길을 향해 한 걸음 내딛으려는 지금, 나는 나에게 남은 시간과 기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진정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니, 남은 졸업비자는 단순히 '기간'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기회이자, 지난 시간들이 남겨준 소중한 밑거름일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는 순간의 귀중함을 곱씹으며, 나는 이 과정이 단지 직업을 얻기 위한 자격이 아닌, 나와 아이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마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지금의 역할의 변화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성장과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가는 여정일 것이다.


언젠가 내가 이곳에서 이룬 크고 작은 일들이 나 자신과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씨앗이 되어 자랄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뿌리가 세월이 지나도 단단히 남아 또 다른 여정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해 본다. 지금 비록 제한된 시간과 조건 속에 있지만, 그 안에서 가능성은 무한하다 생각한다. 나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스스로 그리고 아이들에게 잊히지 않을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소중한 선택이 되기를 바라며, 나는 이 새로운 도전에 기꺼이 마음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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