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힘겹게 올라온 산의 정상에
한참동안 머물렀다.
높은 곳에 도달해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곳에서 피할 수 없던 진실과 마주했다.
그러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오랜 시간 들고 있던 질문은
대답을 듣는 방식이 아니라
질문 스스로 닫히는 방식으로 끝이 났다.
그 답들은 이미 내 안에 스며들어 있었다.
산을 오르는 동안 나는
단단해졌고,
그래서 부러지지 않게 되었으며,
유연해졌고,
그래서 흩어지지 않게 되었다.
정상에서 얻은 것은 높이가 아니라
내려올 수 있는 힘이었다.
이제
힘겹게 올랐던 길을 미련 없이 거슬러 내려온다.
땅에 닿아야 다시 다른 높이를 향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깃털처럼
마음은 점점 가벼워지고
걸음은 더 이상 목적을 재촉하지 않는다.
그저 방향만 있을 뿐이다.
붙잡고 있던 생각들이
하나씩 내 손을 놓고 사라진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지 않는다.
길 위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해진다.
단단해진 영혼의 언어로,
맑아진 영혼의 감각으로,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음 오름은 이미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