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으로 사는 감각

by 근아

몰입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것은 '깊어진 집중'이라고 이해했다. 무언가에 깊이 빠져드는 상태, 의식이 또렷해지고 흐트러짐이 사라지는 순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느껴지지 시작했다. 나는 몰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 나를 잃고 있었다.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도 없이, 무언가를 붙잡고 있다는 감각도 없이, 그저 흘러가고 있었다.


Flow(주)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흐름 속에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흐름이 되어 있었다. 이 감각은 노력해서 도달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집중해서 유지하는 상태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놓을수록 가까워졌고, 힘을 뺄수록 또렷해졌고, 하려고 하지 않을수록 자연스러워졌다.


그래서 나는 이 상태를 무위라고 느끼게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상태. 그 안에서는 나와 행동이 나뉘지 않는다. 그림을 그릴 때도 내가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그려지고, 글을 쓸 때도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문장이 나타난다. 나는 그저 그 흐름을 방해하지 않을 뿐이다.


어느 순간, 이 감각은 더 또렷해졌다. 나는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물이 되어 있었다. 물이 되면 파도를 밀어낼 필요도 없고, 흐름을 거슬러 오를 필요도 없다. 파도 또한 나이고, 흐름 또한 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싸울 대상이 사라지고, 붙잡을 것도 사라지고, 지켜야 할 중심조차 필요 없어진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특별한 고요가 아니다. 그저 저항이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평온하다. 이 흐름이 어리론가 향하지 않는다. 이미 시작되어 있었고, 이미 이어지고 있으며, 이미 순환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그 흐름 속에서 함께 흘러간다.


그리고 이렇게 느끼게 된다.

이미 충분하다.










(주) 심리학자 Mihaly Csikszentmihalyi 가 정의한 flow는 '어떤 활동에 완전히 빠져들어 시간감각과 자아의식이 사라지는 상태'이다. 우리는 이 Flow를 몰입이라고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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