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질문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좋은 질문은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요? 은교님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질문은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왜 그럴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된 취재와 기사는 서서 일해야만 했던 마트 계산원에게 의자가 보급될 수 있게 했고, 인정받지 못한 채 평생 일한 여성들을 세상이 다시 바라보도록 했습니다.
장은교 님의 직업은 기자입니다. 저는 기자라는 직업을 생각하면 차갑고 날카로운 모습을 떠올리곤 했어요. 하지만 다정한 인사로 다가와 차분한 목소리와 반짝이는 눈으로 본인이 했던 일들을 소개하고 문장을 나누는 은교님의 모습은 따뜻하고 동글동글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조금만 길어지면 베테랑 언론인의 면모가 불쑥 튀어나오곤 했습니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처럼 세심한 관찰을 통해 만들어 낸 기획 보도, 세상을 뒤집어 놓은 기사를 밀어붙일 수 있는 강단을 보면 저절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도 휴대폰과 마우스 등 주변의 많은 물건을 핑크로 고르는 핑친자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다가 갑자기 또 사랑에 쉽게 빠지는 금사빠라며 깔깔 웃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은교님은 도무지 한 마디로 정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 알겠다 싶으면 예상을 뛰어넘어 다른 곳으로 쑥 하고 빠져나가 버리는 것만 같았거든요. 도대체 어떤 질문을 해야 이 사람을 알게 될 수 있을까요? 우선 은교님의 일, 질문하는 일에 대해 질문해 보기로 했습니다.
프리랜서 라이터, 장은교
신문사 때 자기소개에 <읽고 듣고 만나고 씁니다>라고 쓰여있던데요
회사에서 기자 페이지를 만들어서 자신을 소개하는 메시지 같은 걸 써야 했거든요. 멋있는 말을 쓰는 기자도 있고 아니면 ‘어디어디 출입하는 누구입니다’ , ‘무엇을 담당하고 있습니다’라고 쓰기도 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토요판에서 인물 인터뷰를 많이 할 때였는데 ‘토요판입니다.’ 이렇게 쓰는 건 좀 그런 것 같고- 주로 했던 게 인터뷰여서 그냥 그렇게 썼어요. 이게 기자의 본업이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인 것 같더라고요.
요즘 본인을 소개할 때는 어떻게 하세요?
(신문사) 퇴사하고 나서 라디오 출연을 했는데 기자님이라고 불러주시길래, 이제 퇴사했고 신문사 안 다닌다고 했어요. 근데 제작진이 동시에 “신문사 안 다닌다고 기자가 아닌가요?” 이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앞으로 계속 일할 것 아니냐 그럼 기자 아니냐고 하시는데 그 얘기를 들으면서 오히려 제가 너무 명함에 갇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소개할 때 기자라고는 안 하지만, 기자 시절에 만났던 모든 분은 다 아직 장 기자라고 불러주시고요. 책 작업으로 만난 출판계 분들은 작가라고 불러주시죠. 저는 그냥 이름으로 은교 씨나 은교 님 이렇게 부르는 게 제일 좋긴 해요.
원래 어렸을 때부터 기자를 꿈꾸셨나요?
아홉 살 때 학교에서 20년 후 장래 희망을 그려오라고 했었던 기억이 나요. 트렌치코트 같은 걸 입고 제가 마이크 들고 멋있게 서 있고 뒤에 헬리콥터인지 비행기인지 모를 뭔가가 있는 걸 그렸던 그림이 생각이 나요. 그때 유행했던 MBC <카메라 출동>이 멋있어 보였나 봐요. 사실 기자가 무슨 일을 하는 건지 몰랐지만 최초의 장래 희망이기는 했어요. 그렇다고 그때부터 쭉 기자를 꿈꾸거나 ‘난 기자만 할 거야!’ 그랬던 건 아니고요.
딱 하나 재능이 있다면 글 쓰는 거였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다들 ‘은교는 작가가 되겠구나’ ‘은교는 국문과 가겠네’ 했었는데 전 그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 이과에 갔어요 갑자기 진짜. 근데 수학2랑 물리2를 보는데 토할 것 같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진지하게 사람에게는 각자 성향이 있고 좋아하는 게 있고 잘하는 게 있나 보다 이런 생각을 했죠. 아무튼 고3 때 수능을 망하고 재수해서 경영학과에 갔어요. 그리고 또 경영이 안 맞는 걸 알았죠. 내가 좋아하는 것은 사람 만나는 거 글 쓰는 거. 노력 없이도 계속 좋아하면서 잘하고, 계속하게 되는 거는 글 쓰는 건데, 글을 쓰면서 직업적으로 할 수 있는 건 뭔가를 생각하다가 자연스럽게 기자, 그중에서도 신문기자를 하게 됐죠. 시험에는 너무 많이 떨어져서 어렵게 (기자가) 됐습니다.
기자라는 꿈을 이루고 어땠는지 궁금해요. 꿈과 현실이 다른 점이 있었는지?
처음에 입사해서 한 5~6개월까지는 경찰서에서 먹고 자고,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하루에 2시간 3시간밖에 못 잤던 것 같아요. 이런 시간을 당연히 견뎌야 기자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남들은 올 수 없는 경찰서 마와리를 돌면서 유치장도 보고 쪽방에서 잠자고 이런 것들이, 저는 너무 원해서 기자가 돼서 그런지 낭만적으로 느껴졌었어요.
제가 좀 일찍 상을 받았어요. 들어간 지 몇 년 안 돼서 큰 상도 받고. 1면 톱기사를 어떻게 하다 보니까 빠르게 많이 썼어요. 그게 너무 무서운 거예요. 하나도 기쁘지가 않고. 내가 쓴 이야기를 이렇게 사람들이 다 바로 믿어주네?’ 이런 거 있잖아요. 영향력 있는 기사를 쓰면 다음 날 아침에 많은 부재중 전화와 함께 일어나거든요. 저는 늘 불안했어요. ‘내 기사에 틀린 건 없을까? 내 기사 때문에 피해 입는 사람은 없을까?’ 항상 ‘혹시 내가 모르는 뭔가 이면이 있지 않았을까?’ 거의 퇴사할 때까지도 그게 불안했던 것 같고. 그래서 술을 많이 먹었죠 (웃음)
매일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17년을 기자로 지낼 수 있었던 걸까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제 적성에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고, 기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현장에 갈 수 있다는 거거든요. 어떤 큰 시위가 열리든 큰 축제가 열리든.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든 사람부터 가장 힘센 사람까지 다 만날 수 있잖아요. 그런 게 매력적이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저의 노력을 통해서 사회가 바뀌는 것들을 보는 게 기분이 좋았어요. 한 3년 차 때 마트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기사를 쓴 적이 있어요. 제가 마트에 갔는데 어떤 분이 다리를 계속 바꿔가면서 서 있는데 의자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알아보기 시작했죠. 알고 보니까 마트 노동자들이 화장실도 하루에 한 번 갈까 말까 하대요. 그리고 의자에 앉으면 안 되고요. ‘손님 앞에서 어디 감히 의자에 앉아 있어’ 이런 거죠. 방광염 걸리고 하지정맥에 걸리고 뇌출혈까지고 이런 분들이 많더라고요.
‘서서 일하는 女노동자들’ 하루 8~11시간 ‘고문’…머리끝까지 ‘골병’ (경향신문, 2008/01)
그 이야기를 쓰고, 꼭 제 기사 때문에 그런 건 아닌데 그게 씨앗이 돼서 의자가 놓였어요. 진짜 그렇게 바뀔 줄 몰랐거든요. 근데 눈에 보이게 바뀌는 게 있으니까. 제가 일상을 열심히 관찰하고 질문을 던져서 만든 기사였는데 그걸로 세상이 바뀌니까 행복했던 것 같아요.
제가 다혈질이거든요. 욱하는 게 있어요. 남 불쌍한 거, 남 억울한 거 못 보는 그런 게 있는데 기자가 그거에 맞는 직업이잖아요. 저는 제보자들 만나거나 힘든 거 얘기 듣는 것도 싫지 않았고, 그렇다고 제가 현실을 완전히 개선할 수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것 그분의 목소리를 여기에 남길 수 있는 거. 그런 게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은교님은 기자 일을 너무 좋아하는 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기자라고 하면 물어볼 자격을 인정해 주시는 것 같아요. 그냥 모르는 사람이 와서 수다를 떠는 거 하고 다르게 ‘제가 기자인데 당신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어드릴게요’라고 하면, 조금 경계하실 수도 있지만 또 마음이 다르잖아요. 이런 게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빠르게 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기자는 타인에게 이해시킬 만한 내용의 글을 써야 되니까, 설명하려면 일단 잘 알아야 하잖아요. 각 지자체가 어떻게 구성되고 부서의 산하 단체는 어떻게 되고 이런 것들을 보통 알기 쉽지 않은데 기자들은 그걸 알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저처럼 약간 현실감각 떨어지는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그래도 기자를 해서 사회인으로 구실하고 살았다는 생각을 해요. 글을 쓸 수 있는 직업 중에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글을 쓰면서 사회적 가치도 만들어 내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직업은 기자였던 것 같고요.
기자라는 직업을 좋아했고, 17년이라는 시간을 기자로 일했고. 하지만 작년에 그만두셨잖아요. 그만둘 결심을 한 사건이 있었나요?
제가 회사를 좋아했고 로열티도 있었던 것 같아요. 한 회사만 쭉 다녔고 친한 사람들도 많았어요. 저도 제가 그만둘지는 몰랐어요.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이하 우명함) 프로젝트가 잘 됐는데, 잘 된 것만큼의 번아웃이 세게 찾아왔어요. 몸이 아프게 됐고 차근차근 생각을 하게 됐죠.
만약에 안 좋은 사건이 있다거나 너무 싫어졌으면 오히려 그만 못 뒀을 거예요. 17년 동안이나 한 일이고, 우리 회사도 좋아했고. 저의 인생에 너무 바꿀 수 없는 큰 부분이잖아요. 근데 너무 싫어서 헤어지면 이 동네를 지날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지나갈 때마다 경향신문을 보면서 고통스러울 것 같고. 그러면 17년이 그런 시간으로 남게 되는 거잖아요.
첫 번째로는 지금 정도에 그만두면, 힘든 일도 있었지만 아름다운 시간으로 생각할 수 있고, 조직에 있는 사람들과도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고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고요, 두 번째는 제가 이제 곧 관리자인 거예요. 그게 나한테 맞을까 재미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인터뷰하는 거 좋아하고 취재 프로젝트 하는 거 좋아하는데. 더 늦기 전에 한번 도전을 해보자는 생각을 좀 하고 퇴사를 했죠. 진짜 사표를 냈을 때도 주변 사람들도 안 믿었고요. 그만둘 거라고 아무도 생각을 안 했어요. 어느 날 갑자기 결정하게 됐어요.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는 세상이 ‘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일하는 자부심으로 당당하게 살아온 고령 여성들의 삶을 일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담은 기획 취재를 책으로 옮긴 인터뷰집이다. 집안일과 바깥일을 오가며 평생을 ‘N잡러’로 살았던 여성들. 이름보다 누구의 아내나 엄마나 불린 여성들에게 명함을 찾아주고자 시작되었다. 한국기자상을 비롯하여 다양한 수상을 했고, 이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은교님은 이 책이 나온 이후 큰 번아웃을 맞았다.
퇴사 즈음의 번아웃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요?
번아웃을 완전히 극복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많이 빠져나온 것 같아요. 인터뷰 글방도, 새로운 프로젝트도, 책 작업도 하고 있고 기획안 짜면서 신나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좀 극복했나 보다 해요. 그래도 내가 언제든지 동굴에 다시 들어갈 수 있다는 거를 이제 인지하고 하는 거죠. 적절히 조절하면서요.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는 어떤 부분이 달라졌나요?
제일 좋은 건 아침에 일어났을 때예요. 기자들은 매일 오전에 보고를 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눈 뜨면 내 구역에서 타사가 쓴 특종이 없나 검색하고 보면서 하루를 시작하거든요. 그러니까 아침에 나의 전날 성적표를 확인하면서 매일을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 오늘 무슨 기사를 쓸지를 생각해야 해요. 발제를 매일 아침에 해야 돼요. 발제할 게 없으면 쥐어 짜내야 되니까 오전에 하루에 쓸 한 50% 60%의 에너지를 다 쓰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면 그냥 제 마음대로 블록을 맞추는 거죠. 오늘 이거 먼저 할까 저거 먼저 할까 이런 거를 제 마음대로 구성할 수 있어서 좋고요.
그리고 일도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좋아요. ‘나쁜 사람은 아닌데 나랑 안 맞을 것 같아’ 이런 느낌이 들면은 안 하거든요. 조직 안에 있으면 그럴 수 없잖아요. 프리랜서가 오히려 더 그러면 안 된다는 조언도 많이 듣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좀 하고 싶고 끌리는 거 위주로 할 수 있는 것이 좋죠.
많은 인터뷰를 하셨고, 인터뷰 러버이기도 하시고, 이제는 인터뷰를 주제로 책을 쓰신다고 하셨는데요.
사실 인터뷰 가지고 이렇게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지 몰랐는데, 인터뷰글방* 두 시즌을 해보니까 하고 싶은 얘기도 많은 것 같고 또 도움이 되는 얘기도 많은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생각보다 그 인터뷰 관련된 강의나 책이 없어요. 요즘엔 자기 자신과 인터뷰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고 타인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가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인문을 조금 곁들인 실용서로 한번 써도 되겠다 싶어 가지고 책을 쓰기 시작했어요.
인터뷰가 홍보해 주는 거 이런 식으로 많이 생각되기도 하죠. 인터뷰라는 것이 결국 그 사람 좋은 면만 부각해 주는 거 아니냐 하는데, 저는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한테 목소리를 주는 것이 인터뷰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건화를 할 수도 있는 것이 인터뷰라고 생각해요. 저는 <우명함>도 그랬지만 이야기를 담아서 하는 인터뷰를 좋아하고, 인터뷰를 해보면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자기 자신하고 대화한다는 게 너무 어렵잖아요. 그렇지만 내가 한 번씩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시간이 너무 필요해요. 우리 안에는 뭔가를 배워보고 싶은 자아도 있고. 무기력한 자아도 있고 부끄러운 자아도 있고 하잖아요. '그래 나한텐 이런 면도 있지~'하면서 그것들을 한 번씩 어루만져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럴 때 타인에 대한 깊은 대화를 읽거나, 인터뷰를 보면서 자기 자신에게 한두 개라도 질문을 해보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스스로 질문을 해요. 요즘은 <오늘의 질문> 이런 걸 하나씩 해보려고 해요. 질문은 별 거 아니에요.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일어나기 싫어’ 그럼 그거를 평서문으로 두는 게 아니에요. ‘오늘은 왜 일어나기 싫었어?’라고 그냥 저한테 물어보고, 하루가 끝날 때쯤 되면 마지막에 그 답을 한번 찾아보는 거죠. 아무도 나한테 그런 걸 물어봐 주지 않고 나조차도 안 물어보면 난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하는 애로 끝나잖아요. 그냥 한 번 말을 걸어주는 거죠. 그렇게 하다 보면 이제 좀 진지한 질문도 하게 되고요. 제가 좀 저를 다시 보게 되는 것도 있고. 그래서 가벼운 질문을 한 번씩 던져보는 게 괜찮은 것 같아요.
일을 시작하는 시점의 ‘사회 초년생 장은교’에게는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스스로를 믿으라고 얘기해 주고 싶어요. 조직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밥값은 하고 싶다’. ‘너무 민폐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러면서 다 눈치를 보거든요. 제가 면접 보고 사람 뽑는 것도 했었는데요, 반짝반짝하고 훌륭한 분이 실제로 입사하면 한 3개월 뒤에 보면 다 이렇게 (안 반짝반짝하게) 되어 있어요.
다양한 면을 가진 사람이 조직 안에 들어와서 깎여가지고 네모에서 어중간한 동그라미가 되는 건데, 사실 그거는 우연의 변수잖아요. 회사에 10명의 선배 사수가 있으면 이 사수를 만났으면 이런 점이 좋았을 수 있는데, 하필 저 사람을 만나서 나의 나쁜 점이 좀 도드라졌을 수도 있고요. 그건 기회와 시간의 문제인데 초반 몇 번의 경험으로 스스로를 성급하게 평가할 수밖에 없긴 하잖아요. ‘난 못하는 애인가 봐.’ ‘나는 이 길이랑 안 맞나 봐’ 싶고요.
근데 신문 기자만 해도 굉장히 종류가 다양하고, 문화부 기자랑 사회부 기자는 거의 직업을 바꾸는 수준으로 다르거든요. 그러니까 일단은 여기까지 걸어온 내가 있으니까 나를 좀 더 믿고, 나에게 조금 더 많은 기회를 좀 줬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할 것 같아요. 실제로 후배들한테도 그렇게 많이 얘기했던 것 같고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나요?
에세이 연재할 때 필명을 ‘오늘의 오늘’이라고 했거든요. 걱정이 많고 소심한 스타일이어서 자꾸 먼 미래를 생각하더라고요. 아직 뭘 시작도 안 했는데 그렇게 해서 생길 나쁜 일들을 너무 많이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과거와 미래로 가는 모든 문을 다 닫고 오늘만 생각하겠다! 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그리고 뭔가를 디테일하게 계획하기에는 사회가 너무 많이 빨리 변하는 것 같아요. 불과 2년 전에 AI도 몰랐잖아요, 코로나가 이렇게 또 종식될 걸 1년 전에도 예상하지 못했고요. 그래서 ‘내가 무슨 예측을 하냐, 오늘 하루 행복하게 완벽하게 살자.’ 그런 주의가 됐어요. 제가 요즘 좋아하는 말은 그거예요. "해봤다는 게 중요한 거야." 인생에서 뭘 해냈다는 건 그때의 관점이지 진짜 해낸 게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것보다는 내가 뭘 원했고 뭘 해봤는지 그거면 충분한 것 같아요. 지금은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해요. 남들이 안 좋다고 해도 나 좋으면 됐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날의 대화를 정리하다 보니 결국 더 많은 질문들이 마음속에 남았습니다. 은교님이 오늘은 스스로 어떤 질문을 했는지,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은교님처럼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일을 잘할 수 있는지도요.
17년의 신문 기자 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는 은교님은 설레 보였습니다. 새 프로젝트를 소개할 땐 기대감과 흥분이 느껴지기도 했고요. 기자라는 명함이 없더라도 언제나처럼 변함없이 읽고 듣고 생각하고 쓰고 있을 사람. 앞으로는 또 어떤 질문을 품고 그 질문으로 어디까지 가고 있을까요. 저는 계속 은교님을 따라가며 물어보려고요. '그래서 요즘은 뭐가 궁금하세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