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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Dec 05. 2022

연결된 사람, 끊어진 낭만

지하철에서 내리려고 하니, 뒷 주머니가 이상하게 허전한 느낌이었다. 핸드폰이 사라진 것이다. 당혹스러움에 식은땀이 흘렀지만 기억의 조각을 맞춰보니 다행히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유력한 장소를 떠올릴 수 있었다. 시간 내에 도착해야 하는 일정이 있었기에, 뒷 일은 동행하고 있던 친구에게 맡기고 발걸음을 옮겼다.


당시 시각은 오후 4시 30분, 친구가 핸드폰을 찾아 집에 방문하기로 한 저녁 8시 30분까지 장장 네 시간 동안 핸드폰은 분실 상태였다.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도 참 오랜만의 일이라, 그 생경한 느낌이 기억에 남아 있다. 누구의 연락에도 답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내심 자유롭게 느껴졌다.


사실 일일이 답장하고 싶지 않았던 연락들 때문이기도 했다. 더 솔직하게 얘기해보자면, 핸드폰을 찾고 난 이후에도 분실을 핑계로 최대한 답장을 미루고 미루었다. 끝내 조금이나마 답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쯤에 "이제 핸드폰을 찾았다"며 답장을 보냈다.


'통신 수단의 발전'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는 세상이다. 분실을 핑계 삼을 수 없었다면, 아무런 이유 없이 연락을 받지 않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연락 가능함'은 우리 사회에 자리한 하나의 정상성이기 때문이다.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생겼음(비정상)을 의미한다.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는 보통 그리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이유 없이 연락을 받지 않는 것이란 허락되지 않는다. 통신이 발전한 만큼 또 연락이 쉬워진 만큼 혹여나 닿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기술의 발전에 의해 쉽게 타인과 소통한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억압을 받고 있는 꼴이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정상성을 새로이 정의하고 있다.


영화 '라라 랜드'를 보다가 세바스챤과 미아의 이별이 안타까운 나머지 그들의 손에 스마트폰을 쥐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람 맘이야 모르기에 둘의 관계가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느낄 수 있었던 영화적 아름다움이 전만 못할 것은 확실하다.


함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상상 속에 남겨둔 채 그들은 각자의 꿈을 향해 나아갔다. 각자의 위치에서 성공을 거둔 뒤 우연히 세바스챤의 재즈 클럽에서 마주하여 눈빛으로만 인사를 주고받았던 장면을 떠올려 보자. 세바스챤이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었다면 어떨까? 둘이 매일 같이 페이스 톡을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우리가 느낄 수 있었던 아름다움은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닿을 수 있다는 통신 기술의 편리함 때문이 아닌, 서로의 안부가 궁금하지만 차마 닿을 수는 없는 그 불편함에서 비롯된다.


기술의 발전이 일상 속 낭만을 앗아간다. 일 년 전쯤부터는 카카오톡에 생일이 표시되지 않게 설정해두었다. 생일이 되면 가볍게 날아오는 기프티콘이 회의적으로 느껴진 탓이었다. 몇 년 동안 얼굴도 보지 못한 사람이 보내준 아메리카노는 생각보다 달갑지 않았다. 물론 그 마음엔 감사를 표해야 마땅하지만, 그들에게 내 생일은 어떤 의미일지 찝찝한 의문을 품게 한다.


누군가의 생일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건 편리하지만, 그로 인해 생일은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될 날짜로 전락한다. 공책에 일일이 적어가며 기억할 친구의 생일은 더 이상 없는 것이다. 인간이 기꺼이 행위하며 채워두었던 의미의 영역들은 편리를 추구함으로 인해 축소된다.


나 또한 기술의 편리를 누리고 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행위만 해도 와이파이, 노트북, 브런치 등의 기술적 요소들의 복합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편리한 탓에, 아무런 논쟁 없이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은 두렵다. 누구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 더 좋은 기술을 수용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의미는 풍부한 가능성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ps. 알파고는 바둑 기사들의 채점 기사가 되었고, 인공지능은 이제 그림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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