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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Dec 30. 2023

긍정에 대한 부정, 부정에 대한 긍정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한병철 <피로사회> 28p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긍정성 과잉 시대임을 지적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하고, 성취하고, 발전해 나가는 사람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이 팽배한 사회에서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할 수 있는 것들을 어떻게든 해내거나, 도태된 채 무기력에 빠져 살아가거나.


사회의 긍정성 과잉은 '실증주의(Positivism)'에 기인한다. 실험과 증명을 통해 합리적 사실로 드러난 것들을 취하며 사회는 발전해 나간다. 차곡차곡 기반을 쌓으며(+) 성장해 나가는 긍정의 논리다. 


예컨대 AI의 개발이 빠른 속도로 세상을 바꾸고 있는 것처럼, 과학적으로 진일보되었다거나 경제적 효율성이 입증된 것이라면 그것은 100%의 당위성을 갖고 사회에 자리를 잡는다. 실증주의의 무한 긍정의 논리는 우리에게 해석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가치중립적'이라는 포장을 뒤집어쓴 채 매일같이 발전해 나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걸 기꺼이 포기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내일 아침이면 원하는 물건을 배송받을 수 있지만, 굳이 마트에 가서 구매하는 사람. 언제 어디서든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지만,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 무더운 여름날에도 에어컨은 켜지 않는 사람. 


어느 지점에서 과감히 선을 긋고 더 이상은 넘어가지 않겠노라 다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배제(-)를 통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주체적으로 결단한다. 긍정성 과잉 사회 속에서, 삶을 해석할 여지는 부정의 논리 안에 존재한다.


발전이란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는 행위'이다. '더 나음'이란 가치 판단의 영역, 주관의 영역이다. 일방향의 긍정 과잉 사회에서 '포기'를 '할 수 있는 걸 하지 않는 자포자기의 상태'라 정의하지만, 선택 또한 주관의 영역이며 선택에는 반드시 포기가 따른다. 


긍정성 과잉 사회에서 그러한 포기는 삶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모든 걸 긍정할 수 있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부정을 통해 기꺼이 어떻게 살아가겠노라 하는 다짐이다.


고정된 정상성을 거부하는 것은 고로 도태가 아닌 다분히 의지적인 결단이 아닐까. 성취, 발전, 편의 긍정의 논리가 포기의 가치를 압도하는 사회이지만, 적어도 내겐 보다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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