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는 착각

by May

인생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갈 때면 세상과의 연결감이 미약해진다. 시야는 좁아지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외엔 관심이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내가 처해있는 이 상황과 나를 제외하고는 무작정 소홀해져 버리는 것이다.

스트레스와 불안 속에서 모든 사건과 현상이 '나'와 '나의 문제'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착각에 빠진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악당과 맞서 싸우는 영웅 클리셰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나를 위치시키고, 그 이야기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것일까', '산다는 건 무엇일까' 따위의 고민들을 머릿속에서 뱅뱅 돌리면서 말이다.


금요일이었다. 여느 날처럼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부슬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굳이 뛰어가서 막차 버스를 탈 수 있었지만 괜히 호사를 누리고 싶은 마음에 택시를 잡았다. 비가 내리는 날 홍대의 금요일은 택시 지옥이다. 버스 막차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겨우 택시를 오를 수 있었다.


기사님은 꽤 말이 많은 편이었다. 평소의 나였다면 굉장히 귀찮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왜인지 낯선 이의 이런저런 개입이 싫지만은 않았다. 누군가의 개입으로 인한 삶의 균열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꽤 따뜻하게 느껴져 몇 마디를 더하며 대화를 나눴다.


"오늘 같이 비가 오는 날은 손님이 많아서 쉬지도 않고 일을 해야 돼요. 아침밥 먹고 차에 올라서 지금껏 내려보지도 못했다고."


'비가 오는 날, 택시는 장사가 잘 되겠거니' 생각했던 내게 의외의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내게 이것저것 질문을 건넸다.


"금요일이라 회식하고 이제 들어가시는 거예요?"

나는 지금까지 일을 했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내일은 주말인데 쉬시죠?"

나는 내일도 출근이라고 대답했다.


그래도 돈은 많이 받으시죠라는 마지막 질문엔 얼버무리고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엔 내가 질문할 차례라는 압박에 못 이겨 물었다.


"그런데 하루에 몇 시간이나 일하시는데요?"

"몰라요. 뭐 12시간쯤? 그런데 그렇게 일해도 사납금 20만 원 내고 하면 남는 것도 없어요. 그리고 이 개새끼들 엠병 정규직한테도 포괄임금제를 써먹으니."


거친 욕설을 곁들인 지극히 현실적인 '제도의 언어'가 쏟아졌다. 그의 말을 말미암아 대충 계산을 해봐도 12시간씩 일을 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터였다. '정체성'이니 '삶의 의미'니 하는 것들은 삶과 직격으로 맞서고 있는 이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진다.


우리 집 앞에 도착해 기사님은 잠깐 내려 담배를 피웠다. 하루 종일 처음 차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멀찍이 떨어져 같이 담배를 한대 피웠다. 애써 그를 위로해 보려는 것이었으나 사실 위로를 받은 것은 나였다. 조심히 들어가시라는 의미의 눈인사를 건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원래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나는 한없이 부족한 겸허함을 탓하며 집으로 걸어 올라갔다. 나는 주인공도 그리 특별한 존재도 아니다. 삶이 고되다는 핑계로 이 자명한 진실을 잊곤 한다. 고매한 언어로 삶을 포장하는 취미가 더없이 부끄러워지는 날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제로부터 시작하는 대한민국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