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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Nov 07. 2019

거짓말에 대처하는 자세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나는 오늘 하루를 잘 살고 싶다.


나에게 거짓말을 하다니. 그동안 무조건 믿어왔던, 맹신했던 상대의 거짓말을 확인했다. 말도 안 돼. 이런 순간을 스쳐 지나가듯 상상해 본 적이 있다. 그 뿌연 장면 속의 나는 불 같이 화를 내고 상대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런데 현실은 고요할 뿐이다. 한쪽은 배신감에 할 말을 잃었고, 한쪽은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그 어떤 파도도 치지 않는다. 요란하게 분노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변명하며 미안함을 표현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무서우리만큼 잔잔하다. 고요한 그 침묵의 시간이 날카롭게 마음을 벤다.    


믿을 수 있기에 아낌없이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그 사랑의 경험은 꽤나 큰 힘이 되고, 그 덕분에 무언가에 부딪혀도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 존재가 가족이든, 친구든, 혹은 반려 동물이든 우린 그 힘을 주고받으며 산다.


신뢰에 금이 가는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힘이 쭉 빠진다. 하나의 거짓말을 확인했을 뿐인데, 현재는 물론 지나간 과거의 추억에도 의심이 더해진다. 아무렇지 않게 속일 수 있는 사람이라니. 대체 언제부터, 어느 순간부터 나를 거짓으로 대한 걸까.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던 순간도, 힘겹게 뗀 입술에서 나온 미안하다는 말조차 의심한다. 이렇게나 상상력이 풍부했었나. 참아보려 힘을 준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 신뢰에 생겨버린 구멍 하나로 참 많은 것들이 빠져나간다. 모두 잃어버릴 지경이다.

용서를 빌었고, 용서를 해 보기로 했다. 그럼에도 그 구멍은 작아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분노와 배신감이 계속해서 끓어오른다.
사소한 단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니 이해하려 힘 빼지 말자. 지나간 일은 과거로 마침표를 찍어 보자. 허나 강처럼 흐르는 머릿속 기억들이 과거의 영역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억지로 주입할 수밖에. ‘과거에 일어난 일이다. 지금은 그 과거가 아니다. 거짓은 과거에 있다.’ 수천번 수만 번 대뇌 인다. 실제 일어난 일만 생각해야 한다. 상상력을 더하지 말 것. 과도한 상상력을 억제해야 한다.
마음속에 분노가 흐른다. 잠시 다른 곳에 눈을 돌리면 기분 전환은 되겠지. 하지만 상처는 여전하다. 화를 남겨두고 싶지 않다. 덮어두기보다 오히려 꺼내놓고 냉정히 노려본다. 왜 화가 났지? 왜 이토록 실망했지? 잘 들여다보면 깊게 박혀있는 분노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생각보다 유치하고 단순하다. 사랑받고 싶어, 제일 많이 갖고 싶어, 1등 하고 싶어 등등.
그 유치해 보이는 것들을 상대에게 드러낸다. 엉뚱한 방법으로는 지금의 이 사건을 마무리할 수 없으니, 시간의 흐름에 치유를 맡겨버릴 수 없으니, 이 분노의 뿌리를 정확히 상대가 뽑아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땅히 치러야 할 너의 대가라고 명확히 표현한다. 힘겹게 내 마음속 숙제를 상대에게 넘긴다. 신뢰에 엉켜있는 분노를 떨쳐내는 의식을 치른다.

울고 소리치며 화가 나 숨이 헐떡이는 와중에도, 이렇게 또 한 번 참아낸다. 상대의 배신에 대한 해결책은 아이러니하게도 또 한 번의 믿음이다. 이를 악물고, 관계의 끈을 붙잡는다.
    


누군가를 잘 안다는 것이, 누군가를 모두 안 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우리는 서로에게 타인일 뿐이다. 내가 마음과 생각을 투명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것처럼 상대도 그렇다. 거짓말과는 다른 개념의, 자신만의 영역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서로의 영역이 완벽히 일치할 수 없다. 상대가 그 누구든 내가 속해있지 않은 미지의 세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 믿으며 살아야 한다. 서로 겹쳐진 영역만큼은 투명하게 지켜내야 한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나는 오늘 하루를 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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