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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Nov 18. 2019

영화를 보고 書 책을 보고 書
"조커"

"조커"


히어로 코믹스를 처음 접한 건 DC코믹스였다. 어렸을 적 슈퍼맨을 보며 슈퍼히어로를 좋아했고 배트맨을 보면서 다른 슈퍼히어로를 탐색했다. 팀 버튼의 배트맨은 참으로 재밌었다. 그 우울한 분위기에 세련된 배트카,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은 더할 나위 없었다. 잭 니콜슨의 조커는 무서운 악당 그 자체였다. 무서운데 웃고 있다니 그래서 더 무서웠었나 보다. 


배트맨 시리즈가 조금씩 망가지고 이젠 끝인가 하던 무렵 다크 나이트는 수렁 속에 빠진 DC 캐릭터를 극상시킨 영화였다. 비긴즈의 듀카드, 그리고 다크 나이트의 조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베인 모두 최고의 캐릭터였다. 빌런이 이리 멋지면 되나 싶을 정도로.


히스 레저는 예전부터 좋아하던 배우였다. 그냥 좋은 배우가 있지 않나 이유 없이. 히스 레저가 나에겐 그런 배우였다. 히스 레저의 조커는 주변에 정말 미친놈이 있다면 딱 저럴 것 같다고 감정 이입될 정도로 차분하게 무서웠다. 차분하게 무섭다는 말이 주는 공포감은 상상 이상이다. 있을 법한 사람, 있을 것만 같은 사람이 진짜 무섭다. 평소에 '안녕'하고 인사하던 그 사람이 알고 보니 조커였다면? 이런 감정이입이 가능하게 한 그의 연기는 최고였다.


안타까웠던 자레드 레토의 조커를 뒤로 하고 호아킨 피닉스가 열연한 조커를 봤다. 한마디로 이건 코믹스 캐릭터를 주연으로 한 예술영화다. 환경이 주는 변화, 그리고 참지 못했던 감정이 폭발했을 때 느끼는 사람의 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그런 영화다. 


마블이 구축한 오락성, 캐릭터, 팬덤, 페이즈는 이제 영화의 한 축이 된 듯하다. 캐릭터나 코믹스에서 절대 뒤지지 않던 DC가 영화산업에서 마블에 밀린 이후, 그 전 DC의 위상을 몰랐던 사람들은 DC가 마블 따라 하기 바쁘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히어로 장르 및 유니버스 구성에 철저히 실패했다. 아쿠아맨과 원더우먼으로 어느 정도 살아나고 있지만 멀티 유니버스, 새로운 페이즈, 뉴 히어로로 이미 앞서가는 마블을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런 DC가 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보여준 영화가 조커가 아닌가 싶다. 그 흔한 액션이나 CG가 난무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물론 CG가 쓰였겠지만 이 내용과 비주얼이면 1990년도 개봉작이라고 해도 믿을 법하다. 그만큼 내용에 충실한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한 인간의 감정 변화를 따라가면서 희대의 악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영원한 맞수인 배트맨과의 연결고리 등이 마치 범죄 스릴러 보듯이 엮여 있었다. 


아서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업으로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사회에 대한 불만, 개인이 가지고 있던 불만을 감춘 채 말이다. 처음에는 감정을 제어할 수밖에 없었다. 두려웠으니까. 약하고 병이 있었던 사람이고 가난하지만 하루를 살아가야 했으니까. 그리고 꿈이 있었으니까. 그런 아서를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몰고 간 건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우리가 보기엔 평범하지 않은 나쁜 사람이었겠지만 우리 주변에도 나쁜 사람은 많다. 


처음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억눌렸던 감정이 폭발하고, 그리고 출생의 비밀에 대해 알았을 때, 자신의 인생이 망상과 혼란의 산물이라는 것을 느끼고 절망했을 때, 그는 더 이상 감정을 제어하지 않았다. 영화에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것이 수동적이든 능동적이든 아서는 그렇게 조커가 되었다. 


궤변이라는 말이 있다. 거짓을 진실처럼 보이게 하는 말,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국은 거짓을 가리기 위한 말과 자신의 허구를 증명하기 위한 반대를 위한 반대의 말이다. 세상을 삐뚤어지게 보는 사람들이 흔히 쓰는 표현이라고 하면 조커도 그러했다. 어느 순간 조커의 행동이 이해되다가도 정신을 차려보면 


'그래 조커는 악당이지 악당의 궤변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본인을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해'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영화가 주는 매력은 이러한 혼돈이다. 조금은 불편한 영화라고 해야 할까?


조금이 아닌 꽤 많이 불편한 영화일 수도 있겠다. 보는 내내 답답함과 먹먹함 그리고 불안감이 있었다. 곧 폭발할 텐데... 시간이 흐를수록 변해갈 텐데... 라면서 말이다. 정말 잘 만든 불편한 영화였다. 현란한 액션과 지구를 넘어 우주에서 활약하는 히어로들이 범람하는 시대에 지극히 인간적이고 내면의 모습을 탐구하는 그런 영화인 조커. 어찌 보면 DC가 개척하고 하나의 문화로 만들 수 있는 히어로물의 새로운 장르 개척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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