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국 직장인 시작
그동안 외노자 회고록 업데이트를 늦춘 이유는 여기 회사가 너무 극도록 싫었고 스트레스 받아서 생각하면서 글로 적기가 싫었다. 하지만 다시 시작해본다. 꽤 개인적인 민감한 내용이 있어서 중간에 멈출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의 앞부분을 시작해보겠다.
수요일 밤 나는 싱가폴 공항에 도착했다. 3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히 기억이 난다. 12시가 거의 다 되어서 회사 근처 호텔에 도착했다. 3성급 호텔이었지만 시설이 꽤 좋았다. 객실 블라인드가 망가져있긴 했었다. 혹시나 내가 망가트린 줄 알까봐 카운터에 말한 기억도 난다. 이후에 알았지만 F1 기간이어서 1박에 삼십만원 정도로 꽤 비쌌다.
다음날 드레스 코드를 정확히 몰라서 카라티를 입고 구두를 신었다. 오랜만에 신는 바람에 뒤꿈치가 까졌다. 아침에 시간이 촉박해서 골목길 횡단보도는 조금 무단횡단을 하면서도 싱가폴이라 무단횡단을 하면 벌금을 크게 물어야하는지 무서워하며 두리번거리면서 회사에 도착했다.
첫 한달은 꽤 정신없이 지나갔던것 같다. 이주비를 500만원 정도 받았는데 비행기값하고 호텔 10박을 내니 생각보다 얼마 남지 않아서 집을 빠르게 구해야했다. 유투브로 봤을때는 원룸 스튜디오가 200만원 초반대로 알고있었는데, 최소 200만원 후반대였다. 코로나 직후 집값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쉐어하우스에 살 순 없었다. 출근은 7시 45분까지 했고, 퇴근은 6시가 표준이었다. 그런데 보통 퇴근 후 집에서 원격 로그인해서 일을 더했고. 어느 순간에는 밤 9-10시까지 일하는 경우도 흔했다. 이때는 정말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집에오면 쓰러지듯이 잤다. 초기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지만, 한두달이 넘어서는 택시를 타고 가지 않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지하철을 타면 30분, 택시를 타면 10분 거리였다. 매일 적게는 10싱달러에서 많게는 20싱달러는 냈다. 매일 쓰기에 부담이 안 되는 금액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아침에 눈이 빨리 떠지는 것도 아니었다.
기존 시스템에 대한 적응은 꽤 빠르게 했던 것 같다. 이유는 시스템이랄게 딱히 없었고 주먹구구식으로 그때 그때 처리하는 방식이라, 거의 처음부터 그런 부분을 고치는데 집중했던 것 같다. 내 업무시간이 늘어난데에는 이 부분이 큰 이유였다. 이런 부분에 있어 처음에는 팀원들에게 조심스럽게 생각을 물었다. 이렇게 하면 실수가 나기 쉽고 시간도 매번 더 걸리는거 아니냐 물어봤을 때, “팀원들은 그냥 조용히 하고 넘겨” 하는 눈치를 줬다. 일이 안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어서, 초기에는 그래도 내가 하지 뭐라는 생각으로 큰 불만은 없었다. 시키는 일을 하는 동시에 나는 내 방식대로 업무를 처리해나갔다. 내 방식이 궁극적으로 팀 전체가 이득을 보는 방향이라 생각했고 사소한거에 불만을 가지기 보다는 행동하는게 유일한 해법이긴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조금 강한 반작용이 있었다.
처음으로 내가 팀장의 지시하에 어떤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됐었다. 팀장 말대로 그 프로젝트만 했다면 매우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기존 주먹구구식 시스템 위에서 그냥 새로운 업무가 추가됐을 때 시스템은 더욱 엉망이 되는 구조였다. 그래서 나는 시킨 것을 하는 동시에 그 기반 작업을 했고, 오히려 기반 작업에 시간을 더 썼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게 팀원의 올바른 접근 방식이라 생각했다. 그냥 팀장이 시킨 일만 기계적으로 하는 사람을 원할 것 같으면 아무 인턴에게나 일을 시키면 되는 일이었다. 1주 후 팀장은 나에게 업무 진행 사항을 물어봤다. 내가 그동안 한 일을 보고하자 팀장은 나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내 행동은 용납 불가능하고 너 마음대로 일을 하면 어떻게 하냐 라며 소리를 질렀다. 내 입장에서는 조금 황당했고 게다가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창피를 주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내 동료는 언젠가 내가 혼날 줄 알았다며 팀장이 시키는 그대로의 일을 하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누가 봐도 비효율적이고 초보적인 수준에 머무른 시스템에 대해 내가 조심스레 지적을 하면, 그렇게 한 데에는 자기가 십년 이상 이 업계에 있어오면서 얻은 노하우를 기반으로 결정한 것이라며 억지를 부리며 합리화를 했다. 겉으로는 수긍하는 척하면서도 이대로 그냥 놔두기도 애매했다. 뭐가 조금만 바뀌면 시스템에 여기저기 오류가 생겼고, 비효율적인 부분 때문에, 굳이 밤 10시 또는 아침 6시에 원격 로그인해서 확인하는 작업이 계속 생겼다. 전체 시스템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아는 부분이 있어도 서로 설명해주려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래야하는지 납득도 되지않았고, 단순히 월급을 주니 시키는대로만 해야하는 노예로 고용된것도 아니었다. 나도 뭔가 한일이 있어야 나중에 이직이 될 것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찾은 합의점이 겉으로는 일단 시키는대로 하되, 업무시간 외에는 전체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재구축하고 스케일링하는 작업을 했다. 이 부분에도 조금 애로사항이 있었던게, 팀원이 내가 조금 일찍 오거나 야근을 하면 본인이 눈치보인다는 이유로 나에게 눈치를 줬다. 예를 들면 내가 평소보다 10분 일찍오면 하루종일 왜 일찍왓냐 하루종일 옆에서 앵앵대고 내일은 그냥 시간맞춰오라는 식이었다. 또 때로는 업무 연속성 때문에 오늘 1시간 야근하면 될 일을 내일로 미루면 배로 해야해서 야근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인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러면 그냥 내일하라고 옆에서 계속 집가자 집가자했다. 팀원이 이런 부분에서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아서 결국 집에서 원격으로 몰래 야근하고 출근은 오히려 조금 늦게했고, 토요일이나 일요일 출근하는 경우도 흔했다. 초과 근무에 대해서는 그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