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반전은 있다
뼛속까지 경상도인인 우리 남편에게 '중간'이란 수치스러운 단어임이 분명하다. '차근차근', '적당히', '조금만' 같은 표현과는 원수를 진 듯 하다. 요리는 무조건 가장 센 불, 후라이팬은 무조건 가장 큰 놈, '거기 냉장고에 있는 고기 좀 구워줘'라고 하면 집에 있는 고기 전부. 손님 30명을 초대하면 '넉넉해야 인심이지' 하며 100인분을 준비한다. 골프에 관심을 보여 며칠 휘두르더니 갈비뼈에 금이 갔다. 처음 결혼했을 땐 일드의 세계를 모르기에 맛만 보여 줬더니, 그 뒤로 5년동안 우리 집 티비에서는 일어만 나왔다. 내 속을 모르는 친구들은 웃기다고 깔깔댄다.
하긴 남의 이야기가 되면 흥미로울 수 있다. 나에게는 우리 시아버님 친구분들 이야기들이 그렇다. 한 분은 울아버님과 마산의 명물, 아구찜을 드시러 가셔서, 자신있게 "할매, 이 집에서 제일 맵게 한번 해 가(져)와 보이소."라고 하셨다. "그래예? 마이 매울낀데? 괜찮겠습니꺼?" "괜찮지 그럼! 고마 오늘은 눈물이 쏘옥 빠지게 한번 해 가와 보이소!" 이렇게 호언장담하신 그 분은 그날 아버님 앞에서 졸도하셨다. 며칠 뒤 항의하러 그 가게를 다시 찾은 그 분, 그날 식대 안 내고 갔다고 화내시는 주인 할머니와 한판 붙으셨단다. 또 다른 친구분 한분은 임플란트를 8개나 하셔야 하는데, 원래 다니시던 치과에서는 하나씩 하나씩 시간을 두고 기다려서 해야 된다고 해서 뿔이 나셨다. 마산 지역 치과를 수소문해도 일이 빨리 진행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수배 지역을 부산으로 넓히셨다. 그런데 부산의 어느 치과에서 1월 1일에 하루에 해 주겠다는 의사가 나타났다! (정확히 몇 개를 하루만에 해 주겠다고 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그분은 그날 치과의자 위에서 졸도하셨다. 사실 울 아버님도 '적당히' 하시는 분은 아니시다. 원래 공장 자리에 농장을 만들어 잔디를 까셨는데, 잘 밟아줘야 한다는 이야기에 잔디를 얼마나 밟으셨는지 무릎 양쪽에 심각한 손상이 와 고통스러운 수술을 세 번이나 받으셔야 했다. 멀리 미국에 있어서 가 보지도 못하고 마음만 졸였다.
중간은 없지만, 반전은 있다. 우선, 놀랍게도(?) 다혈질이 아니다. 사실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경상도 사람과 친할 기회가 없었는데도, 괜시리 '경상도 사람들 = 다혈질'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살아보니 다혈질은 오히려 나다!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뉴스를 보고, 쉽게 흥분하고, 화내고, 기뻐하고, 눈물 흘리는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감정의 진동의 폭이 크지 않다. 철학 전공자라 그런지, 양쪽 말을 다 들어보고, 요모조모 따져보고 천천히 결론을 내린다. 연애 시절에 한창 싸울 때는 그래서 서로 화를 내는 타이밍이 안 맞았다. 예를 들면, 나는 이미 빈정이 상해서 팍 토라졌는데, 남편은 끝까지 논리적으로 '너는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이 사실과 달라서 기분이 나빴다는 이야기지?'라고 파고든다. 화난 여자에게 꼬치꼬치 캐물어서 인생이 편할 게 없다는 진리를 깨닫기 전이다. 급기야 나는 분노의 대폭발과 함께 다다다다다다 하고 싶은 말을 퍼붓고는...언제 그랬냐는 듯 분이 풀렸다. 그런데 아뿔싸, 남편에게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나는 이제 더이상 그 일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은데, 남편은 내가 화가 난 이유도 아직 모르고, 게다가 말로 융단폭격을 당했으니 조곤조곤, 끝까지 물고 늘어지곤 했다. 13년이 지났어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 하고 짜증도 내면서 해 달라는 거 다 들어주는 사람은 나다. 반면 남편은 아이들이 징징거려도, 화를 내도, 감정적으로 맞서는 법이 없다. (다행히 삶의 지혜가 쌓여 더이상 논리적으로 접근하진 않는다) 갈등의 불길이 타오를 때, 한 쪽이 평정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싸움은 시시하게 사그러들고 만다.
또 하나, 경상도 사람들이라고 보수적인 건 아니다. 유학 중에 결혼 허락해 달라고 한국에 잠시 들어왔을 때, 남편 부모님을 뵈러 마산에 내려가기 전에 속으로 많이 떨었다. 왠지 경상도 어르신, 특히 남자분들은 엄청나게 보수적일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남자 여자 겸상조차 죄악시하고, 며느리가 말 한 마디 하면 '어디 여자가!'라며 호통하진 않으실까 하는 두려움. 그런데 오히려 내가 아는 서울사람들, 심지어 젊은이들보다도 더 열린 마인드를 갖고 계셨다. 우리 남편은 지금도 아버님 말씀하시는데 끼어들어 "에이, 아부지, 그건 아입니다. 아부지가 잘못 생각하시는 겁니다."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해서 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사실 매년 보는 광경인데도, 아버님 기분 상하시면 어쩌려고 저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나 싶다. 그런데도 "어허허, 그러나?"라면서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부분이 잘못 되었는지, 어떻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지 이야기하도록 유도하신다. 며느리도 가족 여행이든 식사 메뉴 든 의사결정에 꼭 참여하도록 하신다. 우리 시부모님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서울 토박이 시댁들 정말 많이도 봤다.
나이가 들고 다앙한 사람을 접하면서 결국은 사람 나름이라는 걸 깨닫는다. 결국 성숙해 진다는 건 사람을 선입견이 아니라 온전한 그 사람 그 자체로 보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