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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쌤 May 10. 2020

나는 무대뽀들이 불편하다

왜 거절하는 사람은 마음이 편할 거라 생각하는가

'불굴의 도전정신'이 칭송받는 시대다. 되든 안되든 계산은 나중에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부딪혀 봐야 한다는. "이봐 해 봤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현대그룹과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는 정주영 회장부터 요즘까지, 무대뽀 정신으로 무장해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문전박대당하고 때로는 인격적으로 모욕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전화를 걸고, 집 앞으로 찾아가고, 자기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자주 출몰(?)한다는 장소를 알아 내 기다린 끝에, 그 정성에 감복한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비로소 들어줬다는 식의. 전에 내가 쓴 미국의 여성 창업자들 시리즈 2편에도 나오지 않나. 분명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가 만나고 싶지 않다고, 오늘 미팅은 취소라고 비서를 통해 확고하게 의사표시를 했는데도, 그녀의 사무실에 쳐들어간 렌트 더 런웨이 (Rent the Runway)의 두 공동 창업자 (https://brunch.co.kr/@mbaparkssam/16) 직장에서든, 사업에서든, 심지어 연애관계에서도 이러한 무대뽀 정신을 발휘하고 봐야만 최선을 다했다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반면,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그만큼 절박하지 않은 거라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거라고까지 한다.


난 이런 분위기가 불편하다. 그리고 솔직히 이 무대뽀들 건너편에 앉았던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정주영 회장이 조선소가 건립될 백사장 사진과 거북선 그림을 보여주며 "우리는 400년 전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다 (그러나 선박 수주를 시켜다오)"라고 할 때, 테이블 건너편의 영국 사람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어허허, 이 젊은 친구의 패기가 놀랍구먼'하는 신선한 기쁨이었을까, 아니면 '아우, 이 사람 뭐야. 어떻게 내보내지'하는 당혹스러움이었을까. 분명히 오늘 미팅에 오지 말라고 전하라 했던 렌트 더 런웨이의 창업자들이 사무실 문간에 나타난 날,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는 기분이 어땠을까. 비서는 디자이너에게 깨졌을까 안 깨졌을까. (깨졌다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무모하고 저돌적이라는 말은, 낙관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니다. 매너를 지키면서 창의적인 방법으로 진심어린 의사를 전달하는 사람들도 많다. 정말 절박한 상황에서는 다른 방법을 강구할 여지도 없을 수 있고, 조선소도 없는 나라에서 선박 수주를 하는 것 같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케 하려면 어쩔 수 없는 때도 있을 것이다. 상대방의 거절의 의사를 문자 그대로, 만고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이고 바로 꼬리를 내리고 포기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그러나,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무대뽀 정신은 절박함의 표시라기보다는 대개는 습관이고 성격이다. 개중에는 보통 사람보다 눈치가 더 빠른 이들도 많더라. 상대방이 곤혹스러워 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님 말고"식으로 막무가내로 던져본다. 왜? 넌 칼자루를 쥔 갑이니까, 거절을 감수하는 나보다 덜 불편할 테니까. 그러니 그 정도 불편함은 네가 감수해야지.


나를 정말 불편하게 만드는 건 무대뽀들이 흔히 넘나드는 무례함의 선, 그리고 사려 깊지 못함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자주 편법과 개인 공간의 침해를 의미한다. 내가 자주 가는 곳이 어딘지 알아내 기다리는 것, 스토킹 아닌가? 싫다는데, 이미 검토해서 탈락했는데, 우리 기준에 안 맞는다는데, 계속 다시 재고해달라며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들이대는 것, yes 해줄 때까지 안 가겠다는 것은 3살짜리 아이의 떼쓰기와 다를 게 뭔가. 본인의 부탁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 주말의 야근인지, 다른 사람에게 또 쉽지 않은 부탁을 해야 하는 것인지 - 는 안중에도 없고 무조건 던져보는 것은 지각없는 행위다. 더 이상 거절하기 미안해서, 혹은 시달리고 싶지 않아서, 혹은 호의로, 상대가 조금이라도 원하는 것을 줬을 때, 무대뽀들이 보이는 의기양양함은 힘들다. “것봐, 내가 뭐랬어?" 마치 모두가 고속도로에서 사이좋게 규정속도를 지키며 달리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추월과 과속을 통해 앞질러 가 놓고, 먼저 도착한 결승전에서 얄미운 표정으로 규칙을 지킨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자기 입장에서 결과만 좋으면, 상대방이 불쾌했든 불편했든 상관없다는 태도를 도전정신과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포장하는 사람들은, 나에게는 너무 어렵다. 개인적으로도 가까이 지내기 부담스럽다. 어쩌면 이런 성격 때문에 난 사업에서 대박 터뜨리기는 글렀는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늘 같은 결론이다 - moderation is key. 옛날 옛적 윤리책에 나오전 정도를 지키는 것. 예의 지키고 playing by the books 하면서 언제 내 아이디어 피치하고, 투자받고, 딜 성공시키냐고? 막무가내로 일단 던져놓고 보기 전에 최소한 상대방 입장에서 한번만 더 생각하고, 공격적인 수단보다 매너있는 방식을 택한다면 성공률이 높아질 지도 모른다. 최소한 사람 대 사람으로라도 다시 만날 수 있을 확률은 나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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