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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쌤 Oct 29. 2020

인큐베이터에 너를 두고 돌아오는 길

모든 출산에는 스토리가 있다


예비맘 시절에는 정말 몰랐다. 모든 출산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는 걸. 남자들 군대 이야기랑 비슷하다. 특전사 출신도 있고 지하철 복무요원 출신도 있지만, 모두 자신의 경험만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던가.  


철썩같이 믿었던 무통분만 주사가 듣질 않아 생으로 고통을 감내했다는 사람, 분만 시작 후 열 시간 넘게 아이가 나오질 못하면서 심장박동이 느려져 응급 제왕절개를 했던 엄마들은 흔한 편이다. 딱 두 번 힘주고 숨풍 낳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힘이 너무 좋았던 탓일까 너무 많이 찢어져서 꿰매는 데만 한 시간 넘게 걸렸다는 사람도 있으며, 아이는 순산했는데 태반이 나오질 않아 의식을 잃어가는 가운데 의사가 자궁적출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물었단 이도 봤다. 그 와중에도 "절대 안 돼!"라고 말하고 기절했단다. 나중에는 그 순간을 돌아보며 내 스토리는 상대적으로 무난한 것이었구나 가늠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기지만, 어쨌든 분만실 의자 위에서 닥치는 상황이란 하나하나 모두 당혹스럽다.


둘째의 예정일은 9월 말이었다. 누나와는 28개월 터울이 될 터였다. 20주가 넘어서 태동을 시작하고, 그 이후에도 워낙 움직임이 없어 종종 '살아있긴 한가?' 날 불안하게 만든 누나와는 다르게, 임신 4개월이 되자마자 힘찬 발차기를 시작한 아들. 큰아이는 40주가 넘어가도 출산의 기미라고는 없어서 유도분만을 계획했었기에 (다행히 41주가 되던 날 양수가 새기 시작하여 출산했다), 둘째 산후조리를 위해 한국에서 오실 엄마도 예정일 딱 사흘 전 도착하도록 비행기표를 끊어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35주에 찾아간 정기검진 날, 일이 터졌다.


언제나처럼 심장박동 소리 듣고, 불편한 점 있는지 물어보고... 오늘도 별일 없이 집에 가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의사가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이상하다, 너 진통이 있어." 그럴 리가. 난 아무 느낌도 없는데? 가진통이 아니라 진짜란다. 오전 10시에 들어간 병원에서 저녁이 될 때까지 물도 마셔보고, 링거로 수분도 공급해 봤지만 느껴지지 않는 나의 진통은 잦아들지 않았다. 결국 이날 밤9시, 나는 예정보다 5주나 일찍 급하게 출산가방을 싸서 병원으로 향했다. 밤 9시였다.


간호사 앞에서 환자복을 갈아입다가 새빨간 피가 터졌다. 간호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런 출혈이 한 번만 더 오면 긴급수술을 하게 돼."라고 말했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의사가 병실로 들어와 한참 설명을 했는데, 지금부터 유도분만을 실시한다는 것 말고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여전히 나에게는 아무런 고통도 수축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에서도 곤히 잠든 큰 아이를 맡길 곳은 찾아야 했다. 가족이 가까이 없는 미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서러웠다. 다행히 같은 학교에 있던 내 대학 후배가 흔쾌히 아이를 맡아주겠다고 해, 새벽 2시에 아이를 인수인계했다. 분만실에 자리잡자마자 한국에 계신 양가 부모님들께 최대한 덜 걱정스럽게 소식을 전했다. 조산쯤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엄마도 그랬다.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바다 건너 갑자기 분만실 들어가는 딸을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차분한 척 하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분만 직전까지 이어지던 그날의 카톡은 그래서, 아무말대잔치만 가득했다.


오전 10시쯤 아이가 태어났다. 무통도 잘 들었고, 아이도 작아 출산은 수월했다. 의사들이 갓 태어난 빨간 아이를 내 가슴팍에 올려줬다. 큰아이도 3kg로 태어나 큰 편은 아니었는데, 2.5kg인 둘째는 괜히 애처로웠다. 조금 후 조용해진 병실에 아이를 데려가려 온 간호사가 아이가 입에서 자꾸 거품을 뱉는다고 했다. 의사와 상의 후 돌아온 그녀는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안전을 위해 당분간 인큐베이터에 넣는 편이 좋겠다며 아이를 데려갔다. 산모는 이제 쉬어야 한다는 말에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나는 잠이 들었다.


오후에 일어났을때만 해도 난 인큐베이터를 그저 신생아실 정도로만 생각했다. 드라마에 보이는 신생아실의 아기들도 다들 자기만의 투명 플라스틱 상자 안에 들어있으니까. 아이가 있는 NICU (Neonatal ICU: 신생아 중환자실)에 가겠다고 하자, 나를 위해 간호사가 휠체어를 가져왔다. 시끄럽게 삑삑거리는 기계들이 즐비한 널찍한 방, 어른 허리 정도까지 오는 복잡하게 생긴 받침대 위 투명한 플라스틱 박스들 안에 아기들이 하나씩 누워 있었다. 입구에서 가장 먼 인큐베이터에 위치한 내 아이에게 가려면 다른 아이들을 모두 지나쳐야 했다. 하나씩 하나씩 아기들을 지나가면서 그제서야 내가 서 있는 곳이 중환자실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아기들은 대부분 몸에 수많은 줄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난 사람이 그렇게 작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가녀린 팔은 내 손가락 정도 굵기밖에 되지 않았다. 심지어 피부색이 검붉어 팔다리가 흡사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아기들도 있었다.


분만실에서는 애처로워 보였던 내 아이는, 이 안에서는 우량아처럼 보였다. 그래도 아직 자가호흡이 완전하지가 않아서 코에는 호흡 줄을, 입에는 영양섭취를 위한 위관 튜브를 달고 있었다. 줄이 움직이지 않도록 작은 양볼에 반창고로 붙여 두었다. 몸에는 아주 작은 기저귀만 차고, 숨을 쉴 때마다 가슴 중앙이 오목해지고 갈비뼈가 드러났다. 몸 곳곳에 장비와 연결된 줄이 붙어 있어서 불편할 것 같은데, 아기는 곤히 잠만 잤다. 인큐베이터 옆면에 뚫린 구멍으로 손을 넣어 아이를 조심스럽게 만져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엄마 맞나 싶을 정도로, 나는 무력했다.


위관 줄과 호흡 줄을 제거한 직후. 줄 고정하느라 양 뺨에 붙였던 반창고를 떼어 얼굴이 빨갛다. 손에는 아직 링거를 고정하느라 둘둘 싸놨다.

아기를 두고 내 병실로 돌아가는 길, 나는 휠체어를 타지 않았다. 아이는 온갖 줄을 주렁주렁 달고 혼자 싸우고 있는데 엄마인 내가 편안하게 휠체어를 타고 돌아가서는 안될 것 같았다. 조산의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많이 미안하고 괴로웠다. 아마도 내 아들 정도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는 '중한' 환자 축에도 못 꼈을 것이다. 그날 내 아이의 인큐베이터 바로 옆에도, 또 멀리 한국의 친한 친구의 아기 중에도 밤낮으로 혼자 생명과의 사투를 벌이는 미숙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내 아이의 증세가 덜 위중하다고는 해도, 손대면 부서질 것 같은 여린 아기를 차가운 중환자실에 혼자 두고 오는 엄마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병실이 같은 층에 있었기에 돌아오는 길이 멀지 않았지만 천천히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 눈물도 같이 뿌렸다.


나는 아이보다 먼저 퇴원했다.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는 내게 아주 작은, 2ml짜리 플라스틱 모유병을 챙겨줬다. 여기에 모유를 담아오면 때마다 아이에게 먹인다고 했다. 하루하루 변화가 있었다. 처음에는 위관 줄을, 그다음에는 호흡 줄도 제거했다. 예방 차원에서 황달 치료도 했다. 눈가리개를 하고 엄청나게 밝은 빛 아래에서 하루를 보냈다. 또 아이가 괜찮은지 하루 더 모니터링을 한 후에야 퇴원 승인이 떨어졌다. 중환자실에 들어간 6일째 되는 날에서야 아이는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직후


이후 아이는 별탈없이 잘 자랐다. 출산 당시 몸무게는 하위 2%였지만, 한 달 후 검진 때는 50%, 두 달 후에는 85%로 토실토실해졌다. 누나보다 감기에 조금 더 자주 걸리긴 하지만, 대체로 씩씩한 개구쟁이가 되었다. 목소리는 얼마나 크고 힘은 얼마나 센지, 주말을 내리 같이 보내고 나면 엄마는 녹초가 되어 바스라질 것 같다. 호기심은 왕성하고 성질은 급해서, 35주 그날 이 녀석이 '뱃속은 답답하다! 바깥이 궁금해! 나가야겠다!'라고 의지를 발휘했던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래도 아이가 기침이라도 할라치면 내 마음은 9년전,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터벅터벅 돌아오던 때로 돌아간다. 그때 어떻게든 조산을 막을 수 있었더라면, 6개월부터 했던 혼합수유 대신 완모를 했더라면 혹여 아이의 면역력이 조금 강해질 수 있었으려나 하는 무의미한 상상과 함께.


찬바람 부는 계절이 온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여느 해보다 겨울이 무섭다. 나를 키운 엄마, 남편을 키운 시어머니...자식에게 잘해준 것보다 해주지 못한 것을 먼저 떠올리시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건강하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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