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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쌤 Mar 18. 2021

과학을 믿는자, 귀신을만나다

그것은 저승사자였을까, 사자의 영혼이었을까

유난히 습한 공기가 무거운 늦여름 날이었다. 에어컨 바람이 환자에게 좋지 않다는 어머니 때문에 애꿎은 선풍기가 열심히 돌아가는 소리가 웅웅거렸다. 과일을 깎고 간호사들에게 음료수를 건네느라 분주한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정지된 사진처럼 보일 정도로 느릿느릿하게 지나가는 날이었다. 


며칠 전 기흉 수술을 받은 그는 병실 침대에 늘어져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다. 전년도 겨울부터 알 수 없는 이유로 발생하기 시작한 기흉이 벌써 일곱 번째였다. 다행히 수술도 회복도 순조로워, 사흘 후면 퇴원을 앞두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 지냈던 병실은 2인용이었지만, 반대편 침대에 아무도 없어서 제집처럼 편안했다. 남은 사흘도 그저 이렇게 별일 없이 지나갈 거라 믿었다.  


선풍기 때문에 텔레비전 소리가 잘 안 들린다,라고 생각한 찰나 갑자기 선풍기 소리가 멈췄다. 누가 선풍기를 끈 게 아니었다. 고성능 청소기가 모든 소리를 한순간에 빨아들인 것처럼 모든 소리가 동시에 멈췄다. 동시에 그의 주변의 모든 움직임 또한 정지했다. 겁먹거나 두리번거릴 틈도 없이, 그는 텔레비전 바로 오른쪽 천장에 전에 없던 무언가가 움직이는 걸 발견했다. 


아주 진한 먹구름 같기도 하고 어두운 그림자 같기도 한 것이 나타났다. 하얀 병실 벽과 천장 사이의 모서리에서였다. 마치 옆방에서 이쪽 방으로 기어 온 것처럼. 그리고 병실의 반대편 천장의 모서리 쪽으로 꾸물꾸물 움직여갔다. 대여섯 살짜리 어린아이 정도의 크기는 충분히 되어 보였다. 중간 부분으로 갈수록 새까매지고 바깥 모서리로 갈수록 옅었다. 정형화된 형태가 없어서 이동하는 중에도 계속 조금씩 모습이 변했다. 생명을 가졌을 리 없다는 게 명백한데 소리도 움직임도 없는 진공 속에서 오직 그것만이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전진했다. 그것이 반대편 천장 모서리로 마침내 사라진 순간, 모든 소리가 돌아왔다. 저수지를 막고 있는 댐이 무너진 것처럼. 가장 먼저 그의 고막을 때린 건 맹렬하게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 소리였다. 그제야 등골이 오싹해지며 자기도 모르게 꼭 쥐고 있던 손이 축축해졌다.  

실제로 그날 그가 본 것과 유사하다


몇 초, 혹은 몇 분이 지나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같은 공간에 있던 어머니나 병실 밖 간호사들에게는 그날은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똑같은 하루였다는 것은 확실했다. 오직 그만이 그것을 보았다. 매일 병원에서 죽어 나가는 환자를 데려가려 온 저승사자인지, 이미 다른 병실에서 사망한 누군가의 영혼이었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그가 그날 본 것은 분명 이 세상에 속한 어떤 것은 아니었다. 




남편의 이야기다. 그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무렵, 마산 삼성병원 (지금은 삼성 창원병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병실에서 직접 겪은 일이다. 그전까지는 단 한 번도 귀신같은 것을 본 적도 없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험을 한 적도 없었다고 한다. 이날 특별히 몸이 허하거나 기가 약했던 것도 아니라는데, 그날 그가 목도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남편은 과학과 이성을 믿고, 모든 부분에 주장이 강한 사람이다. 그런 남편이 그나마 '눈에 보이지 않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 마음을 열게 된 것은 이날의 경험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사실 그는 몇 년 후 헌법재판소에서 또 한 번 유사한 경험을 했다.) 


... 그런데, 귀신이든 저승사자든 순간이동은 못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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