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나만의 감수성을 일깨워 주는 좋은 도구'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단어 중 하나, 바로 ‘인문학’입니다.
대형 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에 인문학 관련 서적이 꼭 한 두 권씩 있곤 한데요. TV 프로그램에서도 많은 강연을 통해서도 ‘인문학’은 우리네 생활 속에 젖어들어온 느낌인 듯합니다. 하지만, 왠지 아직도 낯선 모습의 ‘인문학’. 그냥 좋은 이야기, 남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이유는 뭘까요?
저도 3 년 전 인문 고전 서적을 읽기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책을 읽고 나름 인문학적 활동들을 해 오고 있습니다. 생명공학을 전공한 과학자인 제가 인문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처음에는 시대의 유행과 무관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늘 그건 제 옷이 아닌 느낌이었습니다.
고전은 어렵고, 다양한 인문학 관련 서적은 때로는 재밌기도 하고 때로는 뭔가를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2% 부족한 듯 내 것이 아닌 느낌을 마음에서 떨칠 순 없었습니다.
그 책은 바로, 박웅현 님의 ‘책은 도끼다’였습니다.
그 책은 ‘인문학’이라는 아직 저에겐 낯설고 어려운 그것을 내 것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 책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책의 무엇이 저를 그런 느낌에 빠지게 했을까요?
다시 그것을 아는 데는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그것은 그 책이 제 안에 숨겨져 있던 ‘저만의 감성’을 일깨워 줘서 인문학, 아니 인문학적 요소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은 뭔가 어렵고 대단한 학자들만이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것. 그리고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은 그냥 그런 좋은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만 있어도 다행이라고 생각될 만큼 나 자신에게 들여보내긴 쉽지 않았던 그런 것인데, ‘나만의 인문학’이라뇨?
하지만 그 생각의 발상이 제가 읽고 있는 인문학 관련 서적에서 바라보는 것도, 제가 있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느끼는 모든 것을 전혀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2016 년.
‘후속 편은 전작에 비해 항상 부족하다’ 말이 있죠.
‘다시 책은 도끼다’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쳐지나 생각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전작인 ‘책은 도끼다’에 대한 느낌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다시 책은 도끼다’에서도 그 정도의 느낌을 느낄 수 있을까?
바로 이런 의구심이 가장 먼저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박웅현 님의 ‘다시 책은 도끼다’는 다시 한 번 저의 감성을 심하게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건 제 감성이 이 책에 의해서 엄청난 자극을 받았다는 의미죠. 박웅현, 바로 그의 광고 카피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과 비슷하게 말입니다.
자, 이제 그 박웅현 님의 ‘다시 책은 도끼다'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물론 이 글은 전적으로 저의 주관적인 느낌과 생각을 적은 것이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이 될 수 없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우선 전작인 ‘책은 도끼다’도 그렇고, 후속작인 ‘다시 책은 도끼다’도 그랬는데요, 이 책들을 읽고 나면 그 안에 소개된 책들 모두 읽고 싶어 진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책에서 박웅현 님도 그렇게 말합니다. 전작인 ‘책은 도끼다’가 출간된 후, 그 책에 실린 책들 중 일부는 다시 인쇄 판매하는 책들도 있었다고요. 그건 책은 도끼다를 읽은 많은 독자들이 그 책을 읽고 책 속의 책을 많이 사 보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책은 도끼다'를 읽고 김훈 님의 ‘자전거 여행 1,2 권’을 구입해서 읽었으니까요. 여러분께서는 어떠셨나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강연을 통해서 또는 그 옛날 유명한 학자들의 고전이나 현대의 유명한 인문학자들이 쓴 책에서 듣거나 본 좋은 내용들이 왠지 2% 부족한 듯 내 것이 될 수 없었던 것은 그 순간에 내 느낌, 내 감성이 빠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책이든, 음악/미술이든, 아니면 내가 있는 시공간에서 바라보는 모든 것들에 대해 나 자신이 느끼는 감성이 가장 우선이라는 생각 듭니다. 그것이 인문학의 시작이고 바로 ‘나만의 인문학’을 형성하는 첫 단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나만의 인문학’을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떤 사물 또는 상황을 내가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만의 어떤 감성을 느낍니다. 그 감성을 좀 더 잘 표현된 나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책을 통해서든 다른 지적 도구들을 활용해서 좀 더 구체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좀 부족하다면 이제 그 지적 도구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는 것이죠. 반대로 책이든 다른 지적 도구들을 먼저 접하고 그것을 내가 느끼는 어떤 것에 대입해 볼 수도 있습니다. 뭐가 먼저든 간에 ‘나만의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느끼는 감성’이라는 것이죠.
저는 또 이 책에서 이 문장이 마음에 듭니다.
인문학은 우리에게 늘 그런 고상한 것이었습니다. 왠지 어려워 보이는 책을 읽어야 하고 큰 음악회나 미술관 또는 박물관에서만 뭔가 인문학적인 고상한 활동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책은 도끼다’도 그리고 이 책 ‘다시 책은 도끼다’를 읽고 난 뒤, 제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인문학적인 요소들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는 그것을 그렇게 바라보려는 제 생각이 가장 중요했죠.
여러분은 께서도 ‘나만의 일상 속에서 나만의 인문학적 요소를 찾아 줄 그 무엇’을 찾아보시겠어요?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차를 타고 빨리 달리면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을 천천히 걸으면 보게 된다는 것을요. 어떤 것이 내 마음에 특별한 것으로 들어오게 하려면 그것을 ‘천천히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점에 대해 박웅현 님은 조지아 오키프의 말을 빌어 이렇게 얘기합니다.
‘빨리빨리’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의 우리네 삶에서 잊고 살았던 것, ‘천천히’.
전 이것이 ‘나만의 인문학’을 만드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박웅현 님의 이 글에 깊은 공감을 합니다.
여기 또 하나의 표현을 소개합니다.
정말 감성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좀 더 덧 붙인다면 ‘내 감성을 듬뿍 담아서 자연에게 거는 인문적인 말’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자, 그렇다면 나만의 인문적 활동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내 안의 느낌이, 감성이 느껴주는 대로만 모든 사물을 바라보면 저절로 ‘나만의 인문적인 생각’을 하게 될까요? 물론 그 첫 출발점은 이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키우는 데는 역시 훈련이 필요하죠. 박웅현 님이 이 책에서 유홍준 선생님의 말을 인용해서 얘기한 다음 문장이 그 하나의 방법을 전해줄 것 같습니다.
미술품을 바라볼 때, 음악회에서 음악을 들을 때, 아니면 일상에서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든지, 그 미술품에 대한 설명, 그 음악에 대한 설명, 또는 어떤 사물에 대한 문학적 표현 등을 내가 더 많이 알고 있다면 내 안에서 느끼는 느낌이나 감성을 좀 더 맛나게 표현할 수 있겠죠. 그리고 그런 나만의 훈련이 더 많이 되면 될수록 ‘나만의 인문적 표현’은 더욱 맛갈진 음식처럼 표현이 되겠죠. 그런 것들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또한 ‘책’이지 않나 싶습니다.
책에 나오는 시인 황지우 선생님이 진흙 공예를 배우면서 얘기했다는 이 표현은 어떤가요?
여러분에게 쌓인 인문적 요소들이 여러분 자신의 촉각을 통해 사물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고 그것이 ‘나만의 인문적 표현’으로 재 생산될 때, 여러분의 영혼이 발전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발전된 영혼은 자신이 한 사물을 오랫동안 바라볼 때 그곳에서 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힘(p188)을 갖게 되는 것이죠.
나만의 인문학이 시작되는 곳, 그곳은 어디일까요?
제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박웅현 님의 ‘다시 책은 도끼다’는 전작인 ‘책은 도끼다’와 함께 여러분의 발길이 멈추는 곳에서 자신만의 인문학적 감수성을 깨우게 하는데 도화점이 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어 보시고 난 후에, 꼭 여러분의 발길이 멈추는 그곳에서 여러분의 아름다운 감수성을 느끼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해 보시길 바랍니다.
길고 긴 리뷰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