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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철 Jul 01. 2019

아름다운 추억 소환 & 아름다운 일상 만남

여행, 나를 만드는 또 하나의 방법

책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에 따라, 항상 다른 느낌을 가져다줍니다. 자기 계발서는 ‘뭔가 그 일을 해봐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해 주고요, 소설책이나 시집은 내 가슴속에 꽁꽁 숨겨져 있던 ‘감성’이라는 친구를 내 앞에 소환해 주기도 합니다. 어떤 책은 나의 추억을 소환해 주기도 하죠. 때로는 아름다운 추억을, 때로는 힘들고 어려웠던 추억을 다시금 되살아나게 해 주곤 하죠. 살아온 날들 중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떠올리게 할 때면 눈을 감고 잠시 그 시절로 추억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물론 내 마음속에 추억 소환이라는 방법을 통해서죠. 이번에 만난 책은 아주 오래된 그렇지만 언제나 제 마음속에서 잊고 싶지 않은 아름다움으로 기억하고 싶은 추억을 소환해 주는 책이었습니다. MBC 방송국 드라마 PD인 김민식 PD님의 신간,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입니다.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김민식 지음, 위즈덤하우스)


2000년 초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MBC 청춘시트콤 ‘뉴 논스톱’을 연출하셨고, 2009년에는 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내조의 여왕’을 연출하신 분입니다. 김민식 PD님은 이 시트콤과 드라마를 통해 백상 예술대상에서 ‘신인 연출상’과 ‘연출상’을 수상하신 드라마 명연출가이시죠.

물론 저는 이런 사실을 이 책,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를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김민식 PD님은 더 전에 알게 되긴 했었죠. ‘김장겸은 물러나라!’라는 구호를 외치는 영상을 페이스북을 통해 보면서 처음 알게 되었고,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진행하는 팝 케스트에 게스트로 나온 것을 보면서 제 기억에 각인되었던 분입니다. 김민식 PD님이 책을 쓰셨다는 것 또한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책을 계기로 김민식 PD님의 다른 책도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 추억을 소환한 첫 번째 대목입니다.

지금부터 30년 전, 대학 스카우트 동아리 선배들의 제주도 자전거 여행에 신입생인 제가 일명, '꼽사리'를 껴서 갔던 적이 있었죠. 제주시에서 시계 방향(성산일출봉 방향)으로 하루에 1/4씩 달리면서 참으로 많은 사건(?)들이 있었던 정말 잊지 못할 여행이었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때 제주도에서 선배 형이 찍은 사진은 필름을 모두 잃어버리는 바람에 기록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도 대학 신입생으로 맞이한 첫여름방학의 첫 여행으로 아직도 가슴속에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다녀와서 다짐했죠.

해안도로를 타고 우리나라 삼면을 자전거 타고 여행해 보겠다고.. 그리고 그다음 해에 첫 실행을 할 줄 알았죠. 하지만 그런 다짐은 그로부터 12년 후에서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달렸던 길이 김민식 PD님이 대학 신입생 때 달렸던 그 동해안 7번 국도입니다.

저는 강릉에서 포항까지 7번 국도와 더 해안가에 가까운 지방도를 따라 내려왔었죠. 친한 후배 두 명과 함께요. 대전에서 자전거를 강릉역에 소화물로 미리 보내고 기차를 타고 야간열차를 타고 정동진역에 새벽에 도착해서 일출을 보았습니다. 정동진에서 강릉으로 버스를 타고 올라가 자전거를 찾은 후 다시 7번 국도를 따라 포항을 향해 달렸죠. 동해에서는 천연동굴에 들어가 비오 듯 쏟아지던 땀도 식히고 삼척과 울진을 지날 때는 폭우 속에서 고갯길을 넘기도 했었죠. 달리다가 더우면 해수욕장에 자전거를 세우고, 그냥 바다에 빠져 들었습니다.


2001년 동해안 자전거 여행의 시작 - 강릉역에서 출발 직전






정말 그랬죠.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멋진 풍광을 만나면 바로 세우고 한 참을 그곳에서 풍광을 바라보았죠. 멍 때리 듯 그 풍광에 취해 그렇게요.

그건 정말 ‘멈춤의 미학’ 그 자체입니다. 그 순간은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어 동화되는 순간 었죠. 그리고 내 세포에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새겨지고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지워지지 않고 오래 동안 남게 됩니다.



김민식 PD님의 책,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에서 제 추억을 두 번째로 소환해 준 것은 해외여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전거 여행, 해외여행 모두 여행이라는 키워드이긴 하지만 첫 번째는 주인공이 자전거이고, 두 번째는 주인공이 여행입니다.

저자 김민식 PD님은 ‘독서, 여행, 운동’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p238)

이 책에서 보면 김민식 PD님은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틈만 나면 여행을 다니셨고 그 순간을 즐기셨습니다. 드라마 촬영을 위해 간 출장에서도 틈을 내서 여행을 하고, 때로는 혼자 때로는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김민식 PD님의 여행에 대한 콘셉트는 언제나 ‘FUN’이죠. 한 마디로 ‘재밌는 여행’. 그것에 대해 김민식 PD님은 ‘재미의 본질’이라는 책을 쓴 김선진 교수의 말을 빌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처음으로 해외에 나갔던 때가 2003년이었습니다.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 학회 참석차 갔었죠.

연구실에서 매 번 이 학회에 한 명씩 보내 주었고, 2003년은 제 차례였죠. 특별한 일이 없었다면 박사님들 함께 가서 편안히 따라만 다니면 되는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학회 출장이었죠. 하지만 바로 전 해에 유럽지역에서 터진 ‘사스(SARS)’와 학회 몇 달 전에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발생한 외국인에 대한 테러 사건으로 모두 취소하고 저와 같은 연구실 형하고 둘만 가게 된 것이 큰 변수였죠. 두려움과 떨림으로 출국 비행기에 오른 뒤 모스크바를 거쳐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내리는 순간부터 ‘어차피 시작된 거, 뭐 부딪쳐 보는 거지 뭐!’라는 생각과 함께 결국 학회에서 공부도 하고 현지에서 만난 한국인 연구원 덕분에 여행도 하고 온 첫 해외 출장 겸 여행이었습니다.

지하 깊숙한 벙커 같은 지하철을 타거나 걸어 다는 것이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보내는 내내 우리가 택한 방법이었죠. 학위 과정 학생에게 주어진 출장비는 그리 많지 않았죠. 아끼려면 어쩔 수 없이 택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죠.

세계 4대 박물관인 예르미타주 박물관 투어, 네바강을 따라 걸으며 바라보는 하란 하늘, 조그마한 가게에서 구입한 현지 맥주와 지하철역 앞 노점상에서 파는 케밥(그때는 그게 뭔지 몰랐었음)을 사기 위해 영어가 통용 안 되는 주인에게 거의 3~40분을 손짓 발짓을 해서 케밥을 구입하고 숙소에 들어가 마시는 맥주는 그때 잊을 수 없는 추억 중 하나입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더 오래 즐길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7월 말 그곳은 밤 12시가 넘어서 해가 지는 백야 덕분이었죠. 밤늦은 시간까지 환한 상트 페떼르부르크의 아름다운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구경한 저의 첫 해외여행은 그 뒤 제가 하게 될 여행의 시작에 불과했죠.


두 번째 여행은 신혼여행이었으니까 별 특별한 것 없었습니다. 남들이 다하는 그런 신혼여행이었으니까요.


다시 세 번째 여행부터는 모두 회사에서의 출장과 함께 이루어졌죠.

2009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2010년, 2011년, 2013년, 2015년 독일.

2012년 미국 보스턴

2013년, 2014년 미국 샌디에이고

2013, 2014, 2015년 일본 도쿄

2013년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

이 모든 출장 준비는 모두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인터넷 다리품을 팔아 준비했습니다. 그것이 회사 방침이었죠. 처음에는 ‘그냥 여행사 통해서 하면 편할 텐데.. 왜 이래야 하지?’ 하고 짜증이 났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쨌든 해야 하는 일이 었죠. 다행인 것은 저는 여행을 하기 전에 꼼꼼히 준비하는 타입이라는 것이 었죠. 그래서 항공기 및 현지 이동 수단(유레일 패스 등), 숙소, 식당 등 까지 모두 인터넷 다리품을 팔아 준비했죠.

그 덕분에 출장 중에 잠시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도 했죠.

2010년 첫 독일 출장 때는 모든 공식을 일정을 마치고 그 유명한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다녀올 수 있었죠.

사실 이때, 성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짙은 안개로 성의 윤곽조차 알아보기 힘들었죠. 더구나 입장표를 구하지 못해 안갯속에서 사진만 찍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다고 추억이 없진 않죠.

작은 시골 마을인 퓌센 역에 내려, 노이슈반슈타인 성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렸던 그 길은 지금도 가슴속에 남아 있으니까요. 정말 다시 가서 자전거로 그 길을 달리고 싶어 지네요. 다음에 갈 때는 꼭 멋진 성을 보고 와야겠죠.

2011년 두 번째 독일 출장에서는 일정을 마치고 야간열차를 타고 스위스로 넘어가 융프라후 요흐에 갔었죠. 인터라켄의 날씨가 무척 흐려서 걱정했었는데, 해발 3,000 미터가 넘는 융프라후 요흐에서 정말 맑은 하늘 아래 멋진 광경을 보았던 기억은 지금도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2011년 스위스 융프라후 요흐로 가는 길목에서..


융프라후 요흐의 빙하를 배경으로


2012년 보스턴 출장에서는 마라톤으로도 유명한 그 보스턴의 아침을 매일 달리기도 했습니다. 보스턴 시내 중심에 있는 공원을 가로질러 Public Garden을 지나 저 건너 MIT 공대가 보이는 찰스 강변을 달릴 때 그 기분은 아직까지 내 마음을 뿌듯함으로 채우고 있기에 충분한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죠.


2012년 보스턴 출장에서 매일 아침 조깅 중에


2012년 보스턴 출장 - 하버드 대학교에서



2013년 독일 출장의 끝자락에서는 잠시 프라하를 다녀오기도 했었고요.


2013년 프라하 성에서 시내를 배경으로..


석양이 지는 하늘 아래 프라하 성


이런 저의 여행 중 가장 백미는 2016년 2월에 다녀온 '우리 가족 이탈리아 배낭여행' 이었습니다 그동안 인터넷 다리품을 팔며 쌓은 여행 노하우(?)를 십분 발휘하여 8박 10일 동안 우리 가족은 '르네상스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밀라노에서 시작해서 로마에서 끝나는 배낭여행을 했죠. 밀라노에서 '최후의 만찬'을 통해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났고, , 피렌체에서는 우피치 박물관에서 '수태고지' 등으로 그리고 로마에서도 다빈치를 만났습니다, 피사의 사탑에 올라 갈릴레오를 만났고, 피렌체에서 다비드 상을 통해 그리고 로마 성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를 통해 미켈란젤로를 만났습니다. 중세의 피렌체를 걷고 고대 로마의 거리를 걸으면서 르네상스를 느껴 보려 했었죠.


2016년 가족 배낭여행 - 르네상스를 만나다(이탈리아)


'바티칸 박물관에서 하루 놀기' 주제로 박물관을 둘러보던 중에 작은 아이는 고대 유물 앞에서 로마를 그렸습니다. 영화 벤허의 무대가 되기도 했던 '대전차 경기장 터'에서는 파아란 하늘 아래에서 뛰어 놀기도 했죠.. 물론 그때 제 마음속에는 대전차를 타고 힘차게 달리는 벤허의 모습이 그려졌었고요.

이런 여정을 통해 아이들에게 그냥 구경하는 여행이 아닌 좀 더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여행을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2016년 가족 배낭여행 - 르네상스를 만나다(이탈리아)


200 페이지가 넘는 디테일 한 여행 계획 덕분에 비용은 최저 비용으로 만족도 95 퍼센트의 첫 이탈리아 가족 배낭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새겨주기에 충분한 여행이었습니다.

김민식 PD님의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를 읽으면서 가족들과 함께 했던 여행의 기록은 우리 가족의 추억 상자 속에서 그때의 아름다운 추억을 다시 꺼내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와서 우리 가족은 가능하다면 일 년에 한 번씩 여행을 떠나 보자고 다짐했죠.

하지만, 삶은 그걸 그리 쉽게 만들어 주진 못했습니다.

2017년,

2018년,

그리고 2019년..

우리 가족의 다음 해외여행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새로 설립된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정신없는 2018년을 보내고 2019년이 중반으로 다달을 쯤,

김민식 PD님의 이 책,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는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던 여행의 개념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멀리 있는 길을 꿈꿀 시간에 내 앞에 있는 가까운 곳부터 다녀 보라'고..

그러고 보니 매일 지나다니며 보아 왔으면서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길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 주변 아파트를 잇는 '아파트 옆 오솔길'이었습니다.


우리 동네 아파트 주변에 조성된 오솔길


오솔길을 걷다 만난 귀엽고 예쁜 노란꽃


우리 동네 아파트 주변에 조성된 오솔길
우리 동네 아파트 주변에 조성된 오솔길


무엇인가 느낄 수 있는 곳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늘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바로 이 집 근처 오솔길처럼요. 김민식 PD님의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를 읽은 동안 늘 다니지만, 내 마음에서 잊혀져 있던 이 오솔길을 혼자 걸어 봤습니다.

재미난 사실은 혼자 천천히 걷는 동안 생각에 빠졌다는 거죠.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추억들을 소환하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이로는 저보다 몇 년 선배이신 김민식 PD님이지만, 동시대를 살아오면서 느낀 수 있는 비슷한 경험들에서 깊은 공감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좀 더 자주 집 근처 오솔길을 걸을 예정입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몇 년 동안 먼지만 쌓여 있던 자전거를 다시 손보고 달려 보려 합니다. 우선 대전의 갑천 자전거 도로를 달려 봐야겠죠.

그리고,

2001년 강릉에서 포항까지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면서,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언젠가 꼭 이 길을 아이들과 함께 달려 봐야지!'

했던 다짐이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다시 소환됩니다.


내일 아침 출근길 하늘은 다른 느낌으로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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