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 끝판왕이 되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까요?
들어가며)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는 자기계발 끝판왕이다.선척적인 신체와 지능의 장애를 갖고도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자신의 제약사항을 극복하고,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자기계발의 끝판왕이다. 나도 몇 가지 장면이 기억나지만,,,결말이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며 가정의 평화와 가족의 건강을 소망(기대)한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에게는 소망을 성취하기 위한 세부 실행 계획 및 정량적인 지표를 설정한다. 그리고, 이 중 많은 부분은 자기계발로 연결된다. 일반적으로 역량향상을 위한 학업, 업무 관련된 학습이 자기 계발이지만, 심신 건강을 위한 운동이나 명상도 더 이상 수련이 아닌, 자기계발 과제가 되었다.
이 책은 자기계발의 역사에 대해서 철학적, 사회 문화적, 경제적인 변천사로 설명하고 기회이자 위협의 대상인 AI와 같은 기술에 대해 우리가 갖춰야 할 관점과 태도에 대해 말한다.
이 책은 3번을 읽었다. 1번째 읽은 후, 2번째 읽기 시작하게 된 것은 흐름이 재밌어서였다. 저자는 기술 철학자이기에 철학적인 내용도 관심사였고, 책 내용에서 반전의 반전을 통해 나를 골탕먹엿기 때문이다. 3번째 읽기 시작한 것은 저자의 제안(결론)이 너무 벙벙한 것 같아서 다시 생각하고 싶어서였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저자의 제안은 꽤나 신선했다.
<알고리즘에 갇힌 자기계발>을 통해 저자인 마크 코겔버그는 기술 철학자 전문성으로 바탕으로, 도입부에서 자기계발의 역사를 철학의 변천사를 통해 설명한다. 이후, 1) 자기계발을 강요하는 사회 문화를 통해 2) 자기계발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개인을 만들고, 3) 기술을 활용해 개인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함정을 진단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개인 혼자가 아니라, 사회, 정치체제, 기술전체가 연결되어 긍정적인 서사를 만들어 함께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너 자신을 알라"
- 무지의 자각에서 자아 구축까지의 변화과정 -
"너 자신을 알라"는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목표 살아야 한다는 뜻이지만,저자는 같은 문장에 대해서 시대에 따라 강조하는 부분이 변화하였음을 설명한다.
고대 철학은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여 보편적 진리의 이해를 강조했다. 반면, 현대 철학(실존주의)에서는 개인의 고유한 실재와 자아를 구축할 것을 강조했다.
사회적, 정치적인 혼란으로 삶이 개선될 희망이 보이지 않자, 사람들은 영적인 자기계발이 중요하다는 말을 믿기 시작했다.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동양철학에 몰두하여 명상을 하며, 건강을 위해 조깅을 하고, '공감'하는 법을 배우며 쾌락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현실의 괴로움을 잊으려 한다.
- 크리스토 래쉬, <뉴욕 리뷰 오브 북스, 1970년> -
세계관의 변화로 인해, 사회/정치적 불안에 대응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베이비 붐 이전 세대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집단적으로 적극적인 참여(혁명)를 통해 변화를 시도한 반면, 베이비 붐 이후 세대는 개인 간의 경쟁이 치열한 개인주의 사회로 변하면서 자기 집착적(나르시시즘)이 되어, 사회를 포기하고 자신을 발전시키는데 몰두하게 되었다. 그렇게, '고유한 자아를 찾기 위해' 평생 학습과 평생 자기계발이 모토가 되었고, 이러한 피로감을 치료하기 위한 심리치료와 상담은 자기계발 및 관리의 큰 축이 되었다.
기술을 통해 강화되는 잉여가치의 착취와 소외
- 마르크스도 예상하지 못한 24시간 잉여가치의 착취와 소외 -
자기계발의 역사와 문화에서 목표 실현을 위한 도구인 기술에 대한 논의는 그동안 미비하였다. 인문주의 시대에는 자기계발도구로 소설이나 일기가 있었다. 지금은 기술의 발전으로 자신을 정량적 기준으로 평가하고 재단함으로며 타인에게 과시하면서 우리 스스로를 위한 자기계발보다는 서비스(앱,플랫폼) 제공자에게 '고유한 자아의' 소중한 정보를 기꺼이 제공한다. 이는, 업무시간 이외에도 업무로 인해 쌓인 피곤함과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거나 혹은 자기계발의 잉여가치(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즉, 어제보다 발전된 나를 강요하는 사회는 특별한 나만의 고유성에 집착하는 개인을 만든다.
이때, 경제(자본주의)는 기술을 활용하여 개인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착취하고 있다.
저자는 독립적인 자아가 아닌 사회, 경제, 기술과 긴밀히 연결되어 함께 새로운 서사를 만들자고 말한다.
이 점이 참 마음에 든다. 오늘날, 우리는 자기계발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한다라는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 유튜브, 서점가의 컨텐츠와 자기계발서에서는 더 이상 청량한 내용을 찾기 어렵다. 대부분 같은 내용들 뿐이다. AI 기술에 대체되지 않으려면, "A부터 Z 까지 혼자 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것을 타인에게 공유할 수 있는 독창적인 개인 서사(Narrative)까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내게 냉장고에 남아 있는 명절음식(개인의 고유한 혹은 완전한 포트폴리오 작성) 소진에 물린 나에게 청량감을 주는 탄산수와 같았다.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그중에서 개인은 소중하지만 동시에 한 없이 작은 존재이다. 인류, 역사학적으로도 인류의 삶은 개인보다는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었다.
더 이상 개인모든 것을 감당하지도 말고,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산속에 들어가 수양을 하며 사회를 외면하지 말자. 우리는 공동체 삶을 살면서 타자로부터 상처받기도 하지만, 도움이나 격려도 받으며 행복을 느낀다.
자기계발을 한다는 것은 결국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고전 철학의 삶을 탈피하여 운명을 개척하는 삶을 긍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수없이 많은 우발적 마주침에 노출되어야 한다.
"다양체는 연결접속들을 늘림에 따라 반드시 본성상의 변화를 겪게 된다....
우리는 의미화 하지도 의미화 되지도 않는다, 우리는 지층화 된다."
- 질 들뢰즈 -
마무리 )
올해 나의 목표 중 하나는 러닝이다. 하지만, 일주일에 몇 회, 하루 몇 Km 등의 정량적인 목표는 세우지 않았다. 내가 세운 목표는 지인과 함께 마라톤 대회(짧은 구간)를 참가하는 것이다.
<포레스트 검프>를 다시 봤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겪는 시련과 행복의 순간에는 항상 사람들이 있었다. 어머니, 제니, 버바 등. 주인공은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도 사회와의 소통을 단절하지 않고 활성화하면서 자기계발을 넘어 자기극복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이 또다시 새로운 여정을 떠날 것을 암시했다.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바람에 몸을 맡긴 깃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