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중한날의꿈 Mar 07. 2018

좀 더 자란 앤의 매력

<<에이번리의 앤>>,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김서령 번역, 허밍버드


빨강머리 앤이 훌쩍 자라 열일곱,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빨강 책 <<빨강머리 앤>>속 어린 앤은 들꽃으로 모자를 화려하게 장식해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다녔던 앤이었다. 황토색 책 <<에이번리의 앤>>속에 등장하는 성숙한 앤은 자작나무 숲길을 조금 차분하게 산책하는 앤이다. 1권의 앤보다 에이번리 앤의 빨강 머리는 더 짙어져 있고, 얼굴의 주근깨도 진해져 있다. 무엇보다 앤의 상상력은 변함이 없어보여 다행스러웠다. 어릴 적처럼 황당한 실수도 잦았지만 어디 그런 매력이 없다면 그 애가 내가 사랑하는 빨강머리 앤이라 할 수 있을까.


앤은 시의 언어를 쓰고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이해하는데 반해, 마릴라 아줌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며 산문을 쓰듯 세상을 살아간다. 앤과 가장 친한 다이애나는 현실적인 아이라서 앤이 한창 상상의 나래를 펴나가는 많은 부분을 헤아리지 못한다. 만일 앤에게 MBTI 기질검사를 시켜본다면 ‘이상주의자’ 유형으로 나올테고 마릴라나 다이애나의 기질은 그와 정반대에 자리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은 이들과 진실한 관계를 맺는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제가 대학에서 배우고 싶은 건 잘 살아가는 법에 대한 지식이랑 그 지식을 가장 유용하게 쓰는 방법이거든요. 전 저 자신과 남들을 이해하고 돕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422쪽)

앤은 자신과 남을 힘껏 이해하려 애썼다. 상대방이 가진 매력을 잘 찾아냈고 어느새 진지한 대화 안으로 상대를 끌어들인다. ‘상상하는 아이’ 폴 어빙이나 ‘영혼이 닮은 친구’ 라벤더를 만난 것은 앤에게도 그들에게도 행운이었다. 앤이 아무 관계 없던 두 사람을 가족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결국은 말예요. 정말 근사하고 행복한 나날이란 건, 막 멋지고 놀랍고 신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진주알로 목걸이를 만드는 것처럼 소박하고 사소한 기쁨들이 조용히 이어지는 날들인 것 같아요.(257쪽)

자작나무 길, 빛나는 호수, 도깨비 숲의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앤은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에이번리 마을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에도 앤의 감동은 이어지고 그속에서 기쁨을 발견한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빨강머리 앤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무얼까. 예전에는 어린 앤이 풍기는 독특함, 상상력, 엉뚱함에서 마냥 매력을 느꼈다. 이제 앤도 자라있고 나도 어른이 되고보니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앤은 홀로 도도하게 향기를 풍기는 정원의 꽃이 되고 싶어하지 않고, 들판의 풀꽃이 되어 누구라도 다가올 수 있게 한다. 풀꽃을 좋아하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모두 포용한다. 이것이 좀 더 자란 앤의 매력이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눈을 통과하고 마음이 읽어내는 교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