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중한날의꿈 Sep 09. 2019

'소중한 날의 꿈'처럼

여름 내내 비실거렸다. 몸은 바닥이 끌어당기는 듯 자꾸만 무거워졌고, 마음도 덩달아 가라앉았다. 무슨 이유 때문일지 찾아봐도 알 수 없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은 더위에 지쳤고, 애들이 방학을 해서 나랑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 정도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쓰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어려웠다.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으니 집중력이 생기지 않았다. 억지로 쓰려고 해도 안 되다보니 책이라도 읽으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소소한 흥도 일어나지 않은 채 바닥에 깔려 올라올 기미 없이 일정하게 우울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8월말에 아이가 개학을 하고 9월이 되면서 태풍이 지나가고 가을이란 이름이 붙는 장마도 끝나가고 있다. 아이랑 떨어져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고, 아침저녁으로 더위가 물러가니 내게도 변화가 생겼다. 아이를 학교로 보내고 산책할 수 있게 되었고, 혼자만 누리는 시간이 확보 되었다. '그래, 바로 이거구나. 나는 혼자만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었어.' 무겁기만 하던 몸도 가벼워지고 가라앉아 있던 마음도 꿈틀거리며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이가 학교 도서관에서 엄마 읽으라고 <<소중한 날의 꿈>> 책을 빌려왔다. 책을 보자 엄마가 생각났다며 기특한 일을 했다. 카페며 블로그에서 내 닉네임은 '소중한날의꿈'이다. 2011년에 <소중한 날의 꿈> 영화를 본 이후, 그렇게 이름 지었다. 둘째 아이를 2010년 봄에 낳고 1년 남짓 혼자만 있은 적이 없었다. 아가는 엄마랑 꼭 붙어 있었고 세 돌까지 쭉 그럴 예정이었다. 아이의 첫돌이 지나고 혼자 외출을 해 보기로 했다. 부산에서 살게된 지 2년만에 혼자 나서는 첫 나들이었다.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한다는 '국도예술관'에서 <소중한 날의 꿈> 애니메이션을 보기로 했다.


   지하철을 갈아 타고 지도를 보며 걸어서 찾아간 영화관은 상영관이 하나뿐인데다 대기실조차 마련되지 않은 작은 영화관이었다. 디즈니나 픽사 또는 지브리서 만든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순수 우리나라 만화영화를 굳이 보고 싶었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데 11년 세월이 걸렸다길래, 7,80년 대 고등학생 이야기라길래, 무엇보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소.중.한.날.의.꿈. 이라니. 이 영화이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날을 기억해보면 영화 자체보다 영화관까지 찾아가는 길 위에서, 캄캄한 극장에 혼자 앉은 의자에서 설레고 두근거렸던 그때 그 기분이 또렷이 남아 있다. 혼자라서 느꼈던 홀가분함, 영화를 본다는 황홀감, 나를 위해 시간을 쓴다는 기쁨이 충만했다. 그 이후 <소중한 날의 꿈>을 다운받아 소장하고 두어 번 더 보았고, 둘째 아이도 커서 그 영화를 몇 차례나 보았다. 마흔도, 예닐곱 살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라면 나이를 초월하는 정서가 영화 속에 스며있다는 것이니 이 영화는 명작이라 할 수 있겠다.


   주말에 책 <<소중한 날의 꿈>>을 보았다. 책이라고 하지만 영화를 '동작 그만'으로 그대로 옮겨 놓았기에 읽었다기보다 보았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그러나 영화라면 흘려보냈을 장면을 책이라서 붙들고 있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앞으로 되감기나 뒤로 빨리감기도 내 맘대로 할 수 있으니 나름 재미가 있었다. 서툴고 고민 많은 십대 이야기가 옛날 내 고교 시절을 추억하게 했고, 그렇다면 현재는 어떠한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누군가 인생에서 리셋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 다시 인생을 살고 싶다. 그때를 후회해서가 아니라 그 순간이 소중하다는 걸 알면서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꿈을 꿀 수도 있고, 어느 정도 좌절도 할 수 있으며, 그 모든 나날이 내게 소중한 날이란 걸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중한 날의 꿈>에서 이랑은 이렇게 말한다.

"난 달리기를 할 줄 알지만 세계에서 1등 정도는 아니다. 내가 할 줄 아는 것들은 다 그렇다. 그렇다고 근사한 어른이 될 수 없는 건 아닌 것이다. 어쨌든 나는 어른으로 가는 길에 있다. 그 가는 과정에 지쳤을 때 어떤 일을 할 지도 모르던 시시한 때를 기억하려고 한다. 누가 다닌 길이든 처음 가는 길이든 스스로 다다르기 위해 내딛는 지금 내 작고 힘없는 발자욱이 기특한 때가 있을 거라 믿는다."

십대 때도, 아이를 낳고 첫 외출을 했던 그때도, 혼자 시간을 보내는 지금도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 소박하거나 거창하거나 무어라도 꿈을 꿀 수 있고 한 걸음씩 내디딜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이름, '소중한 날의 꿈'럼.


#소중한날의꿈

작가의 이전글 함께할 때 빛나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