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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민철 Feb 18. 2020

제조업의 정해진 미래

모든 제조사가 자체 유통몰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

※본 글은 전체 제조업이 아닌 B2C FMCG 산업을 고려해 작성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그러니까 2014년 때쯤부터 했던 생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학생이었고 제조사와 유통사 간의 Power Game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Power Game이란 제조사와 유통사 중 누가 더 협상력이 있으며 상대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이 Power Game에 관한 대표적인 책인 장 노엘 캐퍼러 교수님의 < 브랜드와 유통의 전쟁 >뿐 아니라 관련 연구 논문, 사례, 뉴스들을 보면서 내렸던 하나의 결론은 "앞으로 모든 제조사는 자신들만의 자체 유통채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 이유는 제조사가 자신들의 제품을 진열할 수 있는 유통사의 매대가 계속해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었습니다.


장 노엘 캐퍼러 교수의 < 브랜드와 유통의 전쟁 >


대다수의 제조사는 자신들의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유통사에 의존해 왔습니다. 대형마트, 편의점, 백화점, 동네 슈퍼마켓 같이 소비자들이 몰려드는 유통채널에 제품을 입점시켜 판매하는 구조로 운영되어 온 것입니다. 그렇기에 제조사들은 가능한 많은 타깃 소비자들이 방문하는 유통채널에, 그리고 그 안에서도 가능한 좋은 매대에 제품을 진열시키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유통채널의 힘은 모객(募客) 능력에서 나옵니다. 이 모객력 때문에 그동안 유통사들은 입지와 콘텐츠에 집착해왔습니다. 그래서 접근성이 뛰어난 곳에 매장을 짓고 영화관, 문화센터, 스포츠센터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들을 더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매장에 방문하여 더 오랜 시간 동안 체류하도록 유도해 왔습니다.


그런데 주로 입지와 엔터테인먼트 요소로 모객을 해오던 유통사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직접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일명 PB(Private Brand)라 불리는 유통사가 만든 '자체 상품'이 나타난 것입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이미 유통채널에서 판매되는 전체 상품 중 PB상품의 비중이 30~50%에 이르렀는데, 우리나라도 곧 PB상품의 비중이 유럽만큼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었습니다.


이미 PB 전쟁이 한창이었던 2014년


이처럼 유통사들이 PB상품을 확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가격경쟁력이고 둘째는 차별화입니다. PB상품을 판다는 것은 유통사가 직접 만든 상품을 자사의 유통채널을 통해서 판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제조사들처럼 유통사에 지불하는 입점수수료와 같은 추가 비용이 없고, 동일한 품질(Quality)의 상품일지라도 아낀 비용만큼 가격을 낮춰 판매할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코카콜라는 모든 매장에서 구매할 수 있지만 통큰치킨은 롯데마트에서만 살 수 있는 것처럼 PB상품은 해당 유통채널에서만 판매되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PB상품을 구매하려면 해당하는 유통채널에 가야만 합니다. 쉬운 예로 노브랜드(No Brand)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이마트에 가야만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이처럼 잘 만든 PB상품은 유통사에게 또 하나의 차별점이 됩니다.


이마트의 노브랜드(No Brand) / 출처 : 이마트


유통채널의 PB상품의 비중이 확대될수록 제조사는 힘들어집니다. 유통채널의 매대는 무한하지 않고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세상에 2천 개의 제품이 있고, 유통채널에서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의 수는 1천 개라고 해보겠습니다. 제조사들은 자신들의 제품을 유통채널에 입점시키기 위해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PB상품의 비중이 증가하면 어떻게 될까요. 만약 PB상품의 비중이 30%라면 유통채널에 판매할 수 있는 제조사의 총 제품 수는 1천 개에서 700개로 줄어들게 됩니다. 300개는 PB상품이 차지할 테니까요. 이제 제조사들은 700개의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합니다. PB상품의 비중이 50%까지 올라간다면, 제조사들은 500개의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합니다.


오늘날 노브랜드(No Brand)의 자리, 과거에는 이곳에 어떤 제조사의 제품이 진열되어 있었을까?


온라인 유통채널은 조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아마존(Amazon)이 "세상의 모든 것을 판다(We sell everything)"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 온라인은 오프라인과 달리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매대가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라인에서 제품과 서비스가 거래되기 시작하면서 롱테일(Long-tail) 법칙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롱테일 법칙에 따르면 과거에는 운 좋게 매대에 진열된 소수의 제품만이 소비자에게 팔릴 수 있는 기회를 누렸다면, 온라인 시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제품일지라도 판매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이제는 잘 보이지도 않았던 긴 꼬리(Long-tail) 부분에 있던 제품들도 판매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온라인에서는 인기(Popularity)가 없더라도 판매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첫 페이지만 확인합니다. 2페이지, 3페이지로 넘어 갈수록 소비자들이 클릭할 확률은 급격히 낮아집니다. 결국 온라인에서도 첫 페이지에 진열되지 않으면 팔릴 수 있는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제조사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롱테일 법칙을 뒤로하고, 온라인으로 인해 오히려 진정한 슈퍼스타만이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블록버스터 법칙'이라는 개념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아마존의 에코, 네이버의 클로바와 같은 AI 스피커가 출시되고 대중화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키보드 '검색'이 아닌 음성 '대화'를 통해 제품을 주문할 가능성도 같이 커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래 영상은 유튜브에서 찾은 AI스피커로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영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kpkluOFOlw ( 유튜버 : 마곡의 소리 )


이 영상에서 유튜버는 AI스피커를 이용하여 우리나라의 1등 배달앱인 '배달의민족'에 접속한 다음, 자주 먹는 '단골 음식점'에서 음식을 주문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AI스피커로는 이미 알고 있는 브랜드 혹은 제품만을 주문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AI스피커로 코카콜라는 주문할 수 있어도 이름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탄산음료는 주문할 수 없습니다. 만약 "코카콜라보다 조금 더 저렴한 탄산음료를 추천해줘"라고 AI스피커에게 묻는다면 AI스피커는 펩시를 추천하거나 아마존의 PB상품, 네이버 클로바의 PB상품을 추천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온라인몰로, 그리고 AI스피커로 향해갈수록 유통사와 플랫폼의 힘은 점점 더 강해질 것입니다. 이는 제조사의 유통사 의존도를 더욱 높일 것입니다. 심지어 제조사를 유통사의 PB상품을 만드는 단순 OEM업체로 전락시킬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비해 많은 전문가들이 제조사에게 '브랜드'를 키워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코카콜라, 서울우유 같은 힘 있는 브랜드는 유통사에서 먼저 찾아와 자신들의 유통채널에 입점해달라고 요청하기 때문입니다. 베이커리 성심당이나 삼진어묵 같은 브랜드를 백화점들이 서로 입점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소비자들이 먼저 찾는 브랜드는 유통사에게 을이 아닌 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브랜드가 과연 몇 개나 될까요.


롯데백화점에 입점한 성심당 베이커리, 소비자가 먼저 찾는 브랜드는 유통사에서 삼고초려하여 모셔온다고 한다.


그래서 저는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것보다 제조사의 자체 유통채널, 그중에서도 온라인몰(or 브랜드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온라인몰을 구축해 놓으면 제조사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첫째, 제품의 재고관리를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점. 둘째, 온라인몰을 통해 자사 제품의 브랜드 파워를 키울 수 있다는 점. 셋째, 자사 제품을 소비하는 고객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점. 넷째, 수집된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지 벌써 5년이 흘렀고, 지금은 거의 모든 제조사가 자체 온라인몰을 갖고 있거나 적어도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약 2년 전쯤에 공장에서 직접 생산한 제품을 자체 온라인몰을 통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사업부에 지원하여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제조사가 유통업을 하게 되며, 더 크게는 디지털이라는 낯선 개념을 접목해 나아가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실에서 부딪힌 문제들은 책을 보고 생각하며 상상했던 것들과는 다른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어떤 구체적인 것들이기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구성원들의 생각과 관점, 그리고 문화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나머지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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