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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Jan 08. 2025

MSN 속 S의 웃음




이십 대 초반, 신체검사에서 보충역 판정을 받고, 공익 근무가 아닌 공장에 들어갔다. 공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바쁜 곳이었고, 그 덕에 나는 첫사랑과의 연애에 종지부를 찍어야만 했다.


공장에서 이런저런 많은 인간 군상들을 만나고 경험하면서도, 나이가 나이였던지라 나는 첫사랑과 헤어졌다는 것에 익숙해져 갈 때쯤엔 새로운 사람을 눈에 들이기 시작했다. 경주에서 대학을 다니며 방학 기간에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S가 그랬다.  


당시 나는 힙합 음악에 심취하여, 흔히 레게 파마라고 부르는 머리를 하고서 회사 어르신들의 눈총을 받으며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그때 S가 빨간색 레게 머리를 하고 나타난 것이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S는 서태지의 광팬이었다.


그런 S와 마주치게 되면 아무런 일도 없음에도 괜히 서로 웃음을 짓곤 했다. 헤어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웃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S는 웃는 모습이 예쁜 사람이었다.

S는 방학 기간에만 일을 하기로 한 거라 금방 잊힐 인연이었을 텐데 우리는 그러질 못했다. 호감을 느끼고 이메일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다음 날 우리는 연인이 되기로 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영상통화가 쉽게 가능한 시절은 아니어서, S가 경주로 내려간 후 우리는 주로 전화 통화나 MSN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S와 메신저로 대화를 하면서, 나는 놀라운 사실을 하나 깨닫고는 사람이란 이렇게나 다르구나 하는 걸 느끼기도 했다.


그러니까 S는 채팅을 하며 ^^같은 눈웃음과 :) 빙그레 미소 짓는 이모티콘을 보이거나, 혹은 ㅋㅋㅋ 하고서 웃음을 표현하곤 했는데, 알고 보니 그런 타이핑을 할 때마다 S는 실제로 미소를 짓거나 웃는다는 이야기였다.


현실 표정과 타이핑을 동일시하는 사람이 있다니. 모니터에 보이는 그 웃음이 실제였다니. 그 후로 MSN 창에서 S가 웃음의 표시를 보일 때마다 나는 S의 웃는 모습을 떠올렸고, 나는 그 일이 좋았다. 모니터에서 S가 찍어내는 웃음 이모티콘과 폭소의 자음을 마주하게 될 때면 어쩐지 나도 따라 웃게 되었고.


살면서 만난 사람 중 실제의 표정과 타이핑을 똑같이 하는 사람이 또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혹시 너 채팅창에서 웃을 때, 실제로도 웃는 거야?"

S를 제외하곤 그런 질문을 던져본 적이 거의 없으니까.


사람들은 글을 쓸 때 어떤 표정을 짓는 걸까. 인터넷에 이런저런 가벼운 농담의 글을 올릴 때 사람들은 나에게서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상상할지 모르겠지만, 어떤 글을 쓰든 대체로 타이핑하는 나의 표정은 심드렁하거나 무표정에 가깝다.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서. 눈에 힘은 풀려있고. 입술은 툭 튀어나와. 턱을 괴고서 모니터를 지켜볼 때엔 조금은 화난 표정일지도 모르겠고.


그러니 누군가 내가 쓴 글을 통해 싱그러움이나 젊음을 보았다고 하더라도, 모니터 너머로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좀처럼 웃지 않는 고약한 표정의 아저씨가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다. 생각하면 조금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S와의 만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안 보면 멀어진다고 하였던가. S가 있던 경주에 한 번만 내려갈 수만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공장은 여전히도 바빴고 나는 쉬는 날 없이 공장에 나가야만 했다.


짧은 인연이었다지만, S는 내게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글을 쓰다가, 웃음 이모티콘을 날릴 때면 문득 S를 떠올린다.

가끔 재미난 글을 쓸 때만큼은 S처럼 실제로도 웃으면서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챗지피티에게 글 읽어보고 그림 그려달랬더니... 왜 흑인으로 그리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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