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업무 개시

쿠팡 인천 26센터 첫째 날 - 4

by 이경



나와 단둘이 남은 아저씨는 사십 대 후반 혹은 오십 대 초반 정도 됐을까. 뒤로 묶은 긴 머리가 멋스럽게 느껴지는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는 다른 센터에서 일을 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인천 물류센터에 온 것이라 했다. 쿠팡에서는 일을 해보았어도 센터를 옮길 때마다 교육을 새로이 들어야 하는 시스템인 듯했다.


조용한 강의실에서 둘만 남아 있으니 꿀꺽 침 삼키는 소리까지 들리는 듯했다. 괜히 정수기 앞에 가서 물을 한 컵 따라 마셨다. 그렇게 조금 더 기다리고 있는데 관리자로 보이는 한 남성이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OO센터 입고 지원하신 분들 맞으세요? OOO님? 이경님?”


관리자는 우리 두 사람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엘리베이터로 데려갔다. OO센터는 물류센터의 4층에 자리 잡은 듯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서 4층으로 이동하는 사이 관리자는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업무를 물어보았다. 쿠팡 알바 경험이 있는지. 어떤 일을 했었는지.


나는 쿠팡 알바 자체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혹시 전동자키나 핸드자키는 사용해 보셨나요?”


묘하게도 나와 중년남성의 대답은 같았다.


“전동은 해본 적이 없고요. 수동은 아주 오래전에 해봤습니다.”


업무 체크인을 할 때 받았던 출입증 카드를 찍고 4층 작업장으로 들어갔다. 그동안엔 밖에서만 물류센터를 바라보다가 작업장 안으로 들어와서 보니 그 규모가 실로 놀라웠다.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작업장 ‘4층’은 단순히 한 개 층이 아니라 보통 건물의 3~4개 층 정도에 해당하는 듯했다. 그러니까 만약 물류센터 4층에서 5층으로 걸어서 이동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계단을 올라야만 했다.


관리자는 우리 둘을 데리고 다니다가 어느 한 곳에 이르자 멈춰 섰다. 그곳은 여러 대의 PDA를 충전할 수 있는 충전소 같은 곳이었다. 각자에게 PDA가 하나씩 주어졌다. 관리자는 어떤 일을 시켜야 할지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다른 관리자에게 아저씨를 인도하고는 나에게 말했다.


“사원님은 저를 따라오세요.”


작업장에 오기 전 강의실에서 보았던 교육 내용 중에 인상 깊은 게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작업장에서 뛰지 말라는 내용이었고, 또 하나는 직원들이 알바생들을 부르는 호칭으로 ‘사원님’을 쓰겠다는 내용이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지면 생각과 행동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런 단어의 변화 대부분은 좀 더 나은 사회로 사람들을 이끌어낸다. 특히나 사회적 약자나 아픈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단어에서 이런 변화는 두드러지고 있다.


일례로 자폐증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되었고, 간질은 뇌전증이 되었다. 산부인과는 여성의학과가 되었고 불임은 난임이 되었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성급한 결정으로 혼돈을 빚은 일부 단어들(‘장애우’가 대표적이다)도 있지만, 언어가 바뀌면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쿠팡 같은 대기업에서 일용직 노동자들을 가리켜 ‘사원님’이라는 호칭을 써서 부르는 것은 꽤 괜찮은 결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자가 나를 데려간 곳은 어느 핸드자키 팔레트 작업장이었다.


“사원님, 예전에 핸드자키 써보신 적 있다고 하셨죠?”


“네, 근데 워낙 오래 전이라... 일단 한번 해볼까요?”


관리자가 알려주는 작업 내용을 들어보니, 대략 두 개 층 아래에서 올려주는 팔레트를 끌어다 지정된 장소에 적재하는 작업이었다. 아래층에선 능숙해 보이는 전동자키 운전자들이 팔레트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거의 20년 만에 핸드자키를 잡아보았다. 이십 대 초반 군대 대신 들어간 방위산업체 공장은 가정용 전화기와 휴대폰을 만드는 회사였다. 그곳에서 처음에는 조립 같은 단순한 업무를 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는 자재 팀에서 업무를 보게 되었다. 하루 만들어내는 휴대폰의 수량은 대략 2만여 대. 그 2만여 대분의 자재를 받아 관리하고 작업자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했었다. 그때는 거의 매일같이 핸드자키를 붙잡고 팔레트를 끌어야만 했다.


팔레트를 잘 끌기 위해서는 길쭉하게 뻗은 핸드자키의 두 다리를 팔레트 구멍에 잘 넣는 게 중요했다. 20년 만에 핸드자키를 끌 수 있을까,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팔레트 바닥을 향해 핸드자키 다리를 넣어보았다. 핸드자키는 안정적으로 위치를 잡았고 손잡이를 앞뒤로 움직여 팔레트를 들고는 수월하게 끌어올 수 있었다.


머리로는 ‘너무 오래전 일이야, 아마 어려울 거야’ 생각했던 일이라 하더라도 때로는 몸이 기억해서 해낼 때가 있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빈민가 출신으로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자란 주인공은 한 퀴즈쇼에 나가 과거 살아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를 하나하나 맞혀나간다.


20년 전 핸드자키를 다루어보았던 경험으로 쿠팡에서의 첫 업무를 맡은 나는 마치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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