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너무 힘 빼지 마세요

쿠팡 인천 26센터 첫째 날 - 5

by 이경



그렇게 한동안은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팔레트를 옮기는 일을 했다. 팔레트가 올라오는 난간에는 ㄱ자 모양의 철제 장치가 있어서, 팔레트가 이동할 때마다 이걸 아래로 당기거나 위로 밀어서 한쪽을 막고 다른 한쪽을 개방해 주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팔레트가 올라올 때는 팔레트가 들어오는 문을 열어주되 내가 진입하지 못하게 막고, 올라온 팔레트를 옮길 때는 내가 있는 쪽을 열고 난간을 닫아주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가끔 일어나서는 곤란한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습관이 있는데, 다행히도 팔레트에 깔리거나 팔레트가 추락하는 일은 없어 보였다.


핸드자키 다리를 팔레트 안으로 넣고, 핸드자키 손잡이를 앞뒤로 움직여 팔레트를 올리고, 팔레트를 끌어당기는 일. 그리고 ㄱ자의 철제문을 움직이는 일. 쿠팡 알바를 앞두고 ‘허리’ 상태를 가장 걱정했는데 핸드자키를 끄는 일은 허리를 쓸 일이 많이 없고, 대부분은 밀거나 당기는 일이었다.


두 군데에서 팔레트가 올라왔고, 그때마다 ㄱ자의 철제 장치를 열고 닫으면서 조금씩 땀이 나기 시작했다. 입고 있던 패딩 잠바를 벗어 바닥에 두고는 팔레트를 움직였다. 두 군데서 거의 동시에 팔레트가 올라올 때는 신속하게 팔레트를 빼야겠다는 조바심이 들기도 했다. 내가 하나둘 옮겨둔 팔레트는 다른 작업자가 끌어다 또 다른 작업장으로 옮겨가는 듯했다.

가끔 30대 정도로 보이는 관리자 여성분이 우선순위로 작업해야 하는 팔레트에 스티커를 붙여놓으면 그걸 먼저 가져갈 수 있게 복도 쪽으로 빼두었다. 그럴 때면 관리자분은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쿠팡 알바 후기를 보면서 몇몇 관리자들의 태도를 비판하는 글을 보며 우려스럽기도 했는데, 일단 내가 처음 만난 관리자에게서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세상을 살아가며 겪는 대부분의 사람 일이라는 게 그러하듯, 물류센터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도 결국은 제각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정도 팔레트 옮기는 일을 했을까. 시간이 날 때면 다른 작업장으로 팔레트를 가져가는 작업자가 조금 더 편하게 옮길 수 있도록 빼두었는데, 다른 작업자들이 와서는 비슷한 말을 한마디씩 던지고는 갔다.


“그냥 놔두세요.”

“지금 너무 힘 빼지 마세요.”


그때는 몰랐다. 다른 작업자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에게, 열심히 하지 말라는 듯이 말하는지. 그때는 그저 처음 알바를 나온 신규 작업자를 향한 배려의 말쯤으로만 알았는데, 첫날 업무가 끝나갈 때쯤이야, 너무 힘을 빼지 말라던 이야기가 조금 이해가 되었다.


아래층에서 팔레트가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아 쉬고 있을 때, 인도인접장에서 이곳으로 데려온 남자 관리자가 나를 불렀다.


“사원님! 아래로 내려오세요!”


두 개 층 정도 되는 철제 계단을 내려가자, 관리자는 한쪽 복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원님, 이쪽으로 쭉 가시면 조끼 입고 있는 여성분 계실 거예요. 그분한테 가셔서 업무 전달받고 일하시면 됩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쿠팡 물류 현장에서 관리자는 파트 별로 다른 색상의 조끼를 입어 구분을 하는 듯했다.


쿠팡에서 일용직 일을 하다 보면 딱히 정해진 업무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일을 지원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첫 업무로 핸드자키를 끄는 일이 비교적 수월했는데, 얼마 못 가 다른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남자 관리자가 가리킨 복도를 따라 조끼를 입고 있는 여성을 찾았다.


몇몇 사람들이 포장된 박스를 뜯고 바코드를 찍고 있는 현장에서 관리자로 보이는 여성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노트북 앞에서 무엇인가를 집중해서 들여다보고 있는 듯했다. 관리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이쪽으로 오라고 해서 왔는데요.”


“아, 사원님. IB 일 해보셨어요?”


“아니요. 쿠팡 일 자체가 오늘 처음이에요.”


“아아, 저 따라오세요.”


관리자는 나를 다른 남성 작업자에게 데려가서 말했다.


“여기, 사원님 일 좀 가르쳐주세요.”


남성 작업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에게 업무 내용을 알려주려고 다가왔다. 뒤돌아서 다시 노트북 자리로 가던 여성 관리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크게 외쳤다.


“오늘 물량이 많습니다! 워터 분들 좀 바쁘실 거예요!”


워터(Water). 이런저런 쿠팡 후기 글을 보았을 때,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체력 소모가 크다는 글을 보았던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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