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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Aug 26. 2023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정말 사랑하는 친구가 작가를 꿈꾼다면...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내가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가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만약에 그가 독립출판을 알아본다면 나는 그를 아티스트라 여기며 응원해 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전자책 만을 출간하려 든다면 나는 일단 말릴 것이다.


그가 부크크 같은 POD 출판을 알아본다면 나는 그의 컴퓨터에서 인터넷을 끊어버릴 것이다.


그가 자비출판을 알아본다면 급전이 필요하다며 그가 준비해둔 책 제작비를 강탈할 것이다.


그가 몇 백만 원짜리 책 쓰기 커뮤니티를 알아본다면... 아, 이 정도면 중증인데 그냥 의절을 해야 할까? 

그럴 돈이 있으면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와 각종 해산물을 먹고서 체력을 기르라고 해줄 것이다.


글 쓰는 법과 책 내는 법이 궁금하다면, 책을 통해 배우라고 할 것이다.

내가 아는 양서와 개똥망 같은 악서를 알려줄 것이다.


그가 책으로 부족함을 느끼고 글쓰기 수업을 들으려 한다면 정말 제대로 된 글쓰기 강사를 찾으라고 할 것이다. 만약 글쓰기 강사가 글은 무조건 짧게 써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브런치 작가 되는 법' 따위를 커리큘럼에 넣었다면 당장에 도망치라고 말해줄 것이다. 더불어 브런치 작가는 작가가 아니며 그저 작가 지망생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해줄 것이다.


작가 지망생끼리 모여서 노닥거리지 말라고 말해줄 것이며, 온라인에서 친목질 하며 자화자찬에 빠지지 말라고 해줄 것이다.


작가라서 쓰는 게 아니라, 쓰는 사람이 작가이다 같은 관념적이고 허울뿐인 말에 속지 말고, 작가란 남들이 '작가'라고 불러줄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해줄 것이다.


괜한 합평으로 상처 주지 말고, 상처받지 말며, 자신의 글 수준이 궁금하다면 쌍욕이 오가는 익명의 문학 게시판에 던져보라고 할 것이다.


글쓰기 모임도 하지 말 것이며, 정 책과 관련된 모임을 하고 싶다면 차라리 독서 모임에 나가라고 말해줄 것이다.


며칠 동안 매일 글쓰기를 하는 챌린지 따위를 하며 괜히 쓸모없는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말해줄 것이다.


돈을 받고서 공저자 여럿을 모아 공저책을 내주는 출판사나 프로그램 따위로는 절대 작가가 될 수 없을 거라고 말해줄 것이다.


돈을 주고서 출판 에이전시 따위에 원고를 맡기지 말 것이며, 투고할 때 원고에 표지 따위를 디자인하지 말라고 말해줄 것이다. (제발 하지 말라고...)


자의식과잉에 빠지지 말 것이며, 지나치게 우울해하지 말 것이며, 허튼 기대를 하지 말 것이며, 망상에 빠지지 말라고 말해줄 것이다.


그러다가 글쓰기가 너무 외롭고 우울하고 고독하다면 나는 친구와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들어주되 그가 쓰는 글에 대해서는 아무런 충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또 그러다가 친구가 글 쓰는 삶이 너무 힘들다고 토로한다면, 나는 언제든 그만두어도 좋다고 말해줄 것이다.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내가 정말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가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그 외에 다른 사람이야 뭐 어떻게 하든지 말든지.


아, 근데 나는 친구가 없구나, 헤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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