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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고생의 전형

글쓰기와 닮았어요

by 이경




어릴 적 이해하지 못한 말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안되면 되게 하라' 같은 말들. 아니,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 안 되는 걸 어떻게 되게 해...

그리고 또 하나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었다. 고생이 한 개인을 성장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걸 뭐 굳이 사가면서까지 하나 싶었던 거다. 뼈 삭아, 나는 안 사. 안 살 거야. 이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돈 주고 살 게 얼마나 많은데 뭘 굳이 고생을 사서 하나.


그런데 살아가다 보니 가끔 고생과 놀이 그 어디쯤에 있는 것들이 있다. 가령 캠핑 같은 것. 두 다리 쭉 펴고 잠잘 수 있는 멀쩡한 집을 두고서 왜 밖에서 잠자는가 싶어, 나에게는 캠핑 역시 놀이나 휴식보다는 고생에 가까운 행위이다. 그럼에도 나 역시 '사서 고생'을 하는 게 있다. 내게는 직소퍼즐이 바로 그 사서 고생의 전형이다.


아이들이 자라기 전 신혼 시절에는 아내와 곧잘 직소퍼즐을 사다가 맞추었다. 주로 천 피스짜리 직소퍼즐을 사서 다 맞추고서는 액자를 사서 장식해놓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의 캐리커처나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같은 것들. 아이들이 하나둘 태어나고, 물건들을 헤집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부부의 취미였던 직소퍼즐도 그만두었다. 훗날, 아이들이 커서 말귀를 알아듣거들랑, 바닥을 헤집지 않을 그런 시기가 오거들랑 그때 다시 직소퍼즐을 하자는 다짐과 함께.


시간은 유유히 잘도 흘러서, 어느새 아이들은 모두 초등학생이 되었다. 이제 집에는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들도, 또 바닥을 헤집는 어린 아해도 없다. 드디어 옛 취미를 다시금 가질 수 있는 시기가 온 것이다. 그렇게 거의 10년 만에 직소퍼즐 사이트에 로그인을 했다. 천 피스 직소퍼즐과 액자, 그리고 유액까지 한 번에 구매. 구매 작품은 평소 좋아하던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그렇게 한 달 가까이 아내와 함께 천 피스의 조각을 하나둘 맞추었다. 천천히, 또 틈틈이. 직소퍼즐은 색감이나 모양을 보고서 맞추는데, 호쿠사이 작품의 배경 조각들은 색감이 모두 엇비슷해 무척이나 어려웠다. 며칠 동안 이렇다 할 진전 없이 퍼즐의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면, 비로소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지금, 사서 고생을 하고 있구나. 나 이거 왜 시작했지...


물론 그 반대의 쾌감도 있다. 수백 개의 퍼즐 조각 중 정말 미세하게 차이나는 색감을 보고서 고른 조각 하나가 정확하게 들어맞을 때나, 혹은 아무런 기대 없이 갖다 대어본 조각이 들어맞을 때는 어쩐지 수지맞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몇 개의 조각을 연달아 착착착 맞추게 될 때면, 인생도 이렇게 잘 착착착 잘 들어맞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진다.


어렵고도 재미난 일. 직소퍼즐은 아무런 생각 없이 멍 때리며 하기에 좋은 취미이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 일은 어쩌면 우리네 삶과도 조금 닮아 있는 느낌이다. 때로는 한없이 막히고, 또 때로는 술술 풀린다는 점에서는 글쓰기와도 언뜻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글쓰기 또한 사서 고생의 전형 아닌가. 누군가 당장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끔씩 나 이거 왜 시작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무언가를 끝내고 나면 그 뿌듯한 희열감에 중독되어 다시 또 하게 되는 것.


호쿠사이의 작품을 완성하고, 유액을 바르고, 액자를 씌우고서는 다시 직소퍼즐 사이트에 접속하여 새로운 천 피스 퍼즐을 주문했다. 이번에는 아내가 원하는 그림으로, '빨강머리 앤'의 한 장면이 그려진 퍼즐을 골랐다.


사서 하는 고생은 여전히 원치 않지만, 직소퍼즐과 글쓰기만큼은 예외로 두기로 한다.


직소3.jpg 사서 고생의 전형. 1000피스를 다 맞추고 유액을 발라두었다.


직소1.jpg 액자를 씌운 호쿠사이의 그림.



직소2.jpg 여러분, 이거 야광이다? 멋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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