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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출판사를 차리는 작가들

by 이경


아마 <언어의 온도>로 초대박을 친 이기주의 영향이 아닐까 싶은데, 출판사와 계약이 끝난 베셀 책을 가진 작가가 출판사와 계약을 해지하고 스스로 출판사를 차려 책을 내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 거 같다.


창비에서 문제를 일으킨 <아몬드>가 새로 나와서 판권 페이지를 보니 아마도 손원평이 남편을 발행인으로 세워서 책을 낸 것 같다. 재미난 건 판권 페이지 이메일 주소 옆에 '투고는 받지 않습니다.' 하는 문구를 적어 놓았다는 점. 나는 판권 페이지에서 이런 문구를 본 적이 처음이다. 굳이 이런 문구를 쓸 필요가 있을까 싶어지기도 하고.


이도우 역시 두 종의 베스트셀러를 '수박설탕'이라는 출판사를 통해 새로 냈는데, 발행인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수박설탕에서 지금까지 이도우의 책만 나온 걸로 봐서는 작가가 스스로 세운 출판사가 아닐까 싶다.


김진명 역시 설립한 지 얼마 안 된 이타북스에서만 책을 내는 걸로 봐서는 발행인과 이해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고.


<90년생이 온다>를 히트시킨 임홍택 역시 출판사와 문제가 생겨 스스로 출판사를 차렸다는 거 같고.


작가가 기존 출판사와 계약 연장을 하지 않고, 스스로 출판사를 차려서 책을 내는 게 잘못은 아니지.

그런데 굳이 왜 그렇게까지 할까... 를 생각해 보면, 역시 이런저런 이유로 출판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거나, 작가가 얻을 수 있는 수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하거나, 그 두 가지가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어서 조금 씁쓸한 기분이랄까.


내가 편집자와 관련된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그런지, 만약 내가 담당 편집자였다면, 작가가 스스로 출판사를 차려 새로이 책을 내었을 때, 어쩐지 조금 속이 상할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기존 출판사에서 절판이 되는 책은 작가만의 책이 아니라, 한때 편집자의 책이기도 했을 테니까.


스스로 발행인이 되어 책을 내는 작가가 늘어나지만, 그럴 때마다 꼭 성공(?)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2년 전 임경선이 <평범한 결혼생활>을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책의 만듦새를 보고 말을 꺼낸 걸 보면, 글을 잘 쓰는 것과 책을 잘 만드는 것은 전연 별개의 일처럼 느껴진다.


물론 이런 사례에도 불구하고서, 스스로 출판사를 차리는 작가들은 점점 늘어날 것 같지만.

출판사 설립은커녕 아직 이렇다 할 베셀 하나 쓰지 못한 나는 나의 담당 편집자에게 그런 기쁨을 한 번도 안겨주지 못한 거 같아서 밍구스럽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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