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전만 해도 지금쯤이면 다음책 작업을 하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출판사에서는 올 1월이나 2월쯤 출간 이야기를 했으니까. 열심히 청사진 그리고 있었지. 출판사와 계약을 해지하고서는 계획했던 일들이 다 수포로 돌아가고 내게 남은 건 98,000자의 한글 파일 하나. 이걸 어따 써먹나 그래.
이 원고를 책으로 만들려면 역시 투고를 해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선 원고를 좀 고치고 출간기획서도 써야 한다. 여기서 글을 고친다는 건 퇴고가 아니다. 김연수 작가가 말한 토고도 아니다. (작가 김연수는 토할 때까지 고친다고 해서 '토고'라고 부르...) 나는 거의 개고를 거쳐야 할 것 같은데, 개고가 왜 개고냐면 '개고생' 한다고 해서 '개고'임. (아님...)
출간 기획서야 A4 한 장짜리 10분이면 쓸 텐데, 이 한 장짜리를 쓰는 데까지 원고를 많이 고쳐야겠고, 무엇보다 마음을 좀 먹어야 하겠는데, 이 마음을 먹는 데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분명 고달픈 시간이 있었지만 작가 지망생으로 지냈던 시간을 돌아보면 남들보다 무척이나 수월하게 일이 풀렸던 것 같기도 하다. 2017년, 책 한 번 써보라는 지인의 권유가 계기가 되어 이듬해부터 출판사에 투고를 했고 2019년부터 5년 동안은 매년 책을 냈으니까. 올해도 무난하게 커리어에 책 하나 더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출판 계약을 해지하고서 올해는 책을 못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 작가는 매년 책을 내야 한다고 강제하는 것도 아닌데 책 못 내면 어때. 그동안 남들보다 멍청한 머리로 매년 책 쓴다고 몸도 마음도 고생했는데 한동안은 좀 쉬어도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출판사에 처음 투고하면서 만들었던 투고 리스트 엑셀 파일을 들여다본다. 마지막으로 파일을 저장한 날짜를 보니 2020년 7월 21일.
2020년 4월 13일부터 5월 11일까지 스물다섯 곳의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고, 세 곳의 출판사에서 긍정적인 답이 왔다. 어쩌면 이때가 내 글쓰기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네. 내가 가장 맑은 정신으로 글을 쓸 수 있었던 시기.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난생처음 내 책 - 내게도 편집자가 생겼습니다>였다. 그러니까 내가 마지막으로 출판사에 투고를 했던 것은 2020년 5월 11일. 그 후로는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을 주어 책 두 종을 더했다.
마지막으로 출판사에 투고를 하고서 3년이 훌쩍 지났다. 나는 다시 출판사에 투고할 수 있을까. 2020년 7월을 끝으로 업데이트를 멈춘 파일에 다시 무언가를 기록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