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희희 -
국내 대표 문화 교양지, 한국에서 가장 전통 깊은 종이 잡지, 글 애호가들의 감성라이프 매거진 편집장님으로부터 원고 청탁서가 온 건 지난 21일이었다. 원고 청탁서에는 자신들의 회사를 소개하며 과거 정호승 시인이나 한강 작가 등이 기자로 활동했으며 이해인 수녀, 법정 스님, 수필가 피천득 등의 문인들이 장기간 연재한 바 있다고 쓰여있었다. 원고 청탁의 내용으로는 월간지 2월호에 실을 글을 하나 보내달라는 것이었고, 마감은 1월 2일이었다. 나는 크리스마스가 지난 26일에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원고를 보냈고, 다행히도 편집장님은 원고를 빨리 보내주어서 고맙고, 재밌게 읽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국내 대표 문화 교양지 편집장님에게 원고 청탁을 받고서는, 국내 최장수 월간 교양지로부터 청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자랑해도 되냐고 물었고, 편집장님은 24시간 소문내주셔도 좋다고 말해주었다. 편집장님, 내가 얼마나 주접을 떨며 자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직 모르시는 듯. 헤헷.
그리하여 국내 대표 문화 교양지, 국내 최장수 월간 교양지, 글 애호가들의 감성라이프 매거진이 어딘고 하면 바로 <샘터>인데요. 샘터 2월호에 실릴 글을 하나 보내드렸고, 실제로 샘터에 글이 실릴지 아니 실릴지는 모르겠지만, 책이 나오면 다시 한번 자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네.
샘터는 올해 창간 54주년이라고 하는데요. 그러면 벌써 한 4년 전쯤의 일이겠네요. 샘터 50주년을 맞이하던 때에, 샘터가 어려워져서 폐간을 하게 됐다는 기사가 여기저기에서 나왔었고, 그때 독자들이 십시일반 도움을 주어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일이 기억에 납니다. 폐간 위기에서 극복까지의 과정을 기사로나마 지켜보면서 제가 느꼈던 감정은 어떤 '안도'였던 거 같아요. 아, 사라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샘터> 같은 곳에 글을 실을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그런 오랜 역사를 가진 샘터에서 보내준 원고 청탁서가 저에겐 최근의 글쓰기 삶에서 가장 기쁜 일이었습니다, 희희희.
비비비 -
얼마 전 페이스북에다가 다음 책 초고를 출판사에 보냈다는 글을 한 번 쓴 적이 있다. 그때 많은 분들이 수고했다, 잘했다, 고생했다 등등의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런 칭찬의 댓글을 받은 게 모두 무색하게 된 일이 생겼으니, 거두절미 결과적으로 출판사와의 출간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댓글 달아주신 분들, 송구합니다아...
책을 다섯 종 출간하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라 일이 왜 이렇게까지 되었나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출판사나 나나 서로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게 맞는 방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결말로 오기까지 출판사에 서운한 마음은 일었으나 지금은 별다른 악감이 남아있진 않다. 근데 하필 유명 배우가 생을 달리 한 날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겨서, 매년 한 배우의 죽음을 떠올리게 될 때면, 아 그때 나한테는 이런 일이 있었지, 하고 생각나긴 할 듯.
그리고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나를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 같기도 하다. 내 원고가 잘못이었는지, 내 행동이 잘못이었는지. 아마도 출판사와 작가가 생각하는 철학이나 디테일한 부분에서 좀 달랐던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내가 생각하는 겉으로 드러난 문제라면, 올 한 해 유독 나는 인터넷에 날이 선 글을 많이 써왔다. 엉터리라고 생각되는 글쓰기 강사, 고액 책 쓰기 출판 에이전시, 몇몇 글쓰기 빌런 등. 간헐적으로 그들을 비판해 왔던 일로 출판사에서는 부담을 느낀 게 아닐까 싶은데, 그게 부담이 된다면 어쩔 수 없는 게 아닐까. 타인의 삶에 신경 쓰지 말고 살아야지 싶어도 내 눈엔 그게 부조리하게 보이는 걸.
아무튼 그런 일로 내게는 약 98,000자 원고지 570매 분량의 한글 파일 하나가 덩그러니 놓이게 되었다. 2019년부터는 매년 책을 냈고, 내년에도 책을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으로는 내년은커녕 앞으로 책을 낼 수 있을까 싶은 생각까지 든다. 책 다섯을 내면서, 앞서 세 종은 모두 투고로 계약하였고, 뒤에 두 종은 출판사 제안으로 책이 나왔는데, 다시 한번 출판사에 투고를 해볼까아 생각하니 막막하기도 하고. 계획했던 일들이 도미노처럼 하나둘 무너지고 있으니, 근자의 출판 관련 삶에서 가장 슬픈 일이었습니다, 비비비.
희비 그 사이 -
앞서 샘터에서 정호승 시인이 기자로 일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인터넷에선 당시의 정호승 시인이 이동순 시인에게 보낸 원고 청탁서의 내용이 남아있는데 그게 참 애틋하고 좋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정호승, 정호승하고 되뇌이다 책장을 열어보니 정호승 시인의 시집 하나가 나온다. 출판 계약을 해지한 출판사의 대표가 어느 해 나에게 보내주었던 시집이다. 시집의 제목은 <당신을 찾아서>.
근자의 출판 희비 사이에 이렇게 정호승 시인이 눈에 들어온다.
당신을 찾아서, 당신을 찾아서.
나는 이제 어느 곳에 글을 보내어 편집자를 찾고, 나를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