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기형도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에 실린 자서 '시작 메모'의 한 문장,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를 좋아한다. 나에게 다른 글과 달리 시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어의 조합에서 오는 생경함이라고 말하고픈데,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하는 문장을 계속 되뇌이다 보면 게슈탈트붕괴까진 아니더라도 어딘가 생경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따라간다는 것은 뭔가 수동적인 자세인 것만 같은데,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또 어쩐지 무척이나 능동적인 자세인 것만 같아서.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하는 문장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 사람의 삶을 대하는 자세가 수동적인 것인지, 능동적인 것인지 좀처럼 알 수가 없게 된달까.
요 며칠 나는 청탁을 받고서 한 문화 교양지에 글 한편을 보내었다. 편집장은 내 원고를 보고서는 마음에 들어 했고, 큰 수정 사항 없이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는 선에서 고치겠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편집장의 손을 거친 글을 보니 웬걸. 내가 생각했던 '다듬는 선'과는 달리 글이 많이 고쳐진 것. 며칠 전 스레드에서 글을 하나 읽었는데, 요즘엔 가벼운 에세이라 하더라도 독자들에게 하나하나 세세하게 내용을 알려줘야 한다고 하더니, 정말로 그런 것인지, 내가 '여운'이라 여기며 끝맺지 않은 문장들이 해체 조립되어 독자에겐 하나하나 친절히 설명을 하듯 마침표로 마무리되어 있었고, 그 결과 구어체라고 느껴질 만한 많은 문장들이 문어체로 변해 있었다.
글이 수정되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보는 것은 내가 쓴 글 같은가 아닌가 하는 것. 나는 고민을 조금 하다가, 편집장이 고친 몇몇 문장을 원래대로 돌려놓았지만, 많은 부분에서 편집장이 수정한 문장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머리 한 구석에서, 저 단어는 바꾸어야 해, 저건 나의 단어가 아니야, 저건 나의 표현이 아니야, 하고서 자꾸만 신경이 쓰이더라도, 또 다른 머리 한 구석에서는 이 정도면 괜찮다고, 어느 정도 놓아주어도 좋다고 말을 걸어주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는 월간지 제작의 촉박한 마감을 염두에 둔 마음도 있을 테고, 편집장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을 테고,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들이 뒤섞여 있을 테지만, 무엇보다 그래, 이것이 국내 최장수 문화 교양지의 편집 방향이라면,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하는 마음이 가장 큰 것이다. 물론 내 단독 저서였다면 편집 방향을 놓고 한참을 물고 늘어졌겠지만.
여하튼 국내 최장수 문화 교양지 <샘터> 2월호에 실을 글을 편집장님과 마무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네네. 제 기준으로는 글이 좀 많이 고쳐졌지만, 샘터의 편집 방향이 그러하다면 저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야요, 헤헷. 샘터 2월호가 나오면 다시 홍보할 테니 많이들 읽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