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음악 웹진 리드머에서 글을 쓰던 시절에는 이런저런 재미난 거리들을 많이 찾아다녔다. 이를테면 독자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그런 기획도 많이 잡곤 했는데 그중 하나가 내가 태어난 주에는 과연 어떤 음악이 빌보드 정상을 차지하고 있었나 하는 기획이었다.
2012년 싸이가 <강남 스타일>로 빌보드 정상을 차지하느냐 못하느냐 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빌보드 정상을 차지한 BTS뿐만 아니라 많은 케이팝 뮤지션들이 빌보드 차트에 오르내리지만, 당시에만 해도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던 순간이었으니까.
여하튼 문돌이가 사람들에게 알려준, 내가 태어난 주의 빌보드 1위 곡 찾기란 무척이나 아날로그적인 방식이었다. 인터넷 웹브라우저를 켜고, 빌보드 사이트에 접속한 다음, Hot 100 차트를 열어서, 자신이 태어난 날의 날짜를 찾아 클릭하는... 그야말로 몇 번의 타이핑과 마우스 클릭질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두근두근. 자신이 태어난 그즈음에 대중적으로 가장 히트하고 있던 곡을 알아보는 법이 이렇게나 아날로그적이고 낭만적이라니, 헤헷.
기획기사는 성공적이었다. 리드머 필진들과 함께 독자들이 댓글로 자신이 태어난 주의 빌보드 차트 정상 곡을 알려주었다. 도나 서머의 <MacArthur Park>,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 티얼스포피얼스의 <Shout>, 쿨앤더갱의 <Celebration> 등 태어난 시기에 따라 다양한 음악들이 소개되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이 태어난 주의 빌보드 1위 곡을 찾아 듣고 공유했다.
관련해서 내가 봤던 가장 감동적인 사연은 누군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신에게 바비 맥퍼린의 <Don't Worry, Be Happy>를 자주 불러주었다는 이야기였다. 1988년 시월에 태어난 그는 자신이 태어난 주의 차트 정상 곡을 찾았을 때 놀랍게도 <Don't Worry, Be Happy>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제야 그는 왜 아버지가 그토록 자신을 향해 이 곡을 자주 불러주었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이런 댓글을 접하게 되면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 아, 이번 기획 신박했다. 재밌었다. 잘했다. 스스로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달까.
그리고서 한 1년이나 2년쯤 지났을까? 트위터에서 링크 하나가 돌아다녔는데, 그 링크의 제목이 '내가 태어난 날 빌보드 1위 곡 알아보기'였나 뭐 그랬다. 링크를 눌러보니, 번거롭게 빌보드 사이트 들어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자신이 태어난 날의 숫자만 기입하면 자동으로 당시의 빌보드 차트 정상곡이 나오는 프로그램이었던 것.
그때의 기분이라면... 아, 그래 또 이과생 프로그램 개발자 하나가 문돌이의 아날로그 감성을 깨부수는구나. 그래그래, 이게 훨씬 편하고 좋네, 그래그래. 잘났어 정말. 으으으으... 하는... 아니, 이런 건 좀 히든카드 쪼개듯이 두근두근 하는 그런 맛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며, 세상이 그렇게 빨리빨리 원클릭으로 돌아가면 너무 차가운 거 아니냐며... 으으으으, 이과놈들...
여하튼 <We Are The World> 녹음 당일의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다큐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을 보면서 떠오른 옛이야기였다. 신디 로퍼 옆에서 걸걸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던 킴 칸스가 반가웠기에. 내가 태어난 주의 빌보드 1위 곡이 바로 킴 칸스가 부른 <Bette Davis Eyes>였다는 이야기.
여담으로 나는 영화 [Duets]에서 기네스 펠트로가 부른 버전의 <Bette Davis Eyes>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