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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 숙종 Jan 10. 2019

17. 트로이 목마

      

 ‘내가 1등이라니?’

 평생 처음이다. 공부는 죽었다 깨도 안 되는 얘기고, 다른 것조차 1등은 해본 적이 없다.  

   

 경품 추첨에서 마지막 1등만 남았을 때, 완전 포기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행운은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이 아니야!”

 헉! 낯익은 번호가 들렸다. 세상에! 내 번호였다. 300명 가운데 1등으로 뽑혔다. 놀라운 일이다. 사람들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앞으로 나갔다. 얼떨떨해 기쁘지도 않았다. 내가 받은 경품은 최신형 올레드TV(OLED 55인치), 시가 300만원 짜리다.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2017년 요르단 한인회 추석 행사에 있었던 일이다. 협력 활동 ‘시네마천국’ 팀은 사물놀이 패를 만들어 3년간 요르단 아이들에게 공연을 해왔다. 그 소식을 들은 한인회에서 장기자랑 일환으로 우리 팀을 초대했다. 공연이 끝난 후 참석한 한인들 대상으로 많은 경품을 뿌렸는데, 얼토당토않게 내가 1등 상품을 탔다. 박스에 포장된 55인치 TV는 두 사람이 들어서 봉고차로 옮겨야 했다. 

 뜻밖에 얻은 경품을 싣고 집으로 오는 내내 고민했다. 문제가 복잡해 진 것이다. 15일 후면 요르단을 떠난다. 6개월간 여행하고 집으로 갈 텐데 이걸 가져갈 수 없고 남을 주기엔 아깝다. 

 ‘차라리 현금으로 주던가?’ 

 ‘한국에 있을 때엔 이런 행운이 없다가 왜? 하필 여기서?’

 봉고차에 함께 탄 코이카 단원들은 축하한다고 난리다. 

 “유종의 미가 대박 났어요!”    


 서울에 있는 딸한테 처음 해본 1등 자랑질이 오히려 화근이 됐다. 

 “집 거실에 있는 TV가 너무 작아 바꿀 때가 됐어!” 

 “엄마는 한 푼 아끼려고 고생하고 있는데, 아빠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

 “3년씩이나 나가 살아서 집 형편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아니야?”

 TV를 항공 화물로 보내라고 성화다. 괜히 벌집만 쑤신 셈이다.    


 집 거실에 세워둔 TV가 몹시 거슬렸다. 곧 떠날 짐을 정리해서 필요한 것을 한국으로 보내야 하는데 큰 짐이 하나 늘어난 셈이다. 거실을 지날 때마다 밤낮으로 신경 쓰인다.   

 ‘안 그래도 처리할 일이 많은데, 이걸 어떡한담?’ 

 거실 중앙에 떡 버틴 TV는 ‘트로이 목마’와 흡사했다. 웅장한 자태는 트로이를 멸망시킨 불화의 원인이 될 징조가 보였다.    


 ‘목마의 불화’는 생각보다 빨리 시작됐다. 주말에 교회를 다녀온 코이카 단원은 한인들의 관심사를 내게 전했다.

 “1등 경품을 누가 탔다고?” 

 “TV를 어떻게 하겠대?”

 “팔면 돈이 꽤 될 텐데?” 


 나는 요르단에 힘들게 쌓은 공덕(功德)이 나름 있다.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3년간 열심히 봉사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위해 시키지도 않는 선행을 해본 적이 없었다. 물욕과 3년의 공덕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다시 이런 봉사를 해볼 기회도 없거니와 1등 행운은 더더욱 내게 오지 않을 것이다. 둘을 다 가져 갔음 좋으련만. 나는 공덕을 지키기 위해 TV를 포기하리라 맘먹었다. 


 요르단에서 가장 큰 가전 매장을 찾아갔다. 한국 상품을 전시해 놓은 매장엔 내가 탄 TV는 안보였다. 점원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가격을 물어봤다. 신상품이라 아직 안 들어 왔는데, 한 2,000JD(320만원)는 줘야 할 거라고 한다. 상점 주인에게 경품 사실을 말하고 TV를 팔고 싶다고 했다. 얼마 받을 거냐고 해서 1,500JD(240만원)를 제시했다. 그 정도면 좋은 가격이지만 구매할 돈이 없다고 한다. 대신 살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고 연락 주겠다고 해서 이틀 기한을 못 박았다. 10일 후엔 요르단을 떠나기 때문이다. 10일 안에는 꼭 팔아야 한다.  

 ‘이거 뭔 생고생이람?’    


 문화부 친구들에게 TV를 팔 수 있을까 물어봤다. 한 달 50만원 버는 요르단 봉급자가 300만원 넘는 물건을 사긴 어렵다. 결국 ‘시네마천국’ 팀원들을 집으로 불렀다. 당연 그들도 궁금해 하고 있을 게다. 

 “TV는 내가 탔지만 내 것이 아니다.”

 “팀이 초대 받아서 당첨된 거라 우리의 것이다.” 

 “나한테 세 가지 복안이 있다.” 

 첫째, 코이카 사무실에 기증해서 단원들 교육용으로 쓰게 한다.

 둘째, 장애 아동기관에 ‘시네마천국’ 이름으로 기증 한다

 셋째, 싸게 팔아 우리 모두(사무실 현지 직원포함 33명)에게 나눈다.    


 팀원들은 첫째 방법은 반대 했다. 둘째와 셋째 중 둘째 방법을 원했다. 난 셋째 방법을 설득했다. 장애 기간에 기증하는 것도 좋지만 관리가 어렵고, 고가 상품이라 금세 망가질 우려가 있다. 그리고 ‘시네마천국’이 이제까지 장애 아동에게 많은 것을 해줬다. 이제는 요르단에서 고생한 단원들에게 뭔가 주고 떠나고 싶다. 이걸 팔아서 상품권으로 나누자. 팀원들은 고맙게도 내 뜻에 따랐다.     

 다행이 최신형 TV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었다. 코이카 봉사단원 임기를 마치고 결혼해서 요르단에 사는 ‘하나(음악단원)’였다. 마침 그녀가 집을 늘려 이사 가야 하는데 TV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맙게도 그녀는 160만원을 주고 거실에 있는 TV를 싣고 갔다.     


 ‘트로이 목마’가 떠난 거실은 다시 평온해졌다. 내 것이 될 수 없는 행운이 내게 와서 ‘트로이 목마’로 우뚝 섰지만, 난 운 좋게 돌려보낼 수 있었다. 

 나는 나를 안다. 노력하지 않고 우연히 얻은 횡재는 한 번도 없었다. 딱 일한 만큼의 보상만 받았다. 심지어 길가다 돈을 주워 본적도 없다. 앞으로도 그런 행운은 나한테 없는 복이 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뜻밖에 온 재물이 ‘내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다시 알게 해준 것이 ‘트로이 목마’였다.  


 다음 주엔 요르단을 떠난다. 계절은 봄에서 여름으로 흘렀다. 여름과 똑 같은 햇빛으로 가을이 와서 여름은 끝없이 길었다. 여름 내내 기다리는 비가 억수로 쏟아질 때쯤. 나는 이곳에 없다.    


 나답지 않게 살아본. 

 남을 위해 나를 바쳐 애써본. 

 자원봉사자 행세를 오랫동안 해볼 수 있었던 그런 곳이었다.

 하마터면. 

 끝까지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 떠나려는 내 의도가 틀어질 뻔 한 곳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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