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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 숙종 Jan 10. 2019

24. 끝내는 이야기


  [오마르]    


 집에 왔지만 친구들은 내가 돌아 온지 모른다. 책 읽고 글 쓰는 것밖에 한 것이 없다. 글 쓰는 일은 여행만큼이나 나를 자유롭게 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나는 다시 세상으로 나갔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쏘다니듯, 글은 나를 여기저기 끌고 다녔다. 한 걸음 한 걸음 걷고, 한 줄 한 줄 써내려갔다. 문장 한 줄을 일주일이나 깎고 다듬은 적이 있다. 내 신경은 닳고 닳아 칼날이 되어, 몸무게를 4kg 베어냈다.   

    

 4년 전 일이다. 정년퇴직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했다. 새로운 일을 쫓아 나는 ‘코이카 해외봉사단’에 지원했었다. 요르단에 파견된 후 문화부에서 일을 했다. 200여명 직원들 이름을 외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 기억이 난다. ‘당신이 누구’라는 이름을 불러줘야 ‘내가 나라’는 것을 알릴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직원 이름과 신체특징을 수첩에 적어 죽자고 외운 적이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이름이 있듯이, ‘오마르(Omar)’는 요르단에서 불려 진 내 이름이었다. 나는 요르단에 와서 ‘오마르’가 된 것이다. 새로운 이름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듯, ‘오마르’는 요르단에서 펼친 협력활동 ‘시네마천국’으로 많이 알려졌다. 나는 3년간 팀원들과 요르단 전역을 돌아 다녔다. 5천여 명의 오지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팀의 리더였던 내 이름 ‘오마르’는 19번 행사를 진행하면서 요르단 전역에 알려졌다. 임기가 끝날 무렵 문화부에서 송별 만찬을 해줬다. 다음날 현지 신문에 ‘오마르’란 이름이 뉴스에 실렸다. 

 “코이카 소속 봉사자 ‘오마르’가 ‘시네마천국’ 팀을 이끌고 요르단 아동을 위해 많은 활동했다. 그는 3년 임기를 모두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요르단 정부는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뉴스를 읽은 현지 친구가 미리 사인을 받아 두지 못한 아쉬움 섞인 조크를 내게 보냈다.     


 한때 팀원이었던 ‘쌀람(물리치료 단원)’이 내가 떠난 뒤에도 활동을 하고 있다는 기사가 SNS에 올라왔다. 그곳은 팔레스타인 난민촌 ‘바카캠프’에 있는 작은 학교였다. ‘시네마천국’ 마지막 활동 장소로 섭외하기 위해 내가 여러 번 왕래한 곳이다. 이 단원은 ‘바카캠프’ 아이들이 목메이게 외친 녹음 파일을 나한테 보내줬다.    

 

 “보고 싶어요! ‘오마르’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아이들 목소리를 나는 수없이 들었다. 나를 기억해준.    


    

  [글을 쓰는]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와 있을 즈음. 

 나는 붉은 땅에 아이들을 두고 요르단을 떠나는 중이었다. 임기가 끝날 때, 그리운 것들과 이별해야 하는 일과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일. 다시 내 나이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들로 많이 심란했다. 무엇보다 이제 돌아가면 ‘오마르’란 이름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것이 몹시 서글펐다.    


 돌아와도 할 일은 없었다.

 일 없는 시간과 내가 마주하고 있을 때, 요르단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겨울까지 사는 사람들’이다. 겨울 한철 내린 비로 한해를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사막에 풀어 논 양들이나 길가 올리브나무도 겨울까지 서 있다. 

 ‘나는 어떻게 살까?’ ‘뭘 하고 살아야하나?’

 걱정에 내 몰릴 때, 친구들은 내게 말한다.

 “겨울까지 살면 돼!”    

 

 이 책에 그리운 그들을 담았다. 

 “꼭 다시 올 거지?”

 떠나는 날까지 손잡아준 문화부 친구들. 그곳에 나를 있게 해준 아이들 그리고 친구 같았던 ‘시네마천국’ 팀원 이름을 하나하나 담았다. 또 이름을 담을 수 없는 ‘산티아고’ 길에서 만난 사람도 있다.   

   

 요르단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준 곳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알게 해준 곳이기도 하다. 그곳으로 나를 보내고 후회했을지도 모르는 아내와 두 딸한테 고마움이 많다. 책이라도 팔리면 아내가 좋아하겠지만, 책을 써서 생계를 이을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저. 

 요르단에서 ‘오마르’란 이름이 불리듯. 

 이곳에도 내가 있었으면.  


 나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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